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전장들: 남반구의 전설적 공적 지식인의 회고록⟫(Global Battlefields: Memoir of a Legendary Public Intellectual from the Global South), 월든 벨로(Walden Bello) 지음, 클래러티 프레스(Clarity Press), 2025년
무엇보다 먼저, 월든 벨로의 회고록은 독자들을 지난 60년간 벌어진 독재, 착취, 제국주의에 맞선 가장 거대한 투쟁들 속으로 안내한다.
⟪세계의 전장들⟫은 독자들을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유혈 쿠데타 1년 전, 칠레 산티아고 거리에서 벌어진 맞불 시위 현장으로 데려간다. 독자들은 필리핀에서의 마르코스 독재 정권에 맞선 장기 투쟁과 그곳의 무장 봉기와 연대한 미국 내 연대 운동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접하게 된다. 대기업 주도의 세계화에 맞선 운동의 핵심 전투들도 목격자의 시선으로 다뤄진다. 벨로는 시애틀, 프라하, 칸쿤, 제노바의 거리 투쟁에 직접 참여했으며, 세계은행에 침입해 그 기관이 마르코스 정권과 협력한 내용을 담은 문서를 복사해 냈다. 이 책은 또한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1인칭 기록도 담고 있다. 그곳에서 벨로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엘리트 대변인들과의 텔레비전 중계 대서양 토론에서 개회 연설을 맡았다.
“제국과의 일전”이라는 제목의 장에서는, 독자를 미국의 폭격이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의 바그다드로 데려가며, 벨로가 헤즈볼라와 하마스 지도자들을 인터뷰한 비밀 회합으로 이끈다. 2000년대 후반, 벨로는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갔고 국회에 선출되었다. 회고록은 그가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확보하고, 해외 노동 필리핀인을 보호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외교 경로를 모색하기 위한 입법 투쟁을 벌인 과정을 되짚는다.
이 회고록이 이런 다양한 경험들을 풍부한 질감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세계의 전장들⟫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 분석, 전략, 윤리에 관한 질문들과 씨름하는 대목들이 그것이다.
사건이 당신을 놀라게 할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 질문들 중 하나는 이 회고록의 핵심 주제를 이룬다. 즉, 현실 세계의 사건들이 자신이 미리 세워놓은 정치적 틀에 부합하지 않을 때, 급진주의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벨로는 이 질문에 처음 맞닥뜨린 시점을 1970년대 초 대학원생 시절로 회고한다. 그는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 대통령에 당선된 데에 고무되어, 평화롭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을 연구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칠레의 빈민가에서 좌파 정당들이 어떻게 대중을 조직하는지를 박사 논문 주제로 삼았다. 그는 급진 언론을 광범위하게 읽으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했고, 자신이 혁명적 상승 국면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1972년 칠레에 도착한 뒤, 벨로는 아옌데 지지자들이 소집한 시위들에 참석하면서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역동성을 발견했다. “나는 참가자들 사이에 일종의 수세적인 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혁명은 수세에 몰려 있었고, 거리의 주도권은 우파가 잡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벨로는 마음을 바꿨다. “나는 혁명 시기에 활동가 조직화에 기여할 수 있는 논문을 쓰고자 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그 시점을 넘어섰고, 나는 반혁명의 부상을 이해하기 위한 논문을 쓰기로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이후에는 이 논문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벨로로 하여금 당대 좌파 진영 내에서 지배적이던 정치 갈등 속 중간계급의 역할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서사가 이어진다. 벨로는 이 계층을 “야누스의 얼굴을 한” 계층이라 칭하며, 중간계급이 때로는 민주주의 투쟁에서 노동계급과 손을 잡을 수 있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아래로부터의 봉기를 억누르기 위해 지배계급과 함께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벨로는 특히 칠레 경험을 분석하면서, “CIA, 칠레 엘리트, 시카고 보이즈, 칠레 군대의 역할은 폭넓게 연구되었다. 하지만 중간계급의 역할에 관한 연구는 내 논문 외에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한다.
