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운동 길찾기] 평화권.발전권은 권리일 수 있는가

비상식 인권론 ⑧

이번 연재 두 번째 순서에서 ‘집단은 권리의 주체일 수 있는가’란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미 제3세대 인권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와 비판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우리의 논의를 평화권과 발전권으로 한정하도록 하자.


그런데 이런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제3세대 인권 중 대표적인 인권인 왜 환경권은 다루지 않으면서 평화권과 발전권만을 논의하는가이다. 환경은 인권과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인권이 인간 중심으로 권리체계를 짜고 있는 것과 반대로 환경의 범주는 인권의 범주로 좁혀서 논의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주제가 환경권이다. 인권과 환경이 갈등하고 긴장하면서 서로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인데, 이런 주제를 인간집단 간의 문제로 제기되는 제3세대 인권 일반으로 다루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다.



서구 국가들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평화권


평화권만큼 유엔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한 경우는 거의 없다. 유엔은 헌장에서 이미 평화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 세계 평화의 유지를 자신의 임무로 삼고 탄생했다. 이후 평화권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다가 1984년 유엔총회에서는 평화에 대한 인류의 권리선언(the Declaration on the Right of Peoples to Peace)을 탄생시켰다. 보통 유엔에서 인권 관련 조약이 성립되는 과정은 선언으로 채택되면 10년 안에 논의들이 진행되어 조약으로 성안, 유엔총회에서 채택되고, 조약 비준국이 대개 30개 국이 넘어가면 발효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선언은 여전히 조약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조약들과는 달리 평화권에 대해서는 특히 서구 국가들의 반대가 심하기 때문이다. 평화권 선언이 채택될 때에도 92개 국가의 찬성이 있었지만, 서구 다수 국가들이 기권을 하는 바람에 선언 이행에 힘이 실리지 못했다. 그 뒤에 열린 다른 평화권 관련한 논의도 마찬가지 양상이었다. 1997년 유네스코 총회에서도 유럽국가들은 평화권을 공격하면서 기권해 버렸다. 이에 반해서 남반구의 국가들은 북반구의 국가들이 무기 산업을 보호하길 원한다면서 비난했다. 이렇게 남북 대결 양상으로 인해 합의에 도달하는데 실패한다. 1999 비공식 유엔토론에서 미국 대표는 노골적으로 “평화는 인권의 범주로 고양돼선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을 시작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라고까지 발언했다.


이렇게 평화권에 대한 논의가 국제사회에서 지지부지한 가운데서도 이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1981년 채택된 ‘아프리카 인간과 인민의 권리에 관한 헌장’은 “모든 인류는 국가적 및 국제적 평화와 안보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1984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평화권 선언은 “우리 지구상의 인류에게 평화에 대한 신성한 권리가 있음을 엄숙히 선언한다”고 언명하고 있다. 평화권 선언은 “전쟁위협의 제거(the elimination of the threat of war)”를 요구하고 있다. 또 평화권은 여타 인권의 전제조건으로 고려된다. 인권과 발전, 평화는 서로 고립해서 존재할 수 없는 세 개의 조건이고, “평화 없는 인권은 환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97년에 유네스코 사무총장이었던 메이어( Federico Mayor)는 이 선언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이 선언과 기존 선언의 차이점은 평화권을 인권의 전제조건으로 확인했을 뿐 아니라 성취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면서 “평화권 성취는 전쟁의 문화로부터 평화의 문화로의 전이가 우선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선언이 요구하는 두 개의 전략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선언은 빈곤이나 환경파괴, 국제정의 등과 같은 긴급한 이슈에 대한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며, 이런 도전들에 태클을 가할 수 있도록 유엔체제에 필수적인 자원과 권력을 제공하도록 국제사회에 요구하는 전략과 함께 대대적인 교육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그 교육은 “평화와 정의의 가치이해와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배양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해 유네스코 총회를 위한 선언 초안을 준비하기 위해 앞서서 노르웨이 인권연구소가 오슬로에서 회의를 소집했을 때는 평화권을 세 개의 연관된 요소로 구분하여 선언의 초고를 마련했다.


먼저 인권으로서의 평화다. “모든 인간은 인간성에 내재된 평화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어떤 종류의 전쟁과 폭력도 평화에 대한 인권과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차별 없이 그 이행을 보장할 것을 국가와 국제사회 구성원들에게 촉구한다는 것으로 “모든 지구 행위자의 평화의 유지와 건설에 기여할 의무, 무력 분쟁방지와 폭력 예방의 의무”를 기술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평화의 문화 전략으로 “평화권이 성취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평화의 문화, 교육, 대화, 윤리적 및 민주적 이상을 통해 인류의 마음에 평화의 뿌리를 추구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 선언 초안 역시 대다수의 서구국가들의 반대로 채택이 무산되었지만, 국제사회에서 평화권은 서구 또는 북반구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논의되면서 인권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평화와 관련된 다른 논의의 흐름은 ‘평화권’이라는 언어를 순화하는 방식이다. 유엔총회는 2003년에 5개월 간의 협상 끝에 ‘무력분쟁방지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렇게 국제사회에서 논의되는 평화권의 내용은 전 인도의 대법관이었던 P.N.Bhagwati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평화권의 주요기능은 평화적인 분쟁해결을 통해, 국제관계에서의 폭력의 사용 또는 위협의 금지를 통해, 핵무기의 제조, 사용, 배치의 금지를 통해, 그리고 전면적인 군축을 통해 생명권을 증진하고 보장하는 것이다.”



