현대중 외주업체 비파괴검사 노동자, 백혈병 사망

20명중 4명 집단 발병...일제 안전점검, 역학조사 시급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한다. 왜 그리 회사의 이익을 위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억척스럽고 어리석었는지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다. 다시 건강한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울산 현대중공업과 세진중공업 등에서 선박 비파괴검사를 하는 외주업체 KNDT&I 소속 노동자 김모(남. 36세)씨가 지난달 29일 새벽 숨졌다. 10년째 이 업체에서 비파괴검사 일을 해온 고인은 올해초 백혈병 진단을 받고 산재 투병 중이었다.

  지난 9월 8일 부산.울산.경남 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조선업종 비파괴검사 노동자 백혈병 집단발병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출처: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비파괴검사는 방사선 초음파 등을 이용해 선박 용접 부위 등의 손상 여부를 검사하는 업무로 방사능 피폭 위험 때문에 대부분 주간 작업자들이 퇴근한 야간에 이뤄진다.

울산, 부산, 거제, 통영 등 경남지역에만 30여개 비파괴검사 업체가 있고, 전국에는 50개 업체에 5000여명의 비파괴검사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NDT&I 울산출장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60여명이고 이 가운데 방사선 투과검사를 하는 노동자는 20여명이다. 이중 고인을 포함해 두 명이 지난해와 올해 백혈병 발병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고, 올해 또 한 명이 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원자력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역학조사 과정에서도 또 다른 한 명이 혈액수치 이상 진단을 받아 특별관리를 받고 있다. 방사선 투과검사 노동자 20여명 중 4명이 집단 발병한 것이다.

지난달 27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대부분 비파괴검사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비슷한 조건임을 감안할 때 실제 피해자들은 상당히 많을 것"이라며 비파괴검사 노동자들에 대한 역학조사 등 대책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미경 의원에 따르면 KNDT&I 울산출장소의 경우 방사선 장비(R-RAY, X-RAY, CO-60)로 검사하는 야간조는 2인1조나 3인1조로 팀별 작업을 해야 하지만 작업 인원이 확보되지 않아 1인1조로 작업했고, 하루에 350장 이상을 촬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업무량이 많아 안전수칙조차 지키지 않은 채 작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보호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보호구와 방사선 측정 용구 착용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채 업무를 수행했고, 작업 중 방사선 피폭 사고가 수시로 일어났지만 응급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도 "방사능 작업에서는 작업자가 방사능에 얼마나 피폭됐는지를 알 수 있는 필름배지 등을 달고 피폭량이 초과되면 작업을 중지해야 하지만 회사는 이를 지급하지 않은 채 일괄 보관했고, 엄청난 작업량 때문에 작업시간을 단축시키려고 불과 2~3미터 거리에서 방사선을 맞고 작업을 한 적도 있다"면서 "2006년부터 혈액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으나 회사는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계속 방사선 투과검사를 시켜왔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5년 과학기술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방사선 피폭량이 20밀리시버트(mSv) 이상인 56명 중 48명이 비파괴업체 종사자였다. 이미경 의원은 "비파괴업체 노동자의 피폭 문제가 심각한데도 이들 노동자에 대한 보호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는 원자력법 소관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와 산업안전보건법 소관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서로 외면함으로써 실질적인 보호방안이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사무국장은 "울산지역의 경우 2000년을 지나면서 비파괴검사 업무가 비정규직으로 넘어갔다"면서 "원청의 관리 소홀과 영세사업장의 안전보건조치 미흡, 고용노동부의 관리 부실과 교육과학기술부의 관리 소홀 등으로 사실상 거의 아무런 보호가 되지 못하는 상황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했다.

노동부가 제출한 '방사능 관련 산재신청 현황과 산재 인정 현황'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1년 7월까지 19명의 방사선 노출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했지만 5명만 산재승인을 받았다.

부산.울산.경남 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비파괴검사 업체 실태와 업무상 질병 발병 현황 파악, 일제 안전점검과 부산.울산.경남 지역 역학조사 실시를 요구했지만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약속했던 청장 면담도 취소하고, 안전점검과 역학조사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울.경 노동자건강권대책위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항의 기자회견과 1인시위를 벌이고, 부산지방고용노동청장의 직무유기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기자제휴=울산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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