칠레에서 예상하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마음을 바꾼 것은 “고통스러웠다”고 벨로는 회고했다. 그러나 자신이 칠레 투쟁의 내부 활동가가 아니라 그것을 연구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방향을 전환하는 데 있어 깊은 영혼의 탐구까지 요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필리핀 혁명
칠레에서 프린스턴 대학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벨로의 모국 필리핀에서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며 독재 통치를 시작했다. 벨로는 조국에서 마르코스 정권과 그 주요 후원자인 미국에 저항하는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에 전력을 다했다. 그는 당시 필리핀 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Philippines, CPP)의 지도 아래 독재 정권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이던 이들과 연대하던 미국 내 주요 단체인 필리핀민주주의자연합(Union of Democratic Filipinos, KDP)에 합류했다. 1974년 CPP에 영입된 벨로는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규율 있는 당원이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했고, 동지들의 집 소파에서 잠을 자기도 했으며…당의 편에 역사가 있다는 믿음 속에서, 필연적이라 확신했던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이후 10년 동안, 모택동식의 “장기 인민전쟁” 전략을 따르던 CPP 지도 하의 신인민군은 꾸준히 성장했다. CPP 지도 하의 국가민주전선(National Democratic Front, NDF)은 “교조적이지 않고, 유연하며, 혁신적”이라는 벨로의 평가와 함께 반(反)마르코스 운동의 가장 역동적인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1985~1986년, 상황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혁명 세력이 점점 힘을 얻는 것을 우려했고, 마르코스가 대중의 지지를 잃고 있다고 판단하며, 그에게 대선을 실시하라고 압박했다. 그들의 목표는 좌파를 약화시키고, 엘리트 야당이 대통령직을 차지하거나 마르코스와 엘리트 반대파 간의 권력 공유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보다 원활하고 통제된 이행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워싱턴과 혁명 좌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이른바 “속전속결 조기 선거” 발표는 필리핀 각 계층의 대중적 행동주의를 폭발시켰다. 필리핀 국민들은 코라손 아키노(Cory Aquino)의 선거 도전에 진정성을 느꼈고, 이를 통해 마르코스를 축출하고 독재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대체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그러나 CPP 지도부는 이 선거가 단지 미국이 꾸민 눈속임일 뿐이며, 미국은 결코 마르코스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무장 투쟁의 승리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필리핀에 가져올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CPP는 이 선거를 또 하나의 “반동 세력들 간의 무의미한 경쟁”으로 규정했고, 고조되는 대중 투쟁에서 물러나 투표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 결과는 좌파에게 재앙이었다. 아키노가 투표에서 승리하자, 마르코스는 이를 무효화하고 승리를 주장하려 했고, 이에 거대한 대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항의했으며, 군 지도부 일부는 민중의 편으로 돌아섰다. 벨로가 “워싱턴에 대한 선물”이라 불렀듯, CPP와 NDF는 역사적으로 ‘피플 파워 혁명’이라 불리게 된 이 사건을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계획이 정확히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음을 알았지만, 좌파가 스스로를 소외시킨 사실에 만족하며, 마르코스를 퇴출시켜 그와 가족을 하와이로 보내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내 생각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벨로는 그 여파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2월 봉기로 국가민주전선(NDF)이 받은 충격은 서서히 가셨다. 미국이 마르코스를 몰아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NDF의 기본 가정이 산산이 깨졌기 때문에 내부적 논쟁이 불가피하게 촉발되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역학은 권위주의 정권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지만, 불행히도 CPP–NDF는 같은 방식으로 행동을 지속했다. [마르코스 이후 아키노 정부]라는 적을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옛 독재로 상상하면서, CPP–NDF는 자신들이 검증했다고 여긴 공식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것은 집중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방식에 무장투쟁 강화를 중점적으로 두는 전략이었다…”
이후 몇 년 동안 CPP–NDF는 수차례 분열을 겪었고, 1985년 이전에 가졌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벨로는 1989년 사임했고,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내가 필리핀 공산당에 참여했던 시기는 내 정치 인생의 절정이었다... 나는 그 시기에 신념을 위해 목숨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경험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피플 파워 혁명 이후 분석과 역사의 차가운 사실들에 의해 밀려났음에도 여전히 기억할 만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그 ‘차가운 사실들’에 관해 벨로는 “보이콧이라는 대실패를 통해 내 사고는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틀에서 벗어나 흔들렸다”고 쓴다. 회고록의 한 부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주제에 대한 자신의 사고 변화 과정을 밝힌다. 자본주의 지배에서 강제력과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균형, 혁명 전략에서 무장투쟁의 위치, 필리핀 정치경제에 대한 이해, 1989년 이후의 좌파와 세계 사회주의 프로젝트를 재구상할 필요성 등이다.
