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ActOn] 포털에 사법책임 부여, 정당한가?

명예훼손적 표현물에 대해 법원이 포털사이트 책임을 인정한 것에 대하여

“이 포스팅은 명예훼손이므로 관리자에 의해서 삭제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사라지고 위와 같은 글만 남아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보통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왜 명예훼손이지?’, ‘법적으로 확실한 건가?’, ‘내 의견은 왜 묻지 않았지?’ 그런데 게시물 삭제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혹은 ‘알바’)가 제 맘대로 명예훼손이라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면, 그대로 수긍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왜 이용자의 글을 함부로 삭제하느냐’며 항의하고 싶을 것이다. 더구나 민간사업자(또는 단체)가 표현물의 불법성 여부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국가 정책이라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다음과 네이버 등 일부 포털사이트 운영자가 명예훼손적 표현물에 대해서 삭제를 요청하거나 직접 삭제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하였다. 이것은 다음과 네이버 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모든 민간사업자 또는 단체가 인터넷 이용자의 게시물에 대해 불법성 여부를 직접 판단해야 하는 의무가 부과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명예를 훼손하거나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표현물은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판단이 자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이고 이에 대한 제한은 법률에 따라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법적 결정 권한이 없는 민간 사업자가 불법 여부를 판단하게 할 경우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검열’을 부추길 수 있다.

이번 판결로 인해서, 포털사업자를 비롯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들은 손해배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블로그, 미니홈피, 커뮤니티에 올라가는 표현물을 일상적으로 검열하고, 문제가 있어 보이는 표현은 무조건 삭제할 수 있다. 블로거들은 마땅한 항변 기회도 없이 삭제되는 자기 글을 보면서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네티즌의 건강한 비판과 소통의 문화를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최근 포털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관련 법안을 만들어 이르면 올해 통과시킬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방법은 매우 우려스럽다. 인터넷 표현물에 대해 포털사업자의 사법적 판단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7월부터 개정 발효할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인터넷 표현물의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이 크게 강화된 것이다. 사법부의 판단 없이 행정부가 자의적인 잣대로 국민의 표현물을 규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정부에 의한 검열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런 사태이다.

표현물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정부나 민간 영역에서 담당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법원을 통한 피해 구제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신속하고 효율적인 규제를 위해서 정부나 민간 사업자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것이 헌법상 금지되는 검열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현재의 제도가 부족하다면, 법원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무엇보다, 온라인 공간에서 명예훼손적 표현물이 범람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우리 사회가 낳은 문제이다. 이런 지적은 수년 전부터 계속 되어 왔지만 나아진 점이 없다. 정부가 차단소프트웨어, 실명제 등 기술을 통한 규제와 사업자를 통한 규제에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손쉬운 해결책에만 몰두하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 마련은 영원히 뒷전일 수밖에 없다. 정부와 법원은 인터넷 표현물로 인한 문제에 대해 처벌과 규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면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출처: 웹진Ac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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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 인터넷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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