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ActOn] 웹 환경 개선운동: 접속의 조건 만들기 (1)

연재순서

1. 웹은 여성주의에 어떤 미래를 보여주는가
2. 웹 환경 개선 운동: 접속의 조건 만들기 1/3
3.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곳, 여성주의 웹진
4. 웹에서 이루어낸 여성주의 공동체: ‘언니네’를 중심으로
5. 웹에서의 여성주의 담론
6. 웹을 여성에게 향하게 하라, 그리고 여성주의적 소통으로 흐르게 하라

1) 인터넷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권리


환경운동은 그 종류와 성격을 불문하고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공통의 활동목표가 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슈들과 운동을 포괄하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바로 ‘커뮤니케이션 권리(Communication Right)’이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1970~80년대 CNN과 같은 서방의 주류 언론이 세계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셌을 때, 일반 민중들이 직접 뉴스를 만들자는 주장에서 제안된 개념이다. 이후 맥브라이드 회의(MacBride Round Table)1)에서 대안 미디어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고, 그 대안 미디어의 하나로 인터넷의 전신인 컴퓨터 통신이 언급되었다.

커뮤니케이션은 우리말로 직역하면 ‘소통’ 정도가 될 수 있으나, 커뮤니케이션 권리란 흔히 말하는 ‘의사소통’만을 뜻하지 않는다. 소통 그 자체만이 아니라 이를 위해 필요한 제반 권리들까지 포괄한다. 인터넷의 공공성 논의에서 언급되는 커뮤니케이션 권리에는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정보 공유와 접근의 권리가 있다.

이 4가지 권리는 이미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보장되고 있다.2) 그럼에도 인터넷에서 이를 커뮤니케이션 권리로 새롭게 정의한 이유는 90년대 들어 인터넷이 기존의 인쇄, 방송, 통신을 대체할 새로운 미디어로 각광을 받으면서 각각의 권리를 재해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소통이 사회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접속의 불가여부와 이에 따른 정보격차가 현실 세계에서 자본의 소유여부와 빈부격차를 재생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즉 ‘접속’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자 생존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3)

요약하자면, 커뮤니케이션 권리가 인터넷의 공공성 의제로 자리 잡은 이유는 오프라인에서 별개로 존재했던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정보 공유와 접근의 권리들이 인터넷을 매개로 모두 ‘접속의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란 결국 정보화 사회에서 민중이 미디어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2)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구축 : 개입과 활용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정보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권리가 포괄하는 구체적인 쟁점은 크게 4가지가 있다.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정보 공유와 접근의 권리가 그것이다. 90년대 이후 대중적 소통 공간이 된 인터넷에서 펼쳐졌던 미디어 운동의 목표는 4가지 권리 실현을 통해 인터넷을 ‘공공영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본 연구보고서의 서론에서도 밝혔듯이, 공공영역의 형성이란 역사적으로 사적 영역의 배제를 전제해 왔다.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벌어진 커뮤니케이션 권리 운동 역시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여성을 비롯해서 장애인, 노인, 빈민층, 농어촌지역주민 등은 ‘접속’의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4) 때문에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커뮤니케이션 권리들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의 목표는 단순히 인터넷을 이용하는 여성 인구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남성 중심적 위계질서를 전복시키고, 여성들의 요구를 커뮤니케이션 구조 속에 자리매김 시키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정보화 사회의 기본권인 접속의 권리를 여성들에게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 기존의 인터넷 공공성 논의가 가진 한계와 불완전성을 극복해야 한다.

출처 : http://www.takebackthetech.net/

인터넷에서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다. 하나는 인터넷이라는 기술적인 공간을 설계하고 규제하는 과정에 대해 ‘개입’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는 여성이 인터넷에 보다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게 하는 법제도적, 구조적 결정이 포함된다. 또 하나는 인터넷에서 새로운 의제를 형성하기 위해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이다.

