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은 비정규직 철폐하고 현장출입 보장하라"

박일수열사 8주기, 울산 현대중 정문 앞 노동자대회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박일수 열사 8주기를 맞아 14일 오후 6시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박일수 열사 정신 계승 및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울산노동자결의대회'를 열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박일수 열사 8주기를 맞아 14일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열린 '열사정신 계승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울산노동자대회'. [출처: 울산노동뉴스]

집회를 주관한 민주노총울산본뷰 김주철 본부장은 "박일수 열사가 하청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저항했음에도 그후 지금까지 류기혁 열사를 비롯한 신승훈 열사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동구에서 대중투쟁을 중심에 두고 총선 승리를 위해 민주노총이 달려나가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통해 노동자도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다.

금속노조 최정명 부위원장은 "8년째 하청노동자의 삶은 변하지 않았으며 현장투쟁과 법과 제도를 바꾸는 투쟁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이 상식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에 힘을 실어줘야 원내에 들어가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다"며 금속노조가 선두에서 총파업을 성사시키고 비정규직 없는 원년을 만들자고 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성웅 조합원은 박일수 열사의 약력을 소개하며 "최근 노조에 가입한 어느 조합원은 박일수 열사를 잘 모르지만 2014년 10주년 되는 날 현대중공업을 뒤집어 엎자고 제안했다"며 조합원들이 현장을 조직하기 위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조성웅 조합원의 추모시 낭송에 이어 대오 앞에 선 금속노조울산지부 한영선 지부장은 "조합활동을 위해서는 해고를 각오해야 하는 현실, 착취와 탄압, 비정규직의 서러움은 달라진 것이 없다"며 "열사의 외침은 산 자들이 떨쳐 일어나 평등한 세상을 건설하라는 것이고, 현중사내하청노조와 함께 현장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김동찬 부지부장은 "새누리당도 비정규직 차별 철폐라고 쓴 명함을 돌리던데 선거투쟁만 이기면 모든 비정규직이 철페되고 법과 제도만 바꾸면 다 해결 되겠느냐"며 "힘찬 투쟁이 필요하고 지역의 모든 주체들이 죽을 각오로 투쟁전선에 뛰어들어 2012년을 노동자 민중의 대 반격이 시작되는 해로 만들자"고 말했다.

현대중사내하청지회 하창민 지회장은 "절망의 공장을 넘어 하청노동자도 인간임을 선언한 열사의 죽음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반성하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회사측에 현장출입 보장을 요구했다.

하창민 지회장은 "수많은 동지들과 열사의 희생을 통해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나 현중자본은 하청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2006년 법원에서 월 8회 현장출입을 보장받았지만 회사는 회사비방이니 허위사실 유포 등을 이유로 출입을 안 시키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정당한 노동조합활동과 블랙리스트 철폐하자는 것이 비방이나 허위사실 유포냐"며 "하청노동자로서 분노가 있고 열사정신을 진정으로 새겨 강고한 투쟁 만들어 나가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집회 중간에 울산지역노동자노래패연합의 공연과 울산문화예술센터 '결'의 추모공연이 있었다. 이날 집회에는 금속노조최정명 부위원장을 비롯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플랜트건설노조울산지부, 화섬노조울산지부, 공공노조울산본부, 울산해고자협의회,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서영호.양봉수열사정신계승사업회, 부경울열사회, 한진중공업열사회, 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사회당, 동구청장, 구.시의원들, 현대중사내하청지회 조합원과 지역시민들이 함께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노동자대회를 마친 뒤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전하문까지 거리행진을 벌이고 박일수 열사가 분신했던 4도크를 바라보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쳤다. 이들은 현대중공업을 향해 사내하청지회 관계자들이 공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출처: 울산노동뉴스]

[출처: 울산노동뉴스]



박일수 열사를 기억한다

사내하청지회의 한 조합원은 "박일수 열사는 하루 종일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를 정도로 지져되던 취부사였고 술이 얼큰하게 달아 오르면 기타를 치며 걸죽한 노래를 부를 줄 아는 멋이 있었고 집에 찾아 오는 동료들을 위해 손맛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정이 많은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런 그가 2004년 2월 14일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며 분신하기까지의 활동을 정리해 본다.

