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재산권이 어떻게 강화된다고?

친구들과 한미 FTA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각차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지적재산권 분야에 대한 주제에 이르러서는 아예 토론이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도 공짜 심리를 버려야 해. 남이 애써 만든 작품은 돈 주고 사 봐야지.”



아마 이것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인 듯하다. 최근 몇 년간 저작권자들(정확히 말하자면 저작인접권자들)은 “불법 복제는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빵을 훔쳐가는 도둑질과 같다”며 목소리를 높여 왔다. ‘불법’을 막으려고 지적재산권을 강화하겠다는 데 누가 감히 반대할 수 있겠는가? 한미 FTA에서 함께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미국이나 우리 정부 모두 지적재산권의 강화는 필연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정당한 복제



그러나 지적재산권의 본래 취지는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저작권법도 모든 복제를 불법으로 보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은 제6절에서 저작권의 행사를 일정하게 제한하고 있다. 재판, 학교 교육, 시사보도, 비평·연구를 위한 인용, 비영리 공연·방송,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 도서관 등에서의 복제, 시험문제로서의 복제,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복제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허용된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교사인 ‘오공유’ 씨가 수업을 위해 박경리 씨의 소설 <토지>의 몇 페이지를 복사해 학생들에게 프린트물로 배포했다고 하여 불법 복제로 보지 않는 것이다. 화가 이중섭의 그림에 대한 위작 논란을 보도하는 ‘사실신문사’가 문제의 그림을 복사해 신문에 게재하는 것도 정당한 이용이다. 자원봉사단 ‘나눔회’가 양로원에서 드라마 <대장금>의 몇 장면을 각색해 공연해도 되며, ‘나자유’ 양이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안도향 시인의 시를 옮겨 써도 된다.



이러한 저작권의 제한은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공정 이용’(fair use)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되고 있다. 이런 권리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세계인권선언 제27조
1. 모든 사람은 그 사회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즐기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작한 과학적, 문화적 또는 예술적 작품에서 생기는 정신적 및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 출처 : 인권운동사랑방



보다시피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지는 동시에,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지적재산권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창작자나 발명가의 권리‘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 활동을 촉진하고 과학기술의 혜택을 배분하기 위해서, 즉 두 개의 권리를 조화시키고자 존재하는 제도이다.



발명이나 창작과 같은 지적 생산물은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옷이나 음식은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지만, 그만큼 닳거나 사라진다. 상품 자본은 이와 같은 소모성에 의지하고 있다. 또 다른 물건을 팔기 위해서이다. 자본은 때로 소모성을 의도적으로 조장한다. ‘유행’이 그런 것이다. 물건이 충분히 그 효용을 다하기 전에 새로운 소비 욕구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상품과 달리 지식 상품, 즉 정보는 주변 사람들과 나눈다고 하여 닳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친구에게 내가 아는 지식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내 지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림이나 영화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참조해가며 시대의 작풍을 만들어 간다. 과학기술 역시 여러 사람의 발견과 발명이 공개되고 축적되는 가운데 진보한다. 그래서 정보는 숙명처럼 공유를 요구한다. 정보는 빵이 아닌 것이다.



지적 생산물의 공공성



인류는 지적 생산물의 이러한 비소모적 속성을 이용해 과학기술과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나의 창작물은 내 지식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나보다 앞선 시대의, 혹은 동시대 사람들의 지식이 함께 축적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지적재산권은 창작자와 발명가의 노고를 보상하면서도 그 배타적 행사를 제한하고 대대손손 무한하게 상속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었다.



일단 보호 기간이 한정된다. 출판 후 14년에 최대 14년의 추가기간 만을 인정하였던 1710년 앤 여왕법에서 많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해당 저작권의 시효가 만료된다. 특허도 보호 기간이 만료되면 공공 영역으로 편입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적재산권은 발명가 혹은 창작자의 사적 이익과 사회 공공의 이익 간에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그런데 최근 지적 생산물에 일반 물건과 비슷한 정도로 강한 소모성을 부여하려는 인위적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더욱 배타적으로 강화해 상품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보호기간을 늘려 공공 영역에 공개하는 시기를 되도록 미루려는 움직임을 들 수 있다. 지적재산권의 강화 경향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 협정) 등장 이후 전 세계로 급격히 확대되었다. 최근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지적재산권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번 한미FTA 협상으로 대격변을 겪게 될 전망이다.



지적재산권은 열심히 창작하고 발명한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는 소박한 제도가 아니다. 개인 발명가나 개인 창작자는 소수이다. 지적 상품 시장은 이미 각 기업의 이윤 추구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이다. 특히 저작물을 대량 배포하는 음반사, 영화사와 같은 저작인접권자들은 좀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작가에게 생전에 보상해주는 것으로 모자라, 저작권 보호 기간이 작가 사후 50년으로 늘더니 이번 FTA 협상에서는 70년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 작가가 죽어도 기업은 그 저작물로 계속 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다. 특허 역시 특허 출원 후 20년의 독점 기간이 지나면 누구나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야금야금 독점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의약품처럼 국민의 목숨이 달린 생산물에 대해 무한에 가까운 독점 이윤이 보장되고 있다는 점은 아찔하기마저 하다.



누구를 위한 지적재산권 강화인가



한미 FTA 협상 결과로, 앞으로는 냄새와 소리도 상표로 인정이 된다. 물론 미국 등 특허 제도를 일찍이 도입한 ‘선진’ 국가들에서 이미 선점한 규모가 방대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형국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도 한류 문화 상품으로 떼돈을 벌자고 외쳐봤자 이다. 이 땅에서 지적재산권으로 이득을 보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극소수의 자본일 뿐이다. 일반 민중들이 책이나 음악, 영화, 약품 등 지적 생산물을 누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점점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 점점 더 팍팍해지는 세상, 문화생활이 다 무어야. 안 보고 안 듣고 안 즐기고 살지 뭐... 암울하다.



출처: 웹진ActOn
덧붙이는 말

바리 :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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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 , TRIPs , 공정이용 ,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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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코프스키

    안 보이는 이미지의 주소가 http://webzine.jinbo.net/data/webzine_4/photo/12/44/sp_1.jpg 으로 나와 있습니다.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