계급 정치와 개인의 권리
반(反)자본주의 전략에 대한 재검토와 더불어, CPP에서의 경험은 벨로로 하여금 그가 “윤리적 위기”라고 부르는 상황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이는 “심층 침투 첩자(DPAS)”로 의심되는 이들을 색출하기 위한 일련의 당 내부 숙청에 의해 촉발되었다. 이 캠페인은 통제불능 상태로 치달았고 수천 명의 당 간부들이 처형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벨로는 이 숙청에 대한 최초의 실증적 조사를 진행했고, 자신이 겪은 일을 “매우 거친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이 “광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은 인간을 “적절한 계급에 속하거나, 아니면 올바른 정치 노선을 가졌을 때에만 권리를 갖는 존재”로 보는 ‘도구주의적 관점’이었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 ‘계급의 적’으로 의심되거나 규정되면, 그 혹은 그녀는 생명, 자유, 존엄에 대한 고유한 권리를 가지지 못하며,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해당 순간의 전술적 필요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벨로는 자신의 검토가 “개인은 계급적 권리를 넘어서는 권리를 가지며, 그 권리는 단지 인간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고, 당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부여한 선물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나를 밀어붙였다”고 썼다.
동의하느냐 아니냐는 본질이 아니다
개인의 권리 문제에 있어서든, 필리핀 좌파의 진로에 대한 벨로의 평가 변화든, 혹은 ⟪세계의 전장들⟫에서 다룬 수많은 다른 쟁점들에 있어서든, 독자들은 저자의 견해에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회고록을 평가할 때 정치적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 책이 전하는 핵심 교훈을 놓치는 일일 것이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틀이 예상한 방식대로 전개되지 않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우리의 전제를 다시 바라보고 사실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두 가지를 결합했을 때, 우리는 사유를 진전시킬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는 기존의 틀을 수정하고 발전시킬 수도 있고, 완전히 갈아엎거나 대체할 수도 있으며,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요소들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인식하면서 기존의 관점을 강화할 수도 있다.
벨로의 회고록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바로 그런 과정을 겪는 활동가 지식인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정치의 근본 구조가 급격히, 깊이 변화하는 시기이므로, 이 사례는 특히 시의적절하다.
벨로는 회고록의 마지막을 밥 말리의 ‘No Woman, No Cry’ 가사로 마무리한다. 그 가사 중 다음 구절이 특히 돋보인다.
우리가 함께한 좋은 친구들이 있었지
오, 우리가 잃어버린 좋은 친구들도 있었지
그 여정 속에서
이 위대한 미래 속에서도 너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해
그러니 눈물을 닦아, 내가 말하잖아
워싱턴 제국 권력의 성채를 점거한 권위주의자들은 현재 우리의 과거를 지우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모든 박물관, 교실, 책이 현재의 위기 상황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인류가 걸어온 길에 대해 거짓을 퍼뜨리는 장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피억압자, 주변화된 자들, 학살당한 이들, 그리고 승리했든 패배했든 정의로운 싸움을 벌인 이들의 시각에서 과거를 회고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벨로는 이 회고록을 자신의 활동적 기여와 방대한 정치적 저작물에 더함으로써 자신의 몫을 해냈다.
[출처] Global Battlefields: A No-Holds-Barred Reckoning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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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엘바움(Max Elbaum)은 <컨버전스 매거진>의 편집위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