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 “3.11 일주일 뒤 도쿄 도착해 울었다”

[동일본대지진 1년, 현장을 가다](6) 후쿠시마 원전 7km 피난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로부터 불과 7km 떨어진 나미에마치에 살다 피난 온 다카다(78세) 씨가 그나마 가설주택이 아닌 시영아파트에 살고 있어 쫓겨날 위기는 면했다고 한숨을 쉰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도 그랬고, 재해 법률상 피난민들은 입거한 날부터 2년까지만 가설주택에서 살 수 있다. 다카다 씨는 “둘째 딸이 이곳으로 오라고 해 운이 좋아 안정적으로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가설주택에 살고 있다”며 “그들은 마음속에 답답함과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돌아갈 수 없는 땅, 지진 해일 피해와 원전 사고로 피난 지역인 후쿠시마 원전 20km 경계안 사람들은 일본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있다. 정부는 사고 이전 20km 내 거주하고 있던 인구 약 7만8천2백명 중, 사고 이후 작년 4월 22일 10개 지역에서 약 8만5천명이 대피하고 있고, 그 중 어린이가 약 6천명이라고 발표했다.

도쿄 가와사키시 다카츠구에 위치한 시영아파트(총 5개 동)에 살고 있는 피난민은 8가구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도 타 지역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라 서로 잘 모른다. 그는 나미에마치에 살던 이웃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전화로 안부만 확인한다고 했다.

3월 11일을 회상하던 다카다 씨는 쉬지 않고 전쟁 같던 시간을 풀어냈다. 그는 딸 부부와 손자, 손녀와 함께 도쿄로 향했다.

  [사진 총괄 : 도영, 재은]

점심값 1천엔, 담배도 없고...농사 복장 그대로 피난 가
어디로 가야 하나... 원전 폭발 듣고 “이제 멀리 가야겠다”
10리터 20리터씩만 주유... 가다 서다 일주일
소, 돼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야채 가게로


작년 3.11 상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수도, 전기 다 끈기고, 슈퍼도 없고. 전화는 가끔 됐죠. 지진 쓰나미가 낮에 났으니 망정이지 밤에 그런 사고 나면 아마 패닉 상태였을 거예요.

지진이 너무 많이 흔들려서... 밭에서 일하고 있다 잠깐 집에 들어갔는데 “지진 왔다, 와! 큰일 났다”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조금 흔들리다 멈추더라고요. 그래서 정리하려고 돌아가는데 또 지진 나고, 또 나고. 뭐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더라고. 큰일 났다 생각하다가 쓰나미가 왔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다 도망가기 시작했어요. 나는 농사 복장 그대로 도망갔죠. 점심 사 먹으려고 가지고 있던 1천엔이 전부였고, 담배도 없었죠. 도쿄에 왔을 때 농사짓다 왔으니까 옷에 흙이 그대로 붙어있었죠. 그 정도였어요.

이와떼현 지진 쓰나미 피해하고, 후쿠시마현하고는 전혀 다른 피해예요. 지진 강도 M9로 최대 지진이죠. 쓰나미도 너무 크고. 쓰나미 와서 차도 막히고, 어디로 가면 되는 지 아무도 몰랐어요. “멀리 피해라!” 하는데 아무도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어요. 원래 심정으로는 멀리 가고 싶지 않았지요. 다음날 원전이 폭발했다고 소식 듣고 “아, 큰일 났다. 이제 멀리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죠.

1천엔 가지고, 몸만 빠져나왔네요. 다시 돌아가 본 적이 있나요

네. 집에서 아무 것도 못 가지고 나와 도망갔죠. 집은 지진 때문에 완전히 망가져 문도 닫을 수 없는 상태였어요. 그냥 집을 포기했었던 거죠. 도망 올 때 소, 돼지 등 가축들이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고, 야채 가게 같은 곳에 들어가서 모두 먹어치웠죠. 사고 뒤 한번 가본 적 있는데, 통장, 사진 등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나왔어요.

  다카다 씨

피난 갈 때 이동은 어떻게 했나요? 도로도 끊기고

자동차로 갔는데, 차에 기름이 없어서... 10리터 20리터씩 밖에 주유가 안 됐어요. 조금 가면 기름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여기서도, 저기서도 10리터씩 밖에 안 주니까 어쩔 수 없이 10리터만큼만 가고. 멀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죠. 천천히 가다 멈춰 섰다 하는 상태가 일주일 정도 계속됐죠. 휴대폰으로 여기 저기 연락하면서. 다 도망가니까 길도 막히고, 도쿄 등지에서 음식을 보낸다고 해도 화물차가 못 들어오니까 물건이 들어올 수가 없었죠.

긴급 차량 주유는? 주유서도 무너진 곳이 많았을 텐데요

복구차량, 긴급차량은 우선적으로 주유가 가능했어요. 누구에게 적게 주고 누구에게 많이 주면 문제가 생기니까 10리터,, 20리터씩 준다고 약속을 하고, 그렇게 운영한 거죠. 또 지진 해일 피해가 심해서 정유회사가 멈췄죠. 정유회사도 정부가 명령해서 자유롭게 기름을 팔 수 없었죠.