2002년 12월 인터기업 하청노동자들의 소급분 쟁취 투쟁

2002년12월25일, 아침 조회 시간에 인터기업 사장 박진영은 원청에서 기성을 줄때 소급분을 주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고 박일수 열사는 만약 기성에 소급분을 지급했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소급분을 주겠냐고 항의했고 박진영은 주겠다고 약속했다. 고 박일수 열사와 공개조합원인 박규영 조합원 등이 운영지원부를 찾아가 확인한 결과 운영지원부부장은 기성에 소급분을 포함해 지급했다고 밝혔다. 이날 저녁 고 박일수 열사는 의장 소속 하청동료들을 소집했고 이 사실을 폭로했다. 이 자리에서 하청동료들은 작업거부를 결의했다.

2002년 12월 26일 인터기업 의장부 소속 하청노동자들은 탈의장에 도착해서 작업복으로 갈아 입지 않고 작업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일당들의 소급분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으나 인터기업 사장 박진영은 탈의장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요구를 거부했다.

원청 부서 관리자들이 탈의장에 나타나 어르고 달래고 온갖 협박까지 했으나 인터기업 의장부 소속 하청노동자들은 박일수 열사를 중심으로 단결을 유지했다. 마침내 인터기업 박진영 사장은 인터기업 의장부 소속 일당 하청노동자들에게 소급분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인터기업 하청노동자들의 소급분 쟁취투쟁은 기간 하청노동자들의 익숙한 저항의 방법이었던 제끼는 방식, 하루 일당을 버리는 방식, 현장 밖으로 나오는 방식이 아니라 바로 현장 안에서 당당하게 소급분을 요구하며 작업거부에 들어갔으며 원청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단결을 유지했던 투쟁이었다.

한마음회 활동

소급분 쟁취 투쟁 승리의 그날, 박일수 열사는 동료들에게 모임을 제안했고 그 때 만들어진 모임이 바로 한마음회였다. 한마음회는 인터기업 소속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사업부와 해양사업부를 포괄하는 용접, 취부사, 그라인더공이 참여했다. 초창기에 60여 명에 활발한 모임을 가졌다.

박일수 열사는 한마음회를 소집하고 운영하면서 근로기준법에 보장되어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들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노동법을 공부했고 메모했으며 잘 모르고 막히는 것이 있으면 지역노동상당소, 비정규직센터, 변호사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 투쟁의 방법을 찾았다. 나아가 현대중공업과 업체에서 자행하는 있는 탈법적인 행위에 맞서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실천 투쟁도 계획하고 조직했다. 그것이 아래에서 소개하는 2003년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이었다.

2003년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

박일수 열사는 인터기업 의장부 업체 동료들, 일당직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보장되어 있는 ▲주차, 월차, 연차 지급 ▲휴일근무 및 연장근로가산임금 지급 ▲예비군 훈련 및 법정시간에 준한 임금 보전 ▲설 휴가 및 하기 휴가시 70% 유급 적용 등 요구안을 마련하고 70여명의 동료들을 대상으로 요구안에 기명 싸인하도록 하고 박일수 열사 자신이 동료들의 대표자로서 사장과 교섭을 시작했다.

인터기업 사장 박용진은 타협안으로 '임금체불액은 지불능력이 없어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하고, 원청에서 해고 압력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일단 휴직처리를 하고 이후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체결하고 이를 비밀에 부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고 박일수 열사는 이러한 원하청의 탄압에 맞서 탄압 사실과 각서의 내용을 공개하는 유인물을 현장에 배포했다.

협상 자리에서 인터기업 사장과 관리자들은 박일수 열사를 기만하면서 뒤로는 업체동료들을 개별적인 미팅하고 회유와 협박을 통해 기명 싸인을 철회시켰다. 박일수 열사와 함께 한다면 불이익(물량이 없기 때문에 해고시키겠다)을 주겠다면서 협박했다. 박일수 열사와 업체 동료들을 분리시키고 이간질 시키는 전형적인 사측의 탄압이 자행되었다.

강제휴직기간 중에도 인터기업이랑 임금체불과 휴직철회 등을 내용으로 한 노사협의회를 진행하고 연월차, 퇴직금 등 임금체불 해결을 위한 하청노동자서명을 조직, 현대중공업의 원하청 활동가들을 만나 연대를 호소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등 고 박일수 열사의 활동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이 결성된 바로 후의 일이다.

사내하청노동조합이 결성시 위원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고 박일수 열사는 노동조합 결성후 원하청의 탄압이 거세어지자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농성자체가 무산되고 강제휴직상태에서 현장에 출입도 제한되는 상태에서 투쟁 전술의 폭은 좁아져만 갔다.

