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라고 했다. 그들의 생존권을 담보하는 노동을 잃어버린 삶은 그들에게 사형선고와도 같기 때문이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가 한국 사회의 현실로 드러난 지 3년. 아직도 쌍용자동차 정문은 산자와 죽은자를 가로막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남섭(42.쌍용차지부 사무국장)씨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당시 ‘산자’였다. 그는 산자의 몸으로 77일의 옥쇄파업을 함께했고, 죽은자가 됐다. 93년 입사해 17년 동안 쌍용자동차에 몸을 담아온 그가, 정리해고투쟁에 뛰어든 것은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싶어서였다. 연좌제보다도 더 뿌리 깊은 가난과 계급의 대물림 속에서, 그는 자신의 미래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김 씨의 형은 2001년 대우자동차노조 위원장이었던 김일섭 씨다. 당시 형에게 가해졌던 정리해고의 악몽이 8년의 시간을 거쳐 그에게도 왔다. 절박하게 싸우는 형의 모습이 결국 자신의 모습이 됐다. 회사의 졸속매각이, 결국 노동자의 정리해고로 전가된 주변 상황 역시 다르지 않았다. 산자인 그가, 죽은자의 목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2012년 겨울, 그들에게서 다시 목숨을 찾아 오겠다며 쌍용자동차 정문에 텐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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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희망텐트에서 형과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가 트위터에 올라왔어요.
형이 원래 간이 안 좋아서 술을 안 드세요. 그런데 술을 마시고 저에게 와서 돈을 쥐어 주더라고요. 사실 형이 대우자동차 위원장하면서 투쟁 할 때, 저도 지갑에서 돈을 꺼내 형한테 건넨 적이 있거든요. 형이 돈을 주길래, 나 아직은 살만하니까 이런거 주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형이 더 이상 자기를 부끄럽게 하지 말라며 받으라고 하는거예요. 크리스마스니까 조카들한테 케익이나 사서 들어가라고... 큰 돈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너무 소중했어요.
형이 동생한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미안함. 그리고 해고의 삶을 느껴본 형이 동생의 삶을 알고 있는 아픔. 그런 게 전해지니까요. 그리고 형도 이 곳(쌍용차)은 아픔의 장소예요. 2009년 당시, 같이 들어와 싸웠고 연행도 됐고. 하지만 (형으로서) 본인은 자기 길을 가더라도 동생은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겠죠. 근데 동생이 집에도 못 들어가고 싸우고 있으니까 거기서 오는 아픔이 있겠죠. 서로 그 마음을 아니까 눈물이 난 거예요.
형제이자 동지인 셈인데, 투쟁할 때 조언도 많이 받으세요?
그런 얘기는 서로 안해요. 형님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쌍차 투쟁 당시 형이 금속 부위원장이었어요. 저는 산자였고요. 형 입장으로서는, 동생이 산자라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형이 난처해 질까봐 파업에 참여한 것 아니냐는 미안함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그건 아니었어요.
파업할 때 장인장모가 찾아오셨을 때, ‘저 평생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누나들이 걱정 할 때도 ‘부모님이 준 양심인데 어떻게 거역하겠나’고 얘기 했고요. 지금까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살아온 적이 없어요. 파업에 참여한 것도 정말 나의 미래, 내가 다닐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고 결정 한 거예요. 형님 때문에 파업에 참여했다는 것은 단 1%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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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전후, 현장 분위기와 상황은 어떻게 변했나요?
현장 상황은 엄청 달라졌죠. 많이 나빠졌어요.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2011년 한 해만 암 환자가 26명이 발생했다고 하더라고요. 계획적으로 정리해고를 하다 보니, 노동자들은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럼에도 노동강도는 더 세지고요. 회사는 신규 인원을 충원하지 않고 기존 인원으로 생산량을 늘리려고 해요.
2000년 이후로 비정규직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비정규직을 활용하기도 하고요. 옛날 같으면 월차도 있는데 지금은 연차로 바뀌고, 노동자들 잔업도 거의 100%예요. 아파도 눈치보며 계속 일해야 하고, 산재가 발생해도 산재 처리도 잘 안해주고. 노동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관리직들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하는거죠. 특히 인원을 더 충원하면, 당장 내일 자신의 자리가 없어진다는 불안 때문에 다들 힘들지만 버티고 있는거예요.
그리고 정부가 중국과 인도와의 무역관계에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쌍용차를 인도 마힌드라에 매각했잖아요. 마힌드라가 제대로 투자하고 개발하면 신차도 나오고 할텐데, 거의 투자를 하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우려했던 제2의 먹튀가 이어지는 모양새예요. 그래서 연구원들 중에 기술력 있는 사람들도 100명 넘게 쌍차를 떠났을거예요. 우리 파업할 때, ‘너희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 빨리 나와라’라고 했던 사람들이 다 이직을 해요. 경력사원을 모집한다고 하면 이력서를 다 내고 옮겨가는 거죠. 오래 근무할 환경의 회사라 생각 하지 않는 거고, 정도 없으니까요.
쌍용차 정리해고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쌍용차는 구조조정을 한다고 해서 살 수 있는 회사가 아니예요. 2646명 정리해고 하고, 3자매각하면 회사가 살아난다더니, 그렇지 않잖아요. 이제 정부가 나서서 쌍차를 회생시켜야 돼요. 노동자도 살고 회사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죠.