후쿠시마는 쌀이 많은데, 그래도 물이 없어서
주먹밥으로 하루 한 끼...피난소 사람들 떠나면 나도 가야겠다
편의점 주인 “후쿠시마 사람, 방사능 때문에 쓰레기 버리면 안 돼”


잠은 주로 차안에서 잤겠어요?

밤에는 차 안에서 자기도 하고, 피난소에서 잔적도 있죠. 피난소는 매일 매일 사람들이 바뀌었죠. 전날에 옆에 있었던 사람이, 다음날에 없어지고. 사람들이 떠나니까 ‘나도 가야하나... 그럼 가야겠다’ 하고 다시 떠나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는 몇 시간마다 지진이 계속 왔어요. 그게 힘들었죠. 피난소에 자원봉사자도 안 모이고. 왜냐면 모두 자기 집에서 옷만 챙겨서 나왔으니까 가고 싶어도 못 가고. 재해 관련 네트워크가 있는데, 이곳에서 모여라 부탁해서 몇 명이 왔어요. 식량도 문제였죠. 후쿠시마는 쌀이 많은 현인데, 그래도 물이 없어서 요리를 할 수 없었죠.

음식은 어떻게 해결 했나요

주먹밥 해서 먹었죠. 하루에 한 대. 피난소에 가면 세 끼 중 한 끼 주는 피난소 있었고, 보통 하루에 한 끼씩 먹었죠.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모이는 피난소에 가면 상황이 좀 좋은 편이었고요.

씻지도 못했을 텐데, 양치질이라도 했나요

세수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일주일동안 너무 춥고, 씻을 수 없고. 일주일 후에 딸아이 집에 가서 목욕했는데, 그때 울었답니다.

밤에 너무 추웠지만 피난소는 담요 두 장 밖에 없었고. 아이들은 춥다 춥다 하고 하는데 공무원들이 두 장 밖에 없다며 담요를 더 주지 않았죠. 사실 많이 있었는데, 규정 때문에 주지 않았죠.

일주일 동안 천천히 가다 서다 움직이는데, 화장실도 만만치 않았겠어요

편의점 화장실로 갔죠. 편의점 주인은 문 앞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계속 감시했어요. 후쿠시마서 온 사람들은 방사능 붙어 있다는 거죠. 우리가 쓰레기 버리면 그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편의점 주인도 모르잖아요. 주인은 그냥 가게 앞에 서서 버리면 안 된다고 막았지요.

모두 다 혼란...“정확한 정보와 운이 좋아 살아 남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TV 보고, 그냥 TV 보고...“손자, 손녀 돌아가고 싶다 하죠”


피난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피난할 때는 냉정하게 생각해서, 정확한 정보를 잡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모두 다 혼란스러워서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 정확한 정보만이 살 길이죠.

또 하나는 운이 좋아야 해요. 나의 경우 나쓰시오바라 라는 동네에서 도쿄로 가는 기차가 움직이고 있다, 그곳에 가면 도쿄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는데, 나쓰시오바라까지 어떻게 가야 할 지 몰랐어요. 그때 운이 좋았던 게, 택시 회사가 있었는데 여기서 기름을 팔았죠. 택시 타고 가는 대신에 기름 사서 차에 넣고, 나쓰시오바라로 갔죠. 운이 좋았어요.

  둘째 딸이 있는 도쿄로 와 터를 잡은 다카다 씨. 이곳 시영아파트에 총 8가구의 피난민이 산다.

혼란속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20km 내 경계 구역에 도둑질이 너무 많아 위험한 지역이 되어 버렸죠. 도둑이 많아서 경찰도 가고 싶지 않아 했죠.

그래도 피난 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 지진 때문에 길이 다 망가지고. 그런 혼란 속에서 무슨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조해서 다 같이 질서 지키며, 도망갔어요. 나는 그게 신기했어요. 일본 동북지방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동북지방 사람들이 대체로 말이 적고, 잘 참는 성격이긴 하지만 만약 문제가 생기고, 싸움이 나면 피난 가는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기도 하죠.

도쿄에 와서 환경도 바뀌고,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TV 보고, 그냥 TV 보고, 하루 종일 지내요. 쓸쓸해요. 심심할 때는 빠찡고, 가라오케 가고 술 마시고. 빠찡고 일주일에 두 번, 가라오케 두 번, 술도 두 번. 매일 빠찡고, 가라오케 가거나 술 먹으면서 그렇게 지내는 거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너무 심심합니다.

후쿠시마 나미에마치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데요

젊었을 때는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농사를 지었죠. 감자, 콩, 옥수수 등 야채 농사로 약 1천 평 밭농사 지었죠. 집도 100평으로 넓었어요. 먼저 하늘로 간 나의 아내는 미용사였는데, 내 딸도 미용사죠. 집과 미용실이 같이 있었어요. 시골 큰 집에서 살던 아이들은 좁은 집에서 사니까 불편하다며 돌아가고 싶다고 하죠. 왜 작은 집으로 이사 왔냐며(웃음). (기사제휴=미디어충청)

  한 음식점에서 만난 뒤 돌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쓸쓸하다"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 통역 : 야스다(일본노동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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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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