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등하고 있는 안팎의 비판
최근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안팎에서 비등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내부에서도, 그 외부에서도, 노동운동의 성장과 발전을 지지ㆍ지향하는 측에서도, 그것을 파괴하고 무력화시키려는 측에서도 ‘비판’이 비등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을 파괴하고 무력화시키려는 측의 ‘비판’ 그것의 내용 그 자체는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고, 따라서 거기에 귀를 기울일 이유도 없다. 간혹 민주노총이 크고 작은 오류를 범하여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극우 인간쓰레기들이 일상적으로 벌이는, ‘비판’의 탈을 쓴 중상모략과 와해공작, 즉 노동자계급운동을 파괴하려는 더러운 계급투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사실에 근거하는 경우에도 그 역시 정당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침소봉대, 위선에 가득 찬 악의적인 와해공작의 일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 자체로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도 없는 더러운 중상모략ㆍ와해공작이지만, 저들 인간쓰레기들이 그 더러운 계급전쟁을 벌이는 이유, 즉 그것이 소부르주아 대중에게는 물론 수많은 순진한 노동자 대중에게 미치는 막강한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어떤 경우에 저들은 그 더러운 중상모략ㆍ와해공작을 강화하고, 또 그것들이 대중적 영향력을 갖는가를 보면,
우선 연전에 있었던 대기업 노조의 일부 간부의 금품수수사건이나 최근의 성추행 사건처럼 민주노총이나 소속 노조 간부들의 크고 작은 도덕적ㆍ범죄적 오류가 있을 때, 저들이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어 잔인하게 물어뜯는 것은 당연히 예상되는 사태이다. 저들의 대응이 아무리 침소봉대, 위선에 가득 찬 악의적인 와해공작으로 나타날지라도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적어도 추상적으로는 대책도 간단명료하다. 두 말 할 것도 없는 것이지만, 그러한 도덕적ㆍ범죄적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불의의 오류가 발생했을 경우 의혹 없이 엄정하게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조합간부, 성실한 활동가의 당연한 도리이자 의무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주의를 환기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당연지사에 대해서가 아니라, 최근 일부 노조들의 민주노총 탈퇴 혹은 탈퇴 움직임과 관련하여 ‘조ㆍ중ㆍ동’ 등의 극우 매체들이 벌이는 반민주노총 모략선전, 민주노총 와해공작에 대해서이다.
저들은, 그리고 ‘노동운동 내부’에서 민주노총 탈퇴ㆍ분열공작을 벌이는 일부 ‘조합간부들’은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의 권익을 위해서 일하는 대신에 이념적 투쟁, 정치투쟁만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바로 그 때문에 민주노총을 탈퇴한다고, ‘제3의 노총’을 만들려고 한다고 강변한다.
사실이 과연 그러한가?
비판받아야 할 것은 무기력과 무투쟁이다
근래 수년간의 민주노총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면, 아니, ―저들 인간쓰레기들이야말로 그것을 모를 리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정직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념적 투쟁, 정치투쟁을 벌이기는 고사하고 국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서 무너져가는 자신들의 경제적 권익투쟁조차 사실상 제대로 벌이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온 것이, 갈수록 그러한 모습을 보여 온 것이 최근 수년간의 민주노총이 모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930년대 이후 최대라는 경제위기를 맞아 수십만의 자영업자나 영세ㆍ중소기업이 도산하고 있고,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던져지고 있을 뿐 아니라 민주노총의 주력을 이루는 대공장, 대규모 공기업들에서조차 대규모 구조조정=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고, 그러한 방침을 공공연히 단언하고 있으며, 장기간의 조업단축ㆍ휴업으로 임금이 대폭 삭감되고 있는데도 변변한 투쟁 하나 제대로 조직하고 있지 못한 것이,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민주노총의 현 상황이 아니던가?