사실 회사 상황이 어려우니까 투쟁이 더 힘들어요. 회사가 잘 돌아가면 투쟁만 하면 되겠지만, 정말 투쟁만 해서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투쟁의 방향을 정부의 직접개입으로 맞춰야 된다고 봐요. 상하이때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쌍용차를 팔아주면 인도를 좋게 해 주는 것 밖에 안돼요. 정부는 상하이에 매각하면서 중국이 그 넓은 땅에 쌍용차를 팔아주겠지 하는 기대감이 있었고, 인도 역시 마찬가지잖아요. 하지만 인도가 개발하고 있는 것은 나중에 인도 현지 생산을 위한 것이고, 결국 정부는 이를 묵인하고 있어요. 쌍용차 노동자들은 국가 무역관계 속에서 계속 희생을 당하고 있는 셈이죠.
쌍용차가 노사합의서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 한진중공업 합의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으셨나요?
많이 우려스럽죠. 그 약속을 안 지킨다고 해서 조남호 회장이 처벌받는 것은 없잖아요. 이 문제는 간단히 노사 합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거죠. 근본적인 정리해고의 문제를 바꿔내지 않으면 이 사태는 바뀌지 않아요
사실 현실적으로 회사가 잘 돌아갈 때 정리해고라는 문제를 노사가 다 잊어요. 지금 현대, 기아차가 잘 나가고 있지만 10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때문에 고용안전기금 등을 법제화시켜, 회사가 어려워도 충분히 생활안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정리해고 철회가 어렵다면, 어떤 환경에 처해있든 정리해고가 두렵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개입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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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후 가장 큰 후유증이 뭔가요?
회사 안에 있는 사람들은 파업 때 우리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던 사람들이예요. ‘너희가 제발 죽어줘라, 내가 살게’라며 우리한테 새총을 쐈던 사람들이고요. 우리는 또 누가 우리에게 그 때 새총을 쐈는지 알죠. 회사는 파업 때 사람들에게 어떤 합의도 없다는 원칙을 지키겠다며 사람들에게 새총을 쏘게 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게 한거죠. 근데 무급휴직자가 만들어지면서, 새총을 쏘고 쇠파이프질 한 사람들이 불만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공동 관리인이었던 한 사람이 절대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공장 안으로 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이 지금까지 존재를 하는 거죠.
지금도 정문 앞에서 마주치면 미안해 해요. 그렇지만 서로 ‘저 새끼가 나한테 새총 쏜 놈’이렇게 바라보게 돼서 쉽지 않아요. 아직까지 서로의 상처가 어마어마한거죠. 사실 우리는 밖에서 심리치료를 통해서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데 저 안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저 안에 있는 사람들 우리 얼굴도 제대로 못 마주쳐요. 정문 지나갈 때 땅만 보거나 앞만 보며 걸어가고... 심리적 스트레스 엄청 날 꺼예요.
파업 당시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다 걱정했죠. 그때만 해도 아버지도 아프셨고, 어머니도 돌아가신 상황이었거든요. 폐암에 걸리셨던 아버지는 저녁 9시만 되면 9시 뉴스를 보셨어요. 다행히 공장에 공권력이 투입 되기 전에 돌아가셨죠. 다른 형제들도 ‘너는 산자인데 왜 거기서 사느냐, 네가 걱정이다’라며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가 딸이 두 명 있는데, 제가 파업할 때 왔었어요. 산 사람들 중에서 가족들이 직접 온 곳은 두 집정도 밖에 없었어요. 꼬맹이가 그 때 두 살이었는데, 1500대오가 모인 자리에서 생일 케익을 자르고 했어요. 그래서인지 아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면 팔뚝질을 하고, ‘투쟁’하면서 딱 끝내요. 나중에 이거 보면서 사실 무섭더라고요.
둘째는 파업을 겪고 난 후 틱 증후군이 있었어요. 눈을 깜빡깜빡 거리고. 그래서 지난번에 23일 공연에 아이들을 올리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제가 반대했어요. 아이들이 티비에서 이명박이 나오면 다른 데로 돌려요. 집집마다 이런 것을 느끼는 것 같아요. 부모들이 그렇게 만들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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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텐트에 연대했던 분들과 동지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우리 노동자들은 단지 사업장 문제 해결이 아닌 근본적인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해요. 희망버스 역시 단지 사업장의 문제해결 보다는,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더욱 부각시켜야 한다고 봐요. 그런 흐름을 쌍용차에서 만들어갔으면 하고요.
현재 자본은 장기적으로 회사의 흐름을 계획하고 비정규직을 계속 채워나가고 있는데, 노조는 자기 앞에 달린 고용만 쳐다보고 있어요. 수세적으로 갈 수 밖에 없죠. 정리해고 문제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말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모여야 해요.
사실 파업 후 지금까지 회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저희 싸움에 반응을 한 적이 없었어요. 근데 23일 희망텐트를 거치면서 회사가 반응을 해요. 2011년 한 해동안 이슈가 됐던 희망버스가 자신들을 향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겠죠. 그런 것을 보면서, 아 우리도 아직 살아있구나 하는 기분을 느꼈어요.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