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밤 별만 반짝...3.11 잊지 않기 위해

[동일본대지진 1년, 현장을 가다](5) 센다이 미디어떼크 호소야 씨

미야기현의 센다이시는 도호쿠(동북)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센다이 연안부 지역은 지진 해일 피해가 심하고,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로부터는 약 100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연안부 마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센다이 시내도 지진 피해를 입었고, 원원 사고로 인해 고통받는 도시 중 하나다.

이 가운데 미디어활동가들이 시민들과 교감하는 센다이 미디어떼끄도 지진 피해를 입었다. 복구 작업으로 올해 1월 27일 건물 7층에 제 모습을 찾았다.

  3.11 사고 이후 센다이 시내에 있는 미디어떼끄도 피해를 입었다.

이곳 미디어활동가들은 ‘3.11을 잊지 않기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년 동안 진행되는 프로젝트였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최소 3년가량 진행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센다이시에서 위탁받은 문화재단에서 재정을 지원받았다가 현재 네덜란드 한 재단에서 기금 지원을 받고 있다.

미디어떼끄는 스튜디오 기능이 갖춰져 있어 시민들에게 비디오 카메라 등 기자재를 대여하고, 그 성과물들이 다시 센터로 모이게 하는 공공 자산이다. 그런 시스템을 활용해 시민들은 자신의 피해를 말하기 시작했다. 영상 시스템을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아카이브를 구축한다.

3.11 지진-원전 피해 1년을 돌아보며 평가와 계획들을 자발적으로 이야기하는 시민 모임도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별이 있는 하늘과 길’이란 모임이다. 이 모임 이름은 지진 직후 전기가 모두 끊어지고,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에 뜬 하늘의 별이 기억에 남았다는 많은 시민들의 증언으로 붙여졌다.

모임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시미즈(32세) 씨는 “사고 이후 1년 동안 복구에 대한 노력을 많이 했다. 그래도 그 별들을 보았던 이전의 모습으로 절대 돌아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방법을 찾기 위한 모임이다”며 “그 길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왔던 길을 돌아보고, 길을 찾는 다양한 방법을 서로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러 직업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꼭 많은 시민들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디어떼끄로 와서 우리와 함께 같이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가운데 <미디어충청>은 도쿄에서 센다이로 와 미디어떼끄의 ‘3.11을 잊지 않기 위해’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는 호소야(28세) 씨를 만나보았다. 호소야 씨는 작년 4월 센다이에 온 그는 7월 센다이로 이사까지 하며 장기간 현장 활동을 시작했다. 호소야 씨를 통해 그가 하는 일과 센다이 시민들의 단면을 살펴본다.

눈에 보이는 피해가 전부가 아니다
가설 주택 거주자, 독거 노인 등... 고립되고 생활 파괴


무슨 작업을 하는가

취재하면서 지진 해일 피해를 입은 센다이 시민들을 만난다. 현재 센다이 미디어떼끄는 지진과 해일 피해를 중점으로 기록한다. 지진 피해를 입거나 피난 와 살고 있는 시민과 같은 눈높이로 기록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상 아카이브 작업을 하고 있다. 학교 선생님 등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 지진 때 어디 있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을 질문하고 그들의 증언을 비디오로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영상을 편집해 자료들을 비디오 클립으로 만들고, 웹에 올린다.

사고 이후 1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난 이유도 있겠지만 센다이 시내는 큰 피해는 없었던 것 같다. 도쿄에서 4월 처음 도착해서 이곳 풍경은 어땠나

시내 건물, 역사는 큰 피해가 없어서 큰일났다는 느낌이 없었다. 센다이는 지진 전에도 몇 번 왔었다. 동네가 변했다는 느낌은 없었다. 역사가 조금 깨지고, 공사용 시트로 가려져 있었다. 신칸센도 멈춰 섰다.

