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20km, 경찰과 일본식 진실공방?

[동일본대지진 1년, 취재수첩] 진실 없고 정보만 난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로부터 20km 떨어진, 원전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의 기숙사 J빌리지 앞은 붉은 불빛이 맴돌고 경계가 삼엄하다. 경찰과 경비원이 막고 있다. 방사능 공포로 자국 국민이 대거 피난한 이곳에서 무엇을 지키고 있을까? 원전 인근에서 방호복도 입지 않은 채, 손발이 오돌오돌 떨리는 동북지방 이 차가운 날씨에, 일본은 지금 신종플루가 유행인데.

  전 20km 떨어진 곳의 삼엄한 경계 [출처: 사진총괄 : 도영, 정재은]

경찰 : 도둑이 들어가지 못하게 치안 유지로 이곳을 지키고 있다. 또, 테러 경계이다.
취재진 : 이렇게 막아도 옆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별 의미 없을 것 같은데...
경찰 : 안쪽에도, 큰 길마다 지키고 있다. 지역의 안전은 우리가 확실히 지킨다.
취재진 : 고맙다. 일본국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지켜주고. 마스크는 방사능 때문에 쓴 건가?
경찰 : 신종플루 예방차 쓰고 있다. 숙소에 많은 경찰이 생활하는데, 전염되면 큰일 난다.
경찰 : 우리는 몸이 재산이니까 몸이 상하면 일할 수 없다. 건강 유지에 노력하고 있다.
취재진 : 방사능 무섭지 않나?
경찰 : 그런 거 생각한 적 없다. 여기는 안전하다.


줄줄이 폭발한 원전 바로 앞에서 도둑놈, 테러범 막는다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경찰의 말에 도대체 무엇이 테러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에게 방호복 하나 입히지 않는 정부, 신종플루 유행될까 마스크 썼다는 경찰, 작업복만 달랑 입고 J빌리지에서 나오는 노동자, 고급승용차에서 방호복 입고 내린 뒤 경계구역 바로 앞에서 이를 벗고 양복차림으로 나가는 3명의 남성, 블랙코미디를 한 편 봤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이 상황은 취재진의 단순교통사고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일본은 한국과 운전체계가 반대인데, 첫 운전에 왼쪽 백미러를 미처 보지 못한 취재진은 20km 경계구역 바로 앞에서 시멘트 턱에 올라탔다.

별로 망가진 것도 없고, 차를 반납할 때 렌터카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던 사건이지만 경찰은 ‘단독사고’라며 우르르 몰려와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기는 사람이 장땡이라고, 사고라는데 어쩌겠나. 하지만 경찰이 교통사고와 전혀 관계없는 질문들을 해 1시간가량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쪽 바퀴로 시멘트 턱에 올라탄 차

  1시간 가량 실랑이가 벌어졌다.

경찰 : 렌터카에 전화해라, 교통경찰 오면 렉카에 전화하면 될 것 같다.
취재진 : 렉카는 필요하면 나중에 부르겠다.
경찰 : 여권, 운전면허증? 운전자 누구? 동승한 사람 누구?....직업이 뭐냐? 여기 왜 왔나?
취재진 : 그게 왜 필요한가?
경찰 : 교통경찰이 사고 처리 서류 만드는 데 필요하다.
경찰 : (통역인 일본인에게) 이름? 주소? 생일?
통역 : 나는 탑승자인데, 그게 왜 필요한가? 버스 사고 나도 승객에게 이런 거 물어보나?
경찰 : 연락처가 필요하다
통역 : 생일은 연락처와 아무 상관없잖아?
경찰 : 교통사고 처리 서류 만드는 데 필요하다.
통역 : 그건 경찰 사정이고, 개인정보는 알려주지 않겠다. 왜냐면 요즘 경찰들이 개인 정보 악용해 나쁜 짓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필요 없는 정보를 알릴 생각이 없다.
경찰 : 그 부분은 우리도 깊게 반성하고 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우리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부탁한다.
싫다, 부탁한다, 싫다, 부탁한다 ...


조사가 끝나고 우리는 차를 들어 뒤로 민 뒤 다시 운전했다. 사고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경찰은 왜 일본인의 생일, 주소,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그렇게 연신 ‘부탁한다’고 했을까. 경찰은 교통사고 처리 서류 작성을 근거로 들었지만, 통역 야스다 씨는 한국과 달리 일본이 주민등록제도가 아닌 점을 들었다. 이름, 생일, 주소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대신 이름, 생일, 주소로 짜 맞추기 한다고 해야 하나.

취재진의 의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경계구역 안도 아닌 경계구역 밖에서, 스스로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단 그곳에서, 일반인이 아닌 치안 유지를 위해 경계를 서고 있다는 경찰이 이렇게 민감하게 대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작은 사고처리를 이유로 운전자와 탑승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면 경찰권 남용에 인권침해이다. 혹시 우리를 테러범으로 오해하거나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 개인 정보가 궁금했나?

J빌리지 앞 경찰과 취재진의 진실게임은 이렇게 막이 내렸다. 무엇하나 속 시원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방사능이란 거대한 진실은 외면하고 신종플루는 걱정하고, 신경 안 써도 되는 사고에 집착하면서 개인정보는 구걸로 보일 정도로 거듭 ‘부탁’하는 일본 경찰과 마주한 채 말이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태그

원전 , 후쿠시마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재은 미디어충청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