인권의 구조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발전권


발전의 권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도 평화권처럼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발전의 권리는 이전의 권리와는 달리 권리의 주체를 개인만이 아니라 인민까지 확장하고 있어서 제3세대의 권리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발전의 권리가 논의되게 된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가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이들 국가들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식민지가 남긴 유산으로 인해서 저발전과 빈곤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들 신생독립국가들은 유엔에서 구 식민지 모국들에게 신생 독립국들의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역설하고, 자원 및 기회의 분배 측면에 초점을 맞춘 ‘새롭고도 공정한 국제경제질서의 수립’ 없이는 형식적인 독립을 넘어 완전한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제3세계 국가들은 당면한 발전의 장애물의 제거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제3세계 국가들의 문제 제기와 더불어서 선진국가나 개발도상국들에서 성장 위주의 개발정책이 하향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 주로 개발이 불평등의 심화로 귀결된다는 비판이 대두되게 된 것이다.


발전권은 “모든 인간은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기본적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세계인권선언 제28조를 근거로 하여 논의를 진전시켜 갔다. 이후 자결권이 양대 국제인권조약인 사회권조약과 자유권조약의 제1조로 자리를 잡고 난 뒤, 1968년 이란의 테헤란에서 열린 1차 세계인권회의에서는 인권의 상호불가분성과 함께 ‘인권의 실현과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위한 건전하고 효과적인 국내적.국제적 정책과의 상호의존성’을 선언에 포함했다. 그런 뒤에 1970년대에 몇몇 선진 연구자들에 의해서 발전의 권리가 연구되면서 발전의 권리가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1974년 유엔 특별총회는 ‘신국제경제질서 수립에 관한 선언 및 행동계획’을 채택했고, 그해의 29차 유엔총회에서는 ‘국가 간 경제적 권리와 의무에 관한 헌장’이 채택된다. 1979년에는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인권위원회(2007년부터는 유엔인권이사횔 개편)의 요청에 따라 ‘인권으로서의 발전권에 대한 국제적 차원’이란 보고서를 총회에 제출하며, 1984년에는 유엔총회에서 ‘발전에 대한 권리 선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81년에는 아프리카단결기구가 ‘인간과 인민의 권리에 관한 아프리카 헌장’을 채택하면서 발전권을 22조에 위치시켜 최초로 구속력 있는 조약의 권리로 승인받게 된다. 또 1993년에 유엔이 개최한 2회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는 발전권을 불가분의 권리로 재확인하는 선언을 채택했다.


1984년에 채택된 발전권 선언은 발전을 “포괄적인 경제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 과정으로서, 발전과 그로부터 산출되는 이익의 공정한 분배에 있어서의 자유롭고 적극적이며 의미있는 참여의 기초 위에서 전 인구와 모든 개인들의 복지의 부단한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문과 10개조로 이루어진 선언은 권리의 주체를 모든 개인과 인민으로 설정하여 개인의 발전이 공동체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고, 인간을 발전의 대상이 아닌 중심적 주체로 설정하고, 발전을 위해서는 참여가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의미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 부정의와 불공정한 국제질서를 개선하고, 발전을 위한 구조적 조건을 확보할 것을 요구한다. 국가는 개인과 인민이 의미있는 참여를 보장하고, 발전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해야 하며, 식민주의와 식민주의의 유산들을 척결할 국제적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런 발전권에 대한 논의는 인권과 발전의 통합적 실현을 저해하는 국내, 국제적 질서 모두에 대해 저항의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권에 대한 구조적 접근을 할 수 있는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발전권을 적극 이용하여 개별 인간의 권리 또는 추상적 권리(특히 사회권에 대한) 정도로 약화시키려는 국가와 국제사회를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근거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세계인권선언 제28조와 함께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인권을 어떻게 새로 구성할까?


우리는 이런 국제사회, 특히 유엔을 중심으로 평화권과 발전권의 논의 과정들을 다소 지루하게 살펴보았다. 아직은 구속력 있는 조약으로 발전하지도 않은, 아직은 형성중이거나 아니면 국제인권조약으로는 끝내 성립되지도 않을 이들 선언들을 왜 우리는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 권리들에 대한 반발과 비판이 특히 서구 국가들과 서구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으므로, 아직도 그 권위는 미미하기만 한데도, 이 권리들을 적극적으로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권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고, 늘 인간의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재해석된다. 인권이 보편성을 그 속성으로 갖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은 의미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다양한 인간의 관계망 속에서 인권의 각각의 항목들이 구체적으로 조명되어야 하는데, 그럴 때 현재와 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가 강요하는 현실에서 인권은 이전의 인권보다 다르게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인권조약들은 대체로 개인을 권리의 주체로 두고, 개인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거나 구제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전 지구적으로 전개되는 국제적이고, 구조적인 인권침해의 문제를 이전의 국제인권조약에 기대서 해결할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각종 폭력은 너무도 가까운데, 인권은 너무 멀리 있다. 법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신자유주의에서 외형적으로는 법치가 관철되는 듯이 보이지만, 법을 통한 폭력, 법에 의한 인권침해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논리적 근거라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 저항할 인권적 근거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인권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권리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은 세계인권선언 제28조와 더불어 평화권과 발전권의 논리를 한층 더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것일 수 있다.


마침 올해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 되는 해다. 세계인권선언이 갖는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금까지의 인권의 발전을 반영하여 인간 해방을 위한 무기로 인권을 벼리는 일은 올해 인권운동이 해내야 하는 일일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을 재구성하고, 새로 쓴다는 생각에까지 도달할 때 평화권과 발전권은 반드시 유용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국가들의 외교적 타협의 장인 유엔에서는 조약으로 절대 채택되기 어렵다고 해도 우리는 이들 권리들을 민중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저항과 해방의 무기로 바꾸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연재에서는 이런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어려운 논의들을 정리해 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인권의 국제적 레짐의 문제와 한계를 짚어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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