하지만 항구나 바다에 가서 취재하다 보면 냄새가 심하고, ‘이게 해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연안부에 갔을 때 무엇을 찍어야 할 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상태를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피해가 심한 이시노마키의 경우 자원봉사자들이 노력해 쓰레기도 치우고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도 집, 학교가 없어지는 등 피해가 크니까 아직 갈 길이 멀다.

또, 눈에 보이는 피해가 다가 아니다. 생활이 파괴되었다. 제대로 된 것 같지만, 그 지역 생활들이 모두 다 망가졌고, 지역 경제도 파괴된 것 같다. 예를 들어, 전국적인 대형 슈퍼 ‘이온’이 있는데, 피해 지원금을 받은 시민들이 주말에 이온에 가서 물건을 한꺼번에 사 가지고 간다. 슈퍼가 이온 밖에 없고, 그 돈은 다시 도쿄로 흘러들어간다. 부흥자금을 투입해도, 지역으로 환원되는 게 아니라 도쿄 쪽으로 가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교육도 문제될 것 같다

학교가 해일 피해로 넘어간 곳은 학교 자체가 없으니까 다른 동네 학교에 가서 수업 받는 상태이다.

3.11 사고로 인해 사회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지만 가정불화, 자살 등의 소식이 들려온다. 촬영하면서 그런 경우를 자주 접하는가

사실 가설주택 문제가 심각하다. 고립된 사람들이다. 최악의 경우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혼자 죽었는데, 죽은지도 모르고 나중에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하고 있던 농사할 수 없게 되니까...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이다. 농사로 만들어진 근육이 일주일 쉬고 있으면 다시 움직이기 힘들다고 한다. 가설주택 피난민들을 위해 자원봉사단체나 종교단체가 여러 가지 이벤트를 하지만 당연히 한계가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생 농사 밖에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그 일이 없어지면 인생이 없어진 것이다. 생활이 파탄 나는 것이다.

또, 직접들은 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가설주택에 사는 사람들 중 알코올중독에 빠지거나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다.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제일 인상에 남는 사람은 센다이 가모우 지역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어려움을 드러낸 이야기였다. 그 선생님은 지진 해일 피해 때 학교에 없었는데, 피해 소식 듣고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며 급히 돌아왔다. 가기 전에 무전기도 빌렸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구조대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에 기차를 차고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가 피난소였는데, 선생님이 가방에 초콜릿과 과자를 잔뜩 가지고 가서 학생들과 만났다. 초콜릿이 왔다고 하니까 학생들이 “와~” 하면서 모였단다. 그 이후에 자위대가 헬기로 구호물품 전달해 줬다고 한다.

  작년 3.11 사고 직후, 전부 쓸려가버렸다. 센다이시 연안부 가모우 지역.

  작년 3.11 사고 직후, 전부 쓸려가버렸다. 센다이시 연안부 가모우 지역.

지진 해일 피해 복구로 방사능 측정 여력이 없기도
“방사능이 위험해도 일단 오늘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문제가 심각한 데, 직접 방사능 피폭 정도를 측정하는 시민들도 있는가

시민 중에는 방사능 측정을 직접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음식이나 흙이나 등 여러 가지를 측정한다. 개인 설량계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농민, 특히 유기농 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직접 농산물 측정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진 해일 피해 복구에 치중하고 있어, 방사능은 측정은 여력이 없는 경우도 많다. 센다이는 방사능 오염이 후쿠시마 원전 인근 지역보다 심하진 않지만 신경 써야 하는 수치이다.

지진 해일 피해 복구시 방사능 피폭도 고려해야 할 것은데

쓰레기 치우거나 하수구 정비 등의 일을 할 때 방사능과 관련한 대책이 없다. 방사능 수치가 높은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는데 거기에 대한 방호대책이 없는 것이다. 일을 할 때 방호복도 입지 않고 그냥 일을 하기도 한다. 이시노마키 해안에서 쓰레기 청소할 때는 동네 어린 아이가 바닷물에 그냥 들어가는 데 아무런 제재를 안 했다. 후쿠시마 원전이랑 가까운 거리인데도 말이다. 또, 아키타 현에서는 비가 오는데 아이들이 우산을 안 쓰고 그냥 비를 맞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방사능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그렇다.

