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공에서 100일, 고진수의 바람..."조직 노동의 힘, 제대로 발휘하는 투쟁을"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는 한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자본가들이 정리해고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싸우고 싶습니다. 세종호텔 정리해고가 철회되고, 남은 조합원들이 복직할 수 있게 한 번만 더 연대와 희망을 모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2월 13일 새벽, "신발 속 거슬리는 모래알을 넘어 나와 일터를 지키는 위협적인 송곳이 되겠다"며 시작한 고진수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의 고공농성이 5월 23일로 100일을 맞이했다. 

도로 위 10미터 높이의 철제 구조물에서 세 번째 계절을 맞은 그는 어떤 고민과 마음을 품고 있을까. 시린 겨울과 짧았던 봄을 지나, 타오르는 여름의 문턱에 서 고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고진수 씨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공농성 100일째, 고진수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세종호텔 연대시민 김진아 제공

고공에서 100일, 어떻게 지나왔나

처음 고공에 오르고 한 달 가까이는 윤석열 퇴진 국면에서 워낙 집회들도 많고 그 열기가 이어지면서 한 30일에서 40일 정도는 훅 지나간 것 같다. 

그 이후에도 함께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동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동지와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오다 보니 빠르게 100일이 흘러온 것 같다. 박정혜 동지는 500일이 넘도록 너무 오래 고공에 있고, 김형수 동지가 농성 중인 곳은 제가 있는 곳보다 훨씬 더 열악한 조건이어서 걱정이다. 

두 동지와 함께, 고공 아래에서 연대하는 또 많은 동지들과 함께, 여러 노동 의제들을 고민하고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100일을 지나올 수 있었다. 

건강 상태는 어떤가, 여름이 가까워 온열질환도 걱정이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웃음) 생활 자체는 농성 투쟁을 하면서 규칙적으로 하게 되어 많이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농성 중인 공간이 워낙 협소해 근골격계, 관절, 그런 부분들이 확실히 안 좋아진 것 같다. 

진작부터 더위에 대해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5월부터 기온이 30도 가까이 오르니 확 다가온다. 힘이 든다. 

세종호텔과 호텔 지분을 100% 보유한 대양학원 측의 움직임은 어떤가 

여전히 대화에 나서는 것조차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는 것만 내세우면서, 자신들은 더 이상 관계가 없다는 태도만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공에서 내려와 땅을 밟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저의 바람은, 지난 2017년에 처음 고공에 올라갔을 때도 지금도, 조직 노동이 발휘할 수 있는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 여러 노동 악법들과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마주한 어려움들이 심각하다. 비정규직은 너무나 많이 확산되어 있고, 노동자의 기본권인 노동3권을 가질 수 없는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다. 

민주노총, 조직 노동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제기하고 나섰으면 좋겠다. 특히 지금 대선 국면이나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 더 힘 있게 노동의 문제를 주장할 수 있는 투쟁의 방식이 필요하다. 

조직 노동이 그렇게 나선다면, 당장 사측에서 문제 해결에 대한 것들이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래에 내려가서 정말 그런 투쟁을 같이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많이 든다. 

"박정혜 502일, 고진수 100일, 김형수 70일". 세종호텔 연대시민 김진아 제공

대선 국면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최근 후보자 간 TV 토론회를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십수 년 전과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국민의힘을 비롯해서 민주당까지도 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좋은 일자리'를 얘기하는데, 사실 일자리가 없어서 좋은 일자리를 새로 더 만들어야 한다기보다, 기존의 일자리들을 나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하기 좋도록 각종 규제를 철폐한다고 하는데, 그런 관점이 바로 노동 악법들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기업하기 좋게 하려고 노동시간은 늘리고, 해고는 쉽도록 하는 법들을 늘려온 것 아닌가. 그런 법들을 규제하고 현실을 바꾸는 부분에 더 초점을 둬야 할 텐데, 여전히 하나도 바뀌지 않는구나 싶었다. 

진짜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려면, 지금 우리의 현장을 노동권을 실현할 수 있는 일자리들로 바꾸어내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여러 권리들이 보장이 되어야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려면 조직 노동의 목소리를 키워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고 있어서 많이 답답하기도 하다. 

고공 아래, 노동자·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노동자들의 현실은 하루하루 다들 옆을 돌아보기 힘들 정도로 경쟁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경제 규모는 성장해도 우리 삶의 질은 분명히 더 많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저와 동료들이 이런 싸움을 하는 이유에는 당장 일터로의 복귀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이렇게 자본이 너무 쉽게 노동자들을 쓰다 버리는 현실과, 법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자본의 편에만 서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도 크다. 

이런 현실에 대해 많은 노동자 시민들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 마음과 노력들이 어떻게든 전달은 될 거라 생각한다. 이 투쟁을 지켜보고 있는 많은 노동자 시민분들께서도 다만 그냥 보고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많이 고민하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그것들이 표출될 수 있는, 힘을 모아내 분출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늘 감옥에 갇힌지 100일". 세종호텔 연대시민 김진아 제공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