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보다 빠르다

광복 직후부터 ‘자유’를 정치 조폭들의 자유로운 나와바리(구역) 관리 정도로 이해했던 자유당, 구태가 흘러넘치던 신민당, 공화주의를 바닥까지 갉아먹었던 군바리들의 공화당, ‘민주’와 ‘정의’를 무지하게도 싫어했던 대머리의 민주정의당, 그리고 채 10년을 넘지 못하고 망했던 새천년 민주당, 그리고 현재는 자본가들에게만 문을 활짝 열어준 열린 우리당의 ‘좌파 신자유주의자’. 이 땅은 마빡이조차 수준 높은 코미디로 보이게 하는 정치를 참 오래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구시대 찌꺼기들 연합이었던 ‘신한국당’을 이어받은 ‘한나라당’의 유력 후보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공주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극우파들의 선명성 논쟁은 낡디 낡은 오래된 ‘쇼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지긋지긋하게 보아왔던 꼬라지라 이제 내성이 생겼을 만도 한데 여전히 쉽지 않네요. 그중에서도 현재 당내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이명박의 ‘정상인 말 잔치’ 시리즈는 여간 신경을 긁는 게 아닙니다.

이미 서울 시장을 역임하실 때 서울을 주님께 봉헌하셔서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의 대대적인 찬사를 받으셨던 이명박 전 시장께서 최근 소수 정상인을 위하야 노동자, 장애인, 노인, 동성애자 등 다수의 ‘비정상인’들을 왕따 하시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신 듯합니다. 이명박은 추후 제2의 ‘평화의 댐’ 사건이 되리라 예상되는 ‘한반도 운하’를 비롯하여 씹을 거리가 무궁무진하지만, 이 코너가 정치 칼럼이 아니고 SF에 대한 코너이니만큼 그놈의 지긋지긋한 ‘정상인’을 입에 달고 다니는 찌질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SF 두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물론 ‘비정상인’이라면 더 즐겁게 읽을 만한 책들입니다.

그 잘난 정상인들에게 ‘정상’의 의미를 되물어보며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는 SF는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영화 <엑스맨>도 그러한 SF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에 번역된 SF 소설이 워낙 드물긴 하지만, 그 중 ‘정상’이 무엇인지를 다룬 대표적인 두 권이 다행히 번역되어서 이 책들을 선택했습니다.

먼저, 2006년 KBS에서 <안녕하세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드라마의 원작 소설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 드라마는 줄거리가 원작과 너무 다르고 배우들의 연기가 어찌나 어색한지, 귀국한 후 인터넷으로 보다가 1회분을 채 못 보고 중단하고 말았지만, 원작만은 꼭 읽어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천재 수술>(동문출판사, 1983), <찰리>(문원북, 1988), <알게논의 무덤 위의 한 송이 꽃을>(일월서각, 1990), <모래시계>(청림출판, 1992), <생쥐에게 꽃다발을>(잎새, 1992), <앨저넌의 영혼을 위한 꽃다발>(대산출판사, 1997),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동서문화사, 2004), <앨저넌에게 꽃을>(동서문화사, 2006). 책의 제목과 번역자, 출판사가 제각각이니 조금씩 다르기야 하겠지만, 이들은 모두 이번에 소개할 (이하 <앨저넌>)이라는 SF를 번역한 책입니다. 아마도 하나의 책이 이렇게 여러 가지 제목으로 출판된 것은 드문 사건일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왜 이렇게 많은 출판사가 이 소설을 출판하려 욕심을 냈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앨저넌>은 대니엘 키스(Daniel Keyes)라는 작가가 1959년에 처음 단편 소설로 발표한 후 휴고상을 수상하고, 1966년에 이를 장편 소설로 각색해서 네뷸러상을 받음으로써 SF계의 양대 최고상을 모두 받은 최고의 SF 작품입니다. 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앨저넌>은 미국과 영국, 일본에서 라디오극,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졌고, 그 중 68년 <찰리 / Charly>라는 영화는 주인공을 맡았던 클리프 로버트슨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책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지능이 낮은 주인공 찰리는 수술을 통해 지능을 높이게 됩니다. 찰리는 그 모든 과정을 일기 같은 보고서로 남겨놓습니다. 이 책은 바로 찰리의 그 기록을 묶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맞춤법조차 맞지 않던 찰리의 보고서가 차츰 바뀌어 가면서 나중에는 학술적인 용어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찰리의 눈과 마음을 통해 만난 세상 이야기는 줄거리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찰리의 지능이 올라가면서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 역시 변화합니다. 그리고 그가 되돌아보는 과거 역시 계속 달라집니다. 끊임없이 쏟아놓는 의문, 분노, 이해, 그리고 좌절을 통해 찰리는 도대체 ‘정상’이라는 게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국내에 번역 소개된 <어둠의 속도(the Speed of Dark)>는 2004년 네뷸러상을 수상한 작품으로서, 역시 놓치기 아까운 책입니다. 제목만 보면 어슐러 K. 르 귄의 <어둠의 왼손(the Left Hand of Darkness)>이 먼저 떠오르는데, 내용은 앞서 소개한 <앨저넌>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어둠의 속도>의 주인공 루는 자폐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데, 그 시작부터 책을 덮는 마지막까지 도대체 ‘정상’이 뭐냐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루와 그의 자폐인 동료들은 자폐증을 ‘치료’한다는 개념 자체를 거부합니다. 이미 그들은 정상이기 때문에 ‘치료’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변화’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어둠의 속도’는 바로 그 ‘정상’과 ‘비정상’의 의미를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문은 SF 계에서 우주 활극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자폐아를 입양해서 20여 년째 기르고 있는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 역시 그 자폐인 아들이 들려준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빛의 속도가 일 초에 삼십만 킬로미터면, 어둠의 속도는 얼마에요?”
“어둠에는 속도가 없단다.”
“더 빠를 수도 있잖아요. 빛보다 먼저 존재했으니까.”


<앨저넌>의 경우 판본 대부분이 품절 상태이지만, 마지막에 출간된 <앨저넌에게 꽃을>은 현재도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책 모두 영어 원서로도 구입할 수 있으니 혹시 원서로 읽고 싶은 분은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개한 두 권을 읽으신 후 지난 장애인의 날에 발간된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같은 책들을 함께 본다면 아주 깔끔한 마무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명박 류의 찌질이 ‘정상인들’에게 한마디 날려줍시다.
“니네들 졸라 재수 없어!”

출처: 웹진ActOn
덧붙이는 말

최세진 : 비정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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