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지역 어떤 공동체로? 이제부터가 중요”

[동일본대지진 1년, 현장을 가다](17) ‘이름 없는 지진구호단’ 전통일노조

3.11 이후 재해, 원전현장에서 피해가 속출하면서 노조가 재해지역을 지원하는 일은 일본 노동운동의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70년에 결성된 단일노조 전통일노동조합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일노조는 매주 피해지인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초에 지원 물자를 모집해서 차로 운반하고 있다. 모두 다 쓸려버린 동네 미나미산리쿠, 주민, 활동가, 전통일 등 일명, ‘이름 없는 지진구호단 (http://nanashi-kyuendan.org)’이 공동 식당을 건설하기 위해 ‘1벽돌 1만엔 기금’ 활동을 하기도 한다.

본지와 인터뷰한 전통일노조 토리이 잇페이 서기장은 4월 17일부터 피난소인 시즈가와 고등학교 대량 식량지원을 시작으로 9월까지 구호 활동, 이어 공동 식당 건설 활동을 시작해 지난 1월 29일 공동 식당이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식당은 피해자 주민 스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열린 장소 만들기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나미산리쿠는 3.11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 사고 직후 인구 1만7천여 명인 주민 중 9천7백여 명의 소재가 확인지만 절반에 가까운 7천3백여 명의 행방불명돼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3.11 이후 폐허가 된 미나미산리쿠 [출처: '이름 없는 지진구호단' 홈페이지]

  1월 29일 문을 연 공동 식당 [출처: '이름 없는 지진구호단' 홈페이지]

해일 피해 영상 보고 “큰일 났다”...중국 연수생 조합원 생각나
긴급차량 허가받고 경찰에게 태어나 처음으로 “고맙다”
전국 곳곳에 구호물자 호소


‘이름 없는 지진구호단’ 활동이 미나미산리쿠로 결정된 계기가 궁금하다

3.11 지진 날 때 나는 여기 도쿄 사무실에 있었다. 전통일노조 사무실도 전부 무너졌다. 다 밖으로 피했는데, 큰길가로 올라가다 보면 건물에 대형 스크린이 있다. 두려움에 떨고,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 화면을 보는데, 쓰나미가 오는 장면이 나왔다. 하치노 해일 영상이었다. 큰일 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생각난 게 시즈가와였다. 지금의 미나미산리쿠이다. 왜냐면 바다 가까이 수산가공회사가 있고 거기 우리 조합원이 있다. 중국인 연수생들이다. 2004년 시즈가와의 대형슈퍼마켓을 상대로 우리 노조가 노동쟁의를 했고, 그때 수산가공회사를 알게 됐다. 그 회사에 전화해도 연락이 안 되고, 조합원하고도 연락이 안 됐다. 지진이 금요일에 났는데, 주말 내내 연락이 안 됐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자치회장을 맡고 있는데, 그곳은 큰 피해가 없었다. 나는 수건, 가스레인지 등 구호물품을 준비했고, 월요일도 연락이 안 돼 직접 갔다. 하지만 가려고 해도 고속도로가 다 막혀 있었고, 일반차량은 이동을 못하고 긴급차량만 다닐 수 있었다. 노동쟁의로 알게 된 미야기현 국회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곳도 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국회의원도 자기 지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국회의원과 상의해, 어렵게 미야기현 재해대책본부를 통해, 경찰에게 긴급차량 허가를 받았다. 긴급차량 허가 받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에게 “고맙다”고 했다.

  전통일노조 토리이 잇페이 서기장
긴급차량 지정 받고 바로 미나미산리쿠로 들어갔나? 구호물자들은 어떻게?

운수회사 한 사장을 알게 되어 화물차를 빌려달라고 했더니 다행히 허락했다. 10톤 화물트럭에 구호물자를 실었다. 내가 아는 전국 각 지의 사람들에게 구호물품을 보내달라고 호소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화장품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도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 회사 창고를 구호물자 창고로 사용하기로 했고, 화장품회사 직원들은 구호물자 모으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많은 구호물자를 가지고 3월 20일 미나미산리쿠로 향했다. 고속도로는 전기가 단전된 상태이고, 경찰차, 소방차 등 긴급차량만 다녔다. 주유소에 가도 기름이 없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까지 대기하다 일반 국도로 갔다. 쓰레기 잔해들이 많아 차가 움직일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도로에 있는 쓰레기들만 많이 치워진 상태였다.

시체 냄새 가득... 체육관에 관 쌓여
조합원은 무사히 돌아가... 조합원 가족 수산가공회사 사장 가족 사망
아무 것도 없어 ‘1벽돌 1만엔 기금’ 활동으로 공동 식당 건설


도착했을 당시 마을 상황은 어땠나?