‘개입’ 논의의 중심축은 ‘개방성’이다. 인터넷은 분명 모두에게 열려있는 개방적인 공간이긴 하나, 여러 가지 법제와 기술에 의해 그 구조가 좌우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공공성 논의는 보통 개방이냐 아니냐의 원론적 수준에만 머무르고 있다. 개방성, 즉 인터넷이 개인에게 부여하는 자유란 법제와 기술에 대한 논의 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 인터넷의 이러한 다층적 구조를 간과하면, 인터넷 이용 환경에 대한 발전적인 미래상을 내놓을 수가 없다. 인터넷은 개인의 역량 여하에 따라 생존이 갈리는 정글이 되고, 이를 규제하려는 정부와 이용하려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종국에는 닫힌 세계가 될 수 있다.

개입에 대한 논의는 정부와 자본의 공세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용자들의 자생적 담론 생산 과정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모 아니면 도라는 이분법적 틀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다양성을 놓치므로 소수자에게 치명적이다. 여성이나 장애인 등 소수자의 목소리가 인터넷에 반영될 여지는 줄어들고 그들이 접속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요원해진다.

주류의 개입 논리를 벗어나는 담론, 즉 새로운 개입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관점과 창조적 실험에 기초한 ‘활용’을 생각해야 한다. 그 실험이 단순히 몇몇 개인의 활용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많은 인터넷 대중에게 확산되었을 때, 비로소 권력의 억압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법제도적, 구조적 변화의 여지가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틀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대안적 활용을 인터넷에서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개입과 활용의 상호 작용이 인터넷을 둘러싼 여러 법제와 기술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만든다. 때문에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보다 총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활용과 개입의 구분을 통한 분석이 필요하다.5)

인터넷의 개방성을 주제로 한 논의에서 여성주의의 ‘개입’이 시도된 대상은 정부의 여성정보화 정책과 인터넷 실명제이다. 이는 4가지 커뮤니케이션 권리 중 접근권, 표현의 자유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주제로 한 논쟁을 야기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여성의 권리와 목소리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당했고, 여성들의 접속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보 공유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아예 몰성적(gender-blind)인 이슈로 취급되는 공공영역이다. 이는 바꿔 생각하면 오히려 여성주의적 공공성 담론이 선점할 수 있는 영역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여성들의 창조적 ‘활용’이 기대되는 부문이다.

<각주>

1) 맥브라이드 라운드 테이블은 정보의 불균형 문제,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화적 문제 등을 논의하고 국제사회에서 올바른 정보유통을 위한 제언을 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국제회의이다. 맥브라이드 라운드 테이블의 출범은 유네스코의 새로운 정보 질서 운동과 맥브라이드 위원회에 기원을 두고 있다. 유네스코는 정보 유통에 있어서 국제적인 불균등을 해소하고 제1세계와 제3세계 간에 유통되는 정보의 질과 양, 그리고 방향에 있어서 균형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으로 1977년 아일랜드 외무장관 출신으로 노벨상 평화상 수상자인 숀 맥브라이드(Sean MacBride)씨를 위원장으로 하여 전 세계 지성을 대표한 16인으로 구성된 맥브라이드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맥브라이드 라운드 테이블은 이러한 맥브라이드 위원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매년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언론인, 활동가, 기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세계 커뮤니케이션 이슈를 논의하는 장이다.

2) 세계인권선언 제18조․제19조, 제12조, 제27조.

3) 신희선(2005), <디지털 시대와 사이버 페미니즘: 한국여성단체의 온라인 여성운동과 의사소통방식을 중심으로>, 아시아여성연구 제44집 1호, 아시아여성학센터

4) 2001년 1월에 제정된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 제1조에서는 ‘저소득자․농어촌지역주민․장애인․노령자․여성’을 ‘정보통신서비스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보장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5) 2007년 2월 14일,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소장 김명준 인터뷰 중


출처: 웹진ActOn
덧붙이는 말

홍지은 :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태그

여성주의 , 사이버페미니즘 , 웹 환경 개선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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