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대학, 그리고 빵과 장미

대학 내 구성원들의 연대에 관하여

셋째, 투쟁과정에서도 이후에도 노동자-학생 간 연대가 학생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투쟁에 연대하는 일방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두 구성원은 여전히 상호간의 연대지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들은 미화·경비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들의 투쟁으로 한정시켜 투쟁의 성과가 단체협상에 국한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대학 내에서 상품으로 취급되는 구성원들 간의 연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그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거의 대부분의 대학 구성원들이 이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문제는 조합원인 노동자들만의 것도 아니고, 투쟁하고 있는 주체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을 다니는 모든 학생들, 거기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 시간강사들에게 발생하는 문제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가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혼자서 어쩔 수 없는 무엇인가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시간강사는 교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학생들은 스펙을 쌓아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모두 고립감을 느끼지만, 그 고립감은 각 그룹 내에서만 소통된다. 다른 구성원들의 문제는 대학에서 생활하는 개개인이 직면하는 각종 문제의 하나로만 인식될 뿐이다. 투쟁하는 주체들의 소통보다 투쟁하지 않는 큰 범주의 구성원들의 소통이 훨씬 시급하다. 필요한 것은 각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다.


상대로부터 무엇인가를 요구해서 따내는 투쟁만으로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 스펙 쌓기나 교수로의 신분상승으로 계속 파고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연대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도 필요하다. 투쟁의 성과는 대부분 당사자들에게 한정될 뿐이다. 개개인이 느끼는 고립감은 이런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이 방식에만 매몰되는 것은 운동권이나 조합원이 아닌 구성원들에게 진입장벽을 높이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미화·경비직 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직접 투쟁하지 않는 것은 투쟁하는 것보다 스펙을 쌓는 것이 자기 개인의 수준에서는 훨씬 구조적 압박을 해결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공유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한다.



일상적이고 지역적인 소통과 연대


시간 강사나 학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이 지점을 바탕으로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의식적으로 각각의 주체들이 서로를 찾아 만나야 한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얼마 전 연세대 용역노동자들은 조합원들로 구성된 풍물패를 만들었다. 정기적인 풍물패의 모임에는 학생들이 강사 역할로 참여하고 있다. 또 대부분이 여성노동자인 조합원들과 일상에서 여성주의를 풀어내기 위한 고민들이 진전되고 있다. 최근에는 5.18을 맞아 몇몇 조합원들과 학생들이 함께 광주 망월동에 1박 2일로 내려갔다 왔다. 거기서 했던 이야기는 학내 용역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를 뛰어넘는 참여하는 개인들의 삶과 고민에 관한 일상적인 대화였다. 이러한 활동들은 동시에 무기력하고 지겹게 노동(혹은 학업)과 집을 오가며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충격이었다. 이 충격은 개인에 삶을 다른 각도에서 보살피게 만든다. 이 때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풍물놀이, 학생과 노동자 양자 간에 주어진 여성주의적 대화 등은 그 출발점이 된다.


지역적 연대의 강화도 중요하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압력6)을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연대는 투쟁의 외연을 넓히는 힘이 된다. 또 지역적 연대는 생협 등으로 대표되는 제 3섹터 방식의 생활연대로 이어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점이다. 즉 구성원들 간의 접점은 일상에 있고, 그 연대의 출발은 지역이다.



인간회복을 위해 장미도 필요하다


미화·경비직 노동자의 조직화에서부터 투쟁, 이후 일상까지 함께하는 연세대의 사례는 비록 학내 구성원 전체의 수준에서는 아직 미미하지만 되돌아볼 의미가 있다. 연세대에서 진행된 연대는 노동자의 (투쟁만이 아니라) 삶을 고민하는 것으로 나아갔고, 그 연대는 학생 운동의 양적 질적 상승을 가져오고 있다7). 조합원들은 학생들과의 일상적 연대를 통해 자신이 인간임을 느끼고 고립감으로부터 탈출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대학에서 벌어지는 대상화의 문제는 결국 사람이 스스로의 얼마만큼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느냐에 해결 여부가 달려있다. 따라서 여기서 이루어져야할 연대는 집회에 얼마만큼의 연대대오가 참여할 수 있느냐 뿐만이 아니라 서로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소통하느냐와 투쟁 외의 인간회복을 실현하는 공간을 얼마나 만들어내느냐에 의해서도 사고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고로 함께 투쟁하자.”는 이야기는 아무도 대화에 응하게 하지 못한다. 무엇을 함께 할 수 있고, 그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을 되찾아올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빵뿐만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다8)는 말은 우리 안에서도 통해야하는 진리가 아닐까.


덧붙이는 말

1) 이러한 인식은 시장이 사회의 전 영역을 식민화하는 것에 기반을 둔다. 사회 전체의 부속 영역이었던 시장이 사회 전체와 대립하거나 사회 전체를 압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칼 폴리니,『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홍기빈 옮김(책세상) p23~49 참조. 2) 최근 대학가를 강타하는 대학행정의 팀제 개편이 이러한 사고가 가져온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예다. 3) 연세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노동자의 말. “우리가 이렇게 일하는 건 빗자루밖에 몰라.” 이 말은 플래카드로 쓰였다. 4) 최근 학생운동 조직은 대중/조직원으로 점점 분명하게 구분되고 있다. 등록금 문제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의제가 당사자성을 상실하고 거시적인 구조의 문제로 환원되면서 학생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운동에 호의적인 학생들조차 마음으로 지지하는 것이 최대인 상황이다. 학생들은 운동권의 논리에 동의할지라도 자신이 참여할 지점을 찾지 못하거나, 너무 추상적인 수준에서 자신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고 느낀다. 5) 여기서 인간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극단의 사례가 있어 잠시 언급한다. 학교-용역업체간 거래에서 노동자는 1인당 단가로 계산되었다. 자본주의에 의해 인간의 노동이 추상되고 자본의 증식 과정에서 인간이 착취된다는 고전적 문제의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셈이다. 이제 인간은 노동과 상품유통 과정에서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이전에 이미 대상화되고 착취가 예정된다. 6) 주거, 환경, 교통, 교육, 직장 등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지역과 밀착되어 있다. 7) “연세대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화부터 투쟁, 일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학생들의 적극적으로 주체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연세대분회의 존재가 학생 운동 조직들에게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일상적인 연대는 학생 운동 조직의 재생산, 사업구상 등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노동자 -학생들의 순도 높은 연대는 역량을 소모하는 방식이 아니라 축적하는 방식으 로 작동하는 것이다. (중략) 뿐만 아니라 학생 운동권이 노동 운동을 할 때 가지는 근본 적 결함인 인식과 경험의 괴리를 훌륭하게 메워주기도 했다. 이를 통해서 운동의 고민과내용이 한결 성숙해졌다. (학생운동조직들로 구성된 연세대 공대위와 관련하여)여러 개의 조직으로 나눠져 운동의 진행에 필연적으로 발생했던 의사소통비용을 절감했고, 운동 단위 사이의 활발한 교류는 연세대 비정규 문제를 넘어선 다른 사안에서의 연대로 발전하고 있다.”- 「일상적 지역연대와 대학생」 명지대 노학협 토론회에서 발제된 연세대 발제문 8) 켄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 노동자에게 임금상승과 인간다운 대우가 둘 모두 필요하다는 구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