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와 인터뷰한 마츠모토 하지메 씨는 도쿄도 스기나미구 고엔지(신주쿠에서 전철 10분 거리)에서 재활용품 가게를 경영하며, ‘아마추어의 반란’의 주관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고엔지 동네에서부터 작년 3.11 사고 직후 10일 동안 준비해 4월 10일 ‘원전 중단해 고엔지 집회’를 열었다. 그 전까지 집회에 참가한 적이 거의 없는 1만5천명이 참가해 반원전 투쟁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그가 지금까지 주최한 집회는 5차례로, 참가자만 6~7만 명에 이른다. 9월 10일에는 도쿄 곳곳에서 6만여 명의 사람이 모여 반원전을 외쳤고, 올해 2월 11일에도 집회가 열렸다. 특히 집회는 사운드트럭 시위, 야채의상 코스플레이 등 재밌는 행사와 퍼포먼스로 진행되면서 젊은이들이 참여하기 쉬운 공간으로 열렸다.
고엔지 동네 ‘아마추어 반란’ 10일간 집회 준비...4.11 1만5천명 모여
5~6차례 반원전 집회 주도...많은 사람 모여 “놀랐다”
시위는 일상의 연장...문득 드는 생각이라도 표현해야
고엔지 동네가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떤 동네인가? 아마추어 반란이 운영하는 가게는 몇 개인가?
이상한 동네이다(웃음). 젊은 사람이 많이 있긴 한데, 특히 자율적인 사람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음악, 연극 등 예술가가 많다. 자율적인 동네라고 생각한다. 내가 운영하는 재활용품 가게는 ‘아마추어 반란 5호점’으로 일종의 미디어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아마추어 반란 가게는 술집, 옷가게 등 인근에 총 12개의 가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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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모토 하지메 씨가 운영하는 재활용품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 5호점' [사진총괄 : 도영] |
3.11 사고 직후 4월 11일 무려 1만 5천명의 사람들이 행진에 참여했다. 일본 한 활동가는 고엔지에서 200명이 행진을 시작해 신주쿠까지 행진하니까 1만5천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고 했다. 첫 집회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3.11 원전 사고 이후 10일간 빨리 빨리 준비해 집회를 열었다. 사고 이후 일본 사회는 자숙하는 분위기였다. 일본 특유의 분위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화려하게 놀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어두웠다. 자숙 모드라고 해야 하나. 사고 직후 누구도 원전에 반대하면 안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점점 원전 사고에 대한 뉴스가 적어졌고, 자연스럽게 유야무야 되어 갔다. 이런 분위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해 나섰다.
4월 11일 집회 준비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 줄 수 있나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해 각 종 홍보를 했다. 포스터를 만들고, 블로그에 전하고 여러 가지 했는데, 트위터가 가장 영향력이 많았다. 하지만 트위터가 가장 효과가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먼저 고엔지 사람들이 모이고, 여기서 엄청난 움직임이 시작됐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트위터로 그냥 전하는 것이 아니고, 뭔가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게 중요하다. 뭔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 분위기로 가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자숙하는 분위기라는 특별한 상황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3.11 사고 이후 일본 국민들이 대단히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보도가 많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메 씨는 이를 ‘자숙하는 분위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이 사고 이후 조용했던 것은 좋은 점이기도 한데... 사고 이후 도둑도 없다고 하고. 하지만 분노하는 사람이 없고,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징그러운 노래 같다고 느꼈다.
반원전 집회는 몇 차례 주도했나? 보통 일본 집회 풍경과 다르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예상했나?
반원전 시위를 5~6차례 주도했다. 옆 동네 사람이 주최해 협력한 것까지 합치면 평균 한 달에 한 번 가량 집회를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지 예상하지 못했다. 놀랐다. 처음 작년 4월 11일 집회는 우리 동네 사람들, 아마추어 반란 사람들이 먼저 시위할 생각으로 빨리 빨리 준비해 진행했다. 500여명 정도 모일 것으로 예상했다. 처음 집회 준비는 아마추어 반란 사람들만 준비했고, 노동운동, 사회운동가들은 시위에 참여했다. 그 집회를 통해 무엇인가 하고 싶지만 억눌려 무엇을 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들은 앞으로도 대규모로 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집회 준비 과정에서도 에피소드가 많았겠다
자기 스스로 어느 정도로 할 수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옛날 방식의 고정적인 시위는 형식이 정해져 있다. 자발적으로 모이고, 자발적으로 행동 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작년 6월 11일 집회에는 2~3천명 모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1만5천명이 와서 놀랐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정신없고, 재미있었다.
