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달리는 포장마차] 책꽂이에 잘못 꽂힌 책

리차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의 『미국의 송어낚시』(김상곤 옮김, 비체)

월간 <말>지를 경마잡지로 착각했다는 우스개가 있고, 실제로 내 친구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란 시집을 사오라고 동생에게 시켰더니 요리책 코너에서 한참 헤매다 결국 빈손으로 왔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있다. 1967년 미국에서 나와 68혁명세대에게 경전처럼 읽혔던 리차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도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 서점 낚시 코너에 꽂혔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책이다. 절판되었던 그의 또 다른 작품 『워터멜론 슈가에서』도 얼마 전에 재출간 되었는데, 물론 이 책도 요리책이 아니다.


당연히 『미국의 송어낚시』는 송어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화자는 송어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송어가 뛰놀던 강을 찾지만, 강은 이미 폐선장으로 변해 있다. 화자는 그 강에서 혹이 달린 12인치나 되는 무지개 송어 한 마리를 낚아 저녁 끼니를 때우고 녹색의 끈적거리는 것들과 죽은 물고기가 둥둥 뜬 온천수에서 질외 사정을 한다.


미국사회와 현대문명을 콜라쥬 기법으로 풍자한 이 작품은 당시 충만하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과 이상의 묵시록으로 읽히는데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무수한 미국적 은유와 상징으로 난해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미국의 송어낚시 읽는 법’이란 글까지 있겠는가.) 브라우티건의 삶도 녹녹치 않았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배고픔에 교도소라도 들어가려고 경찰서 유리창에 돌을 던질 만큼 가난했고 결국 1984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그의 시신은 한참 뒤에야 발견됐다.
이제 부양가족도 생기고 나이도 한 살 더 먹어 우울한 새해. 왠지 그의 생애와 함께 68혁명의 이상과 꿈도 어쩐지 잘못된 책꽂이에 놓인 책 같아 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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