오죽 조용하고, 그리하여 한국의 자본가들이 오죽 자신에 차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면, 외국의 한 언론(wiwo.de)이 한국경제와 관련, “위기? 도대체 무슨 위기?”(Krise? Welche Krise überhaupt?)하고 반문할 것이며, 그것을 받아 다른 언론(Creditwritedowns.com)은 “한국은 위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가?”(Is South Korea de-coupling?)하고 묻고 있겠는가? 노동자ㆍ민중의 생활이 이토록 무너져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바로 그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운동이 성장ㆍ발전하기를 바라면서, 따라서 민주노총을 성원하면서도 그것을 비판하고 또 비판해야 하는 것도, 노동자계급운동을 파괴하고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인간쓰레기들이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중상모략ㆍ와해공작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중상모략ㆍ와해공작이 대중적인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사실은 민주노총이나 소속 노조의 일부 간부가 범해서는 안 되는 도덕적ㆍ범죄적 오류를 범하는 것도 모두 다 바로 민주노총의 그러한 무기력, 무투쟁 때문인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것이 경제적 권익투쟁이든, 저들 말대로 이념적 투쟁, 정치투쟁이든, 민주노총이 치열하게 투쟁을 벌이고 있다면, 어떻게 그러한 도덕적ㆍ범죄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방어에 급급할 저들 인간쓰레기들이 들개 떼처럼 물어뜯기는 고사하고 어떻게 중상모략ㆍ와해공작을 일삼을 수 있겠으며, 설령 그러한 더러운 전쟁을 벌이더라도 어떻게 그것이 대중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민주노총이 치열하게 투쟁을 벌인다면, 민주노총 소속의 조합간부들이나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노동자계급 일반의, 나아가서는 노동자계급과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하층 소시민계급의 도덕적ㆍ정치적 사기가 크게 고양될 터인데 말이다.
바로 그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시한 노동자ㆍ민중 일반의 생존권은 물론이요 당장 소속 조합원들의 생존권이 심히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투쟁하지 않는,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 구차한 핑계를 대며 투쟁을 회피하는 민주노총, 그 상층 간부들, 소속 대형 노조, 그 간부들을 우리는 강력히 비판하며, 또 강력히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안주, ‘회사살리기 운동’을 비판한다
그리고 저들의 그러한 투쟁 회피는 특히 두 가지 위험한 동기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대기업ㆍ공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가당찮은 현실안주, 가혹하게 표현하면, 사실상 배부른 돼지로 남고자 하는 덧없는 소망이다. 이들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경제적 상태는 1980년대나 그 이전의 상황에 비하면 분명 월등히 안락해졌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비정규직의 비참함에 ‘조금은 미안한 눈빛으로’, 그러나 또한 바로 그 때문에 투쟁하면 혹시 그 안락함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현실에 안주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잊고 있다. 그 알량한 안락함조차 사실은 ‘87년 대투쟁’과 그 이후의 치열한 투쟁의 성과이고, 투쟁을 통해서만이 유지되고 더욱 개선될 수 있는 것이지, 투쟁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파괴되기 시작하여 이내 87년 이전의 노예상태로 전락한다는 것을 말이다. 저들 정규직 노동자들 중에 마음 좋은 일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 때문이라는 저들 인간쓰레기들과 노동운동 내부의 일부 회색분자들의 허위의 악선전에 굴복하여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사회적’ 무슨무슨 ‘기금’ 따위를 모으는 ‘운동’을 운동이랍시고 벌이지만, 사실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이어서 비정규직의 문제는 그러한 적선의 위선을 떨 일도, 남의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잊고 있다.
