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교과부의 자세

('생활기록부 전과자'=인생의 실패자)형벌보다 징계벌을 더 무겁게



나는 학생 시절 이른바 '범생이'라고 불릴 만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와 같은 범생이도 수업시간에 앉아 있으면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1교시부터 8교시까지 '내 의사'라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수업 중에 선생님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무시하기, 반항하기 등. 그럼에도 나는 사실 그때 그 선생님에게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학교 그 자체에 대하여 화를 낸 것이었지만, 당시는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지금의 학교폭력 원인도 그때의 내가 학교에 화풀이하던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가해학생이라고 불리는 아이도 처음부터 공격적 성향의 가해학생으로 태어났을 리 없다. 아이들은 그저 자신들이 사회나 학교로부터 대우받은 만큼 그 방식 그대로 사회와 학교에 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교과부는 학교폭력 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가해학생의 학교폭력 징계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이를 초중등학교의 경우에는 졸업 후 5년간,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10년간 보존하여 상급학교 진학시에 활용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과부는 새 학기부터 학교폭력 가·피해학생의 학교폭력 관련 사실, 상담·치료 등에 관한 사항을 모두 '학생생활지도 도움카드'라는 것에 기재하여 개인별로 누적 기록·관리하도록 하였다. 피해학생 역시 잠재적 가해자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한 번도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우해본 적이 없는 학교의 폭력성 그 자체는 외면한 채, 오로지 아이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본말이 전도됐다. 또한 이러한 조치는 아이들 역시 엄연히 헌법상의 인격권, 사생활의 자유, 자기정보 결정권 등의 주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헌적이다.
 
특히 세계 각국의 프라이버시 관련법은, '형벌 등의 기록'을 '건강과 관련된 기록'과 함께 가장 민감한 정보로 취급하며 이와 같은 정보의 기록, 보유, 이용 등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들이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경우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의 개인정보보호법 역시 범죄경력자료 등을 민감정보로 명시하고 이에 대한 기록, 보유, 이용 등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교과부의 조치는 학생들의 정보에 대하여 이와 같은 제한을 전혀 적용하지 않았다. 즉 징계사항, 선도학생관리정보, 부적응자관리정보 등은 '형벌 등의 기록'에 상응하는 가장 민감한 정보인데도 오로지 어린 학생들의 정보라는 이유만으로 광범위하게 기록되고 보존되어 매우 용이하게 접근 활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형의실효등에관한법률은 3년 이하의 징역·금고형의 죄를 범한 경우에도 형 집행 종료된 후 5년이 경과하면 전과기록이 말소되도록 하고 있다. 전과자의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같은 취지에서 소년법도 학생의 장래 신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소년원경력의 공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교과부의 조치에 따르면 가해학생의 경우 징계벌을 받고 성인이 된 후 최장 10년이 지나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서 과거 징계기록을 지울 수 있다.
 
그동안 대학진학, 취업, 군입대시 다양한 생활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피해학생의 경우에도 적어도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학교폭력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전학시에도 과거 피해자였던 사실, 상담·치료를 받은 사실은 숨길 수 없다.
 
결국 징계벌은 형벌에 비하여 가벼운 것이어야 하는데 성인에 대한 형벌보다 더욱 가혹한 이번 조치는 범죄와 형벌간에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형사법상의 비례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하여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고 '요주의 인물'로 감시하는 것. 학교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학교가 그 스스로의 폭력성을 돌아보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아이들에게 전가할 때 또 다시 학교로부터 폭력을 배우고 키운 아이들은 어디에선가 반드시 그 폭력을 돌려줄 수밖에 없다.

감시·처벌·낙인
학교 폭력 사항 10년 동안 보관
학교폭력 있는 학교 누리집에 공개
요보호학생 사찰카드 작성
성인보다 더 가혹한 학생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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