열사는 당시 노동조합 가입에 있어서 현재 처해진 자신의 조건에서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가기 위해서는 노조 가입이 먼저가 아니라 복직을 우선 관철시키고 현장에서 하청노동자를 조직하여 노동조합으로 가입해야 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활동가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면서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나는 조합원들 속에 함께 하지 않으면 살수가 없다는 생각을 굳히고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2003년 12월 원청은 해고통지서도 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고 박일수 열사의 모든 전산자료를 말소시키고 강제 해고를 시키면서 열사는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짐을 느꼈다. 출입증이 없어지고, 해고가 되어 현장출입 자체가 아예 불가능해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염원했던 열사는 또다시 좌절을 느꼈다고 한다. 열사는 현장으로 돌아가 하청노동자를 조직하여 하청노동자도 인간답게 살수 있는 ,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받을 수 있는. 현장을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몇 번의 투쟁전술이 무산되고 현장에 돌아갈 가능성이 계속 줄어들면서 열사는 희망을 잃어갔다.

그리고 분신하기 바로 전날... 열사가 분신하기 몇 시간 전인 오후 9시 30분경, 평소 투쟁을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던 한 동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은 그 통화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너도 알다시피 전산처리 해서 삭제된 거 때문에 장기적인 것은 실현이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해. 'KBS추적60분'에 경위서 및 자료, 유서 등을 소포로 보냈다. 내 목숨 귀한 것 나도 알아, 그런데 주어진 눈앞에 보여진 상황이 노동에 관련한... 중공업 하청문제의 곪고 썩어있는 것들이 모두가 껍데기뿐이니, 법에 호소해야 그리고 신고하면, 법적으로 처리해주는 형식적인 것이 지금의 현실 아니냐. 이것은 아니다 싶다. 갖고 있던 생각, 보고 느낀 것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으나 한계에 부딪치는 것에 대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다는 못 바꾸더라도 20-30%라도 바꿔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나의 죽음으로 사회가 개혁되길 바란다. 그냥 살아봐야 쥐새끼 같을 뿐이다. 과거에 몇몇 사람들 비정규직 문제, 정규직 문제 거론한 사람들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기업 안에 부정, 부패, 비리, 상납, 떡값주고 현금 접대하는 돈이 어디서 만들어져서.... 하청노동자 고통줘서 쥐어짜서 주면 피해자는 누구냐 이거야. 자기 논 팔아서 자기가 하느냐 이거야. 지 챙길거 다 챙겨가고는 썩게 하느냐 이거야. 비정규직 문제 구체적인 해결은 10년이 가고 20년이 가도 안된다. 힘을 만든다는 것은 환상이고 이론인 듯 싶다. 나도 희망이 왜 없겠어.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 집에서 나오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너와는 함께 계속 고민해 왔기 때문에 그나마 전화 한 통 했다....(형, 죽으면 안돼요. 살아서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해야죠.....어디에요? 라는 질문에) 집에서 나와있으니까 찾지 마라. 유서는 집에 1통, 내가 1통, 믿을 수 있는 너에게 줄 1통은 개집 까만 봉투에 넣어 두었으니 아침 일찍이 가봐라. 사건이 터지고 사건에 대해 비하를 시킨다면 정리를 해서 바로 잡아달라.

그리고 14일 새벽에 박일수 동지의 분신이 알려졌다. 전화를 받았던 그 동료는 소식을 듣자마자 고 박일수 열사의 집을 찾아갔지만 이미 경찰과 사내하청노조에서 집을 수색한 상황이었고, 유서가 있다는 장소에서는 유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출처 : 현중사내하청노조 ]

[박일수 열사 약력 및 분신 경과]

- 1954년 9월 3일, 경주 출생

- 2000년경 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 근무(대서공영, 건일산업 등)

- 2002년 3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인 인터기업에 입사.

- '한마음회'이라는 사내하청협의회(모임)에서 활동을 하며,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동료직원들의 임금착취 부분인 연월차 퇴직금 등의 임금체불건을 맡아서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의 활동을 해옴.

- 2003년 7월 22일, 현대중공업 전공장에 선전물 배포.

- 연월차, 퇴직금 등 체불임금 지급과 근로조건 개선 문제로 업체에서 동료들과 투쟁을 전개함

- 2003년 12월 원청은 해고통지서도 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故 박일수 열사의 모든 전산자료를 말소시키고 강제 해고

- 2004년 2월 14일 새벽, 분신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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