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인
한국 정치와 사회 운동을 연구하면서 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한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과 같이 획일적이고 규격화되어 있고 일방향적이고 형식적인 한국의 학교 교육 체계에서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비관적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당연히 비형식적이고 쌍방향적이며 학습자 중심적인 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자크 랑시에르( Jacques Rancière)는 인격적이고 지적인 ‘개인적’ 성장에 근원적인 해방의 단서가 있다고 보았다. 물론 그의 ‘개인’은 사회와 고립된 개인이 아니었다. 지적인 평등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는 ‘개인적’ 배움의 과정이야말로 틀 지어진 사회의 재생산 고리를 깰 수 있는 수단이었다. 랑시에르의 사상을 관통하는 평등의 논리는 양극화라는 사회 불평등 현상을 극복하는 데 있어 좋은 이론적 지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 투쟁 중심의 운동과 집단행동이 오랜 전통이 되어 온 한국 사회 운동에서 랑시에르의 ‘개인’에 초점을 맞춘 변혁관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스승인 알튀세르와 결별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도 거리를 두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랑시에르에게서 배울 교훈은 매우 심대하다. 랑시에르는 19세기 노동자의 글을 읽으면서 독특한 교육법을 발견한다. 그것은 장 조제프 자코토( Jean-Joseph Jacotot)가 주창한 ‘보편적 가르침’이다. 《무지한 스승》(양창렬 옮김, 궁리, 2008)은 자코토의 생각에 대한 랑시에르의 재해석을 담고 있다. 랑시에르는 기존의 교육 형태를 ‘바보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비판한다(31쪽). 잘못된 교육은 ‘구식(la Vieille)’인데, 구식 교육은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능이 열등하다고 확신하는 ‘바보’, 그리하여 생활 전반에 걸쳐 자기보다 지능이 높다고 생각되는 타인에게 의존하는 ‘바보’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식 교육은 지능의 불평등한 위계성을 전제로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고착화한다. 그래서 랑시에르는 많은 교육 전문가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소크라테스 지도법’까지도 바보 만들기 수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에 랑시에르는 지능의 평등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평등은 ‘교육의 결과’로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교육의 출발점’이어야 하는 것이다(258쪽). 평등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평등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해방이다. 그는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의 평등에 머물지 않고, 지능의 평등을 주장한 것이다. 결국 해방은 지적 능력의 평등을 전제로 모든 인간이 자신의 방식대로 지각 방식의 틀을 재편성할 때 찾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랑시에르는 제대로 된 바른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무지(ignorant)’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지 못하는 ‘무지한 교사’가 이상적인 교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출현한 개념이 ‘무지의 스승’이다. 이는 첫째, 학생에게 가르칠 것을 알지 못하는 스승, 둘째, 어떤 앎도 전달하지 않으면서 다른 앎의 원인이 되는 스승, 셋째, 불평등을 축소하는 수단들을 조정한다고 여겨지는 불평등에 대한 앎을 모르는 스승이다. 이 ‘무지한 교사’의 전형이 바로 ‘자코토’인 것이며, 자코토가 주창한 보편적 가르침이 바로 지능의 평등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스승의 개념이 지능의 불평등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 불평등의 논리가 모든 예속적 질서의 유지와 재생산의 비밀임을 밝힌다. 그리고 이로부터의 해방은 지적 평등의 전제 위에서만 가능함을 주장하면서 ‘보편적 가르침’의 방법을 설파하고 실천한다.

한마디로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대하며, 학생에게 특정한 지식을 주입하려고 하지 않는, 학생을 믿는 스승이 무지한 스승인 것이다. 무지한 스승은 학생에게 ‘지식’을 가르치지 않지만, ‘의지’를 가지고 학생들이 학습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며, 모든 학생이 지적으로 평등하다고 전제하는 스승이다.

해방은 이 평등에 대한 의식이다. 자신의 지능이 다른 모든 지능과 평등하다고 보고 또 모든 다른 지능이 자신의 지능과 평등하다고 볼 때 지능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식을 주는 것이다(83쪽).

 

랑시에르는 ‘개인’의 자율성에 집착하는 자유주의가 갖는 몰사회성에 대해 ‘평등’이라는 사회적 출발점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평등에서 출발해야 하고 지적 능력의 평등은 하나의 공리이며 그것은 끊임없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한국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혁신 학교, 학습주의, 학습 공동체 운동 등 많은 논의와 운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문제는 늘 그렇듯 교육운동이 제도 교육의 틀 안으로 자꾸 환원되고 만다는 점이다. 법과 제도에 갇히지 않는 교육학적 사유가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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