다른 하나는 어쭙잖은 애국주의 혹은 책임의식과,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국민경제’를, ‘회사’를 살리고자 하는 어쭙잖은 ‘대안들’이다. 자본주의라는 생산체제에 필연적인 과잉생산으로, 자본가들의 탐욕과 농단으로 국민경제가 무너져 가고, 예컨대 쌍용자동차가, GM과 크라이슬러가, 수많은 자본이 파산해 가는데,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도대체 노동자들에게 무슨 능력과 권한이 있어서 ‘국민경제 살리기’, ‘민생경제 살리기’, ‘회사 살리기’ 따위의 대안을 노동자가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대안’을 내놓을 능력과 권한은 자본과 국가에게만 있다
노동자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단지 하나! ‘살려 내라!’고,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일자리와 생활임금을 보장하라!’고 국가와 회사에 요구하고 싸우는 일뿐이다. 경제를 살려낼 능력이 없고, 생존권을, 일자리와 생활임금을 보장할 능력이 없으면 ‘다 내놓고 물러나라!’고 요구하며 싸우는 일뿐이다. 저들이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있는 한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능력과 권한도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대안을 내놓을 능력과 권한도 저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대안이 있다면, 투쟁을 함으로써 저들로 하여금 그것을 내놓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만일 저들이 노동자들에게 ‘대안도 없이 투쟁만 한다’고 비난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생존권의 일부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즉, 노동자계급운동 내부에 이런저런 형태로 침투해 있는 일부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그들, 사민주의자들이 ‘진보’를 가장하여 선전하는 서유럽 등의 ‘사회복지제도’ 혹은 ‘복지국가’의 문제인데, 그것들은 결코 노동자들이 추구한 대안의 실현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을 대안으로 추구하면서부터 그것들은 약화되고 파괴되어 왔다는 사실 말이다. ‘복지국가’ 서유럽 노동자들의 상태는 물론 한국의 노동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안락하다. 하지만 서유럽 노동자들이 그러한 ‘복지’를 누리게 된 것은 결코 그들이 그것을 ‘대안’으로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1930년대의 대공황기에, 그리고 그 귀결로서의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자신들에게 그러한 대파국ㆍ대참사를 강요하던 자본주의를 폐지하려고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투쟁했기 때문에, 그렇게 변혁 지향적으로 투쟁했기 때문에 독점자본이 제시하고 실행에 옮긴 대안이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거기에 안주하게 되자 그것은 약화ㆍ파괴되어 왔다. 그것이 ‘사민주의적 복지제도’, ‘복지국가’의 역사이다.
민주노총을 강화하는 비판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려 하고, 어쭙잖은 대안 운운하면서 투쟁을 회피하는 민주노총과 소속 대형 노조들의 무기력을, 그러한 무기력을 조장하는 간부들의 태도를 비판한다. 그리고 더욱 가혹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비판은 어디까지나 민주노총의 투쟁을 성원하며 철저히 민주노총을 강화하는 입장에서여야 한다. 민주노총의 이러저러한 오류나 무기력을 핑계 삼아, 혹은 이런저런 명분을 들이대면서 민주노총을 비난하고, 탈퇴하며, ‘제3 노총’ 운운한다면, 그것은 분명 민주노총을 와해시키려는 저들 극우 인간쓰레기들의 앞잡이들이나 그들에게 매수된 자들, 아니면 기껏해야 형세 판단 못하고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는 어릿광대들이나 벌이는 짓거리일 것이다.
선진 노동자들의 전위적 정치적 역할이 절실하다
한편, 민주노총을, 조합간부들을 비판하는 선진 활동가들은 오늘날의 민주노총의 무기력에 대해서 그 자신 누구보다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그 무기력을 청산할 사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사실 민주노총의 오늘날의 무기력은 이들 선진 활동가, 선진 노동자들의 정치적 무능력, 정치적 해태(懈怠)의 다른 표현, 말하자면, 같은 동전의 이면(裏面)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1980년대 말엽부터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가 논의되어 왔지만, 쏘련 붕괴 후 청산주의자들, 형식주의자들의 소위 ‘양날개론’ 따위가 득세하면서 노동자계급 혹은 민주노총은, 주지하는 것처럼, 합법주의자들, 개량주의자들, 사민주의자들에게 휘둘리는 바가 되었다. 그렇게 전위적 정치 지도 없이 방치되어 온 것이고, 그러한 한에서 노동자 대중조직으로서의 민주노총의 오늘날의 무기력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한국의 노동자계급운동을 참으로 곧추세우기 위해서는, 나아가서 노동자계급이 해방이라는 그 역사적 임무를 수행해내기 위해서는 선진 활동가, 선진 노동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의무를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전위적 역할, 전위적 임무를 다 할 수 있는 정치적ㆍ조직적 조건을 획득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노동자ㆍ민중의 생존권이 파괴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터져 나올 경제위기, 특히 대공황은, 그들이 그럴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그러한 정치적 사업을 위해서도 훌륭한 조건을 제공할 것이다. 분발 또 분발하자. <노사과연>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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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46호(200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