경찰도 500명 정도 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모이니까 놀랐다. 작년 4월 11일 집회는 경찰이 예상했던 것 보다 많은 사람이 모이니까 시부야 등에서 지원 경찰이 왔다. 다른 지역 경찰은 우리에게 화내고, 연행한다고 협박했는데, 우리 동네 관할 경찰들이 “이 사람들 괜찮다.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며 경찰끼리 싸웠다. 아주 재미있었다. 또, 재미있었던 것은 4월 집회에서 경찰이 우리를 얕보아서 수천 명 정도 집회에 모일 거라고 말했는데, 경찰은 ‘그렇게 많이 올까?’하며 비웃었다. 하지만 1만 5천명이 모였다.
고정적이고, 형식적인 집회보다 특히 재미있게 집회 하는 게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런가?
그냥 재미있게 집회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고정적인, 전통적인 시위는 어떤 문제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진심으로 화내야 하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참여하기 아주 힘들 것 같은 시위였다. 문턱이 높은 것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전 사고 이후 보통 사람들이 그냥 생각하는 것, 마음속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하고자 했다. 그냥 문득 드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말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라도 이것은 표현해야 한다. 일상생활과 시위가 거리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연장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길 수 없다. 왜냐면 일상의 연장이 아니면 아주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시위 속에서 개인 일상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그것을 잘 표현하면 결과는 당연히 재미있는 시위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아주 힘이 있는 행동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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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6월 11일 반원전 시위 행렬 |
“우익 참여도 괜찮다...반원전 시위는 폭 넒은 시위”
“지금 1만명...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게 할 것인가”
일본 우익의 반원전 집회에 참여 건을 두고 내부 논란이 있었다고 들었다.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나?
반원전 시위는 아무나 참가할 수 있는 시위이고, 우익 중에서도 원전이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오라고 했다. 나는 지금도 우익의 반원전 시위 참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정적인 좌익은 아마 화낼 것 같다. 그때도 화냈고, 우익을 부는 것은 '의미 없다', '안 된다'고 했었다.
집회 무대 발언 때도, 우익이 발언하고 싶다고 했는데, 좌익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우리의 집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익 대표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 대표는 '알았다'고 하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우익이 실제 반원전 집회에 얼마나 오는가
사실 일본 사회는 우익, 좌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많아도 1% : 1% 라고 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는지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나는 반원전 집회에 혹시 자본가가 와서 반원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혹시 태양열발전을 팔기 위한 비즈니스 목적으로 온다고 해도 말이다. 다양한 이유로 반원전에 대한 발언이 넘쳐나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익의 반원전 의견을 듣고 싶고, 우익이 왜 반원전을 주장하는 지 흥미롭다. 오히려 듣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발언을 한다면 좋은 공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반원전 시위는 폭 넓은 시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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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모토 하지메 |
사고 1년이 지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반원전 집회에 대거 참석하는 것에 대해 의미를 두기도 한다. 어떻게 보는가.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작년 3.11 사고는 진짜 충격적이었다. 반원전을 주장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 행동한 것은 성과이다. 하지만 도쿄에서는, 1만명 가량 모여 행동으로 나섰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 이상 많아지진 않는다.
문제는 1만명 이상,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단점은 빨리 질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다음 과제는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매번 같은 사람들이 모이니까 개인적으로 지금 의욕이 없기도 하다. 지금 나는 시위에 오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시위에 참여시킬 것인지, 시위 참가에 어떻게 흥미를 느끼게 할 것인지 생각중이다. 그래서 요즘 멈추었던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큰 시위 준비를 많이 했는데, 다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는 만들기 위해서라도 아마추어 반란 가게 운영에 힘을 주력할 것이다. 조만간 또 반원전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 통역 : 다케우치 가즈하루(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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