재해대책본부로 갔는데 피해 상태를 보고 말이 안 나왔다. 화물차에서 구호물자 내리고, 밖으로 나와 보니 동네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 동네에서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깊게 들었다. 대책본부로 갔는데, 여기 가보지 않으면 전혀 맡을 수 없는, 그런 냄새가 났다. 시체냄새였다. 가까이에 체육관이 있는데, 시신을 그곳에 모아두었다. 체육관에 천막을 치고, 천막 안은 시신을 넣은 관이 있었다. 신분이 확인되면 시신을 관에 넣어 그 관을 천막 안으로 넣었다.

중국인 연수생 노조 조합원들과 수산가공회사는?

나는 이주노동자 네트워크도 하고 있는데, 현장 책임자 중 한 명이 외국인 여성이었다. 알고 보니 필리핀에서 23년 전에 일본에 와서, 이 지역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여성과 계속 연락하면서 수산가공회사 사장도 만날 수 있었다. 사장은 먼저 노동자들은 피난시켰고, 전부 다 무사히 살고 있다고 했다. 중국인 연수생 60여 명이 모두 다 무사히 중국에 돌아갔다고 했다. 전통일노조 조합원도 무사히 지내고 있다고 했고,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조합원 가족 중에 죽은 사람이 있었고, 사장 가족도 죽었다. 이로써 미나미산리쿠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미나미산리쿠에 남아 있는 이주노동자는 어느 정도 있나?

현재 중국인 연수생은 모두 돌아가고, 필리핀 노동자들이 14명 정도 있다. 이 외에도 다 확인은 못했지만 중국, 캐나다 등 20여명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마을 상황은?

지금 이곳은 피난이 문제가 아니다. 아무 것도 없으니까 움직일 수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부터 200km 가량, 도쿄로부터 250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방사능보다 해일 피해가 심각해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들이다.

  화물차에 실려 온 구호물자 [출처: '이름 없는 지진구호단' 홈페이지]

  식사를 준비하고, 식하기 위해 모이는 주민들 [출처: '이름 없는 지진구호단' 홈페이지]

신자유주의 방식 복구...복구 활동의 빈부 양극화
다문화, 다민족 공생사회 지향 복구...노조 투쟁 경험 이용해 실질적 생활의 복구로
재해지역 내 계급분화 이루어져


‘이름 없는 지진구호단’ 활동과 별개로 지진 원전 사고 이후 노조의 과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어떤 활동들이 있는가?

고용보험 건이 많다. 노동 상담도 하고 있고, 지진을 핑계로 부당 해고 당하는 케이스도 있다. 지금 제일 큰 문제는 피폭노동 문제이다. 전통일노조가 현재 피폭노동과 관련해 상담을 받는데, 실제 사례는 지금 없다. 피폭노동에 대해서 지금 정보를 모으는 중이다.

이번 사고 이후, 특히 ‘이름 없는 지진구호단’ 활동을 하면서 노조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3.11 이후, 어떤 방식으로든 일본 노동운동이 전환점을 맞지 않겠는가?

이제부터 제일 중요한 문제는 피해 지역에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 혹은 공동체를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이다. 공동체 존재가 없어진 것이다. 이를 다시 복구하자는 얘기는 모두 다 한다.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그게 중요한 문제다. 예를 들면, 신자유주의 방식의 복구도 있다. 복구 활동에서 빈부의 양극화가 생기고 있다. 여기서 노조의 역할이 있고,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복구에도 노자의 대등한 복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복구되고, 다민족, 다문화 공생사회를 지향하는 방식의 복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다. 직장에서 노동조건 개선 싸움을 계속했던 경험을 이용해서 실질적인 생활의 복구를 하도록 하는 게 노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진, 해일이 오는데 계급이 어딧냐는 말도 있다(웃음)

사실 지진 해일 당하는 건 계급이 없다. 그 이후에 계급이 생기고 있다. 예를 들면 피해나고 한 달 정도는 정신없으니까 서로 도와주고, 누가 지원하러 오더라도 대환영이었는데, ‘노동조합은 이제 됐다’는 사업주도 있다. 즉 재해지역 내에 계급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주] 전통일노동조합은 1970년 당시 좌파노조인 총평이 중소규모 영세사업장의 미조직, 비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조직화 캠페인의 결과로 탄생한 노동조합이다. 기존 노조들이 업종과 지역을 경계로 조직화를 제한하는 관료적 풍토와 노사협조주의에 맞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을 업종과 사업장, 지역을 넘어 하나의 단일한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있으며, 조합원은 주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 통역 : 야스다(일본노동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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