정부, 지자체에서 방사능 방호와 관련한 매뉴얼을 각 가정에 나누어주는지

지자체에서 형식적으로 그런 것을 만드는 데, 나는 직접 받은 적이 없다.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많이 걱정하는 것 같다

도쿄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많이 걱정한다. 특히 음식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진 해일 피해로 당장 집이 없고, 일자리가 없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걱정이 크다. 방사능이 위험해도 일단 오늘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방사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오늘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사고 이후 TV서 반복적으로 처참한 모습 방영
어딜 가나 지진, 원전 얘기...“아, 미치겠다”
피해 지역에 와서 삶에 대한 힘이 생겨


센다이에서 지진 해일 문제를 촬영하기 전 도쿄에서 집중하던 영상 주제는 무엇인가

1910년대 일본의 영화나 미술에 관한 미디어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상 활동의 사람들의 구술 작업도 했다. 또 하나는 사회운동과 관련해 시위나 집회의 영상을 비디오로 찍는 작업을 했다.

영상 찍는 작업을 오랫동안 했나?

처음 영상을 찍은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60년대, 특히 실험영화에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영화를 보면서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테라야마 슈지(아방가르드 극작가, 감독, 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한 일본의 대표적인 전위 예술가) 감독의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사회운동의 시위나 집회 촬영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미디어 활동가들이 경찰에 잡혀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경험이 있나

동료들은 구속되기도 했는데, 다행히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그래도 일본의 경우 현장에서 경찰한테 구속당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나는 항상 경찰에게, 그리고 우익들에게 욕먹는다.

촬영하다 경찰에게 욕먹으면 기분 나쁜 텐데(웃음)

물론 화나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아치 소리를 들었다. 경찰은 내게 “양아치 새끼야, 호소야”라고 한다(웃음).

도쿄에서 센다이로 와서 머물면서 장기간 작업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계기는?

그렇게 큰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3.11 지진 원전 사고가 일어난 이후에 TV에서 반복적으로 관련 영상을 방영했다. 계속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끌 수가 없었다. 그런 영상에 뒤집어 쓰인 상태였다. 신체적으로 너무 피곤하고, 힘든 상태였는데, 지인이 4월부터 센다이에 왔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4월, 센다이의 가모우 지역 항구에서 자전거 타면서 사고 직후 피해가 느껴지는, 지독한 냄새를 맡았다. 그때 “아, 나는 살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온 몸의 감각이 살아났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삶에 대한 힘이 생겼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옛날부터 계속 미디어 상영을 통해 생각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런 것을 신체적으로 체험했다. 정보들이 나한테 일방적으로 계속 오고, 나는 수동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어딜 가나 지진-원전 문제 얘기였다. “미치겠다 정말!”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여러 가지로 자신의 일상을 찾아갔을 텐데, 나는 항구에 가서 몸으로 느끼며 일상을 찾아간 케이스다. 또, 4월에 큰 집회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모며 일상을 찾아갔다.

호소야 같은 미디어 활동가들이 많이 있는가. 사고 지역에 머물면서 집중해 취재하는...

도쿄나 다른 지역에서 센다이에 왔다 갔다 하면서 미디어 활동, 지원하는 사람들 많이 있다. 나처럼 이사 와서 장기간 취재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여기 살고, 같은 공기 안에서 음식을 먹고, 생활하면서 미디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는 신체성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록 자체가 역사이긴 하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호소야 씨가 바라는 바가 있다면

국가나 제도, 권력에 대해서 일 시작하기 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지진-원전 사고 이후 미디어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됐다. 표현이 좀 어려운데, 일반적인 미디어와 다른 미디어, 아우토노미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말이지만 미디어는 메시지다. 도구가 아닌 메시지, 바꾸어 말하면 미디어는 우리 사회를 더 생기 넘치는 사회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통역 : 야스다(일본노동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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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 후쿠시마 ,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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