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의 그림자 속, 팔레스타인인의 선택은 감옥에

백악관이 929일 도널드 트럼프의 가자지구 분쟁 종식 계획을 발표한 이후,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이 끝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만약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이스라엘과 나란히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한다는 구상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논의 테이블에 오르게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은 이 계획의 초안 작성 과정에서 눈에 띄게 배제되었으며, 이스라엘이 초래한 파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어떠한 조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20개 항목으로 구성된 계획에는 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계획의 조건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은 가자지구에 남을 수 있으며, 협정이 체결된 이후 평화적 공존을 약속하는 전투원들에 대한 사면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점령하거나 합병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또한 이 계획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결권과 국가 수립에 대한 열망을 인정하며, 특정 조건하에서 그 목표를 달성할 경로가 실현 가능할 수도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 계획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귀국 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은 협정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립을 강제로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의 이 협정안은 네타냐후 내각의 표결을 통해 승인되어야 한다. 이미 적어도 한 명의 내각 구성원, 베잘렐 스모트리치(Bezalel Smotrich)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스모트리치는 이 협정을 눈에 띄는 외교적 실패라고 규정하며, “결국 눈물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에게도 이 계획은 여러 개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하마스는 존립을 위협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한편으로, 이 계획은 가자지구의 미래 통치에서 하마스의 역할을 명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 대통령은 하마스가 이 계획을 거부할 경우, 이스라엘이 군사적 공세를 계속할 청신호를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다음 단계가 휴전이든 가자지구의 지속적인 파괴이든, 명확해진 사실은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을 통치하는 세력으로서 하마스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팔레스타인인의 통치를 누가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마르완 바르구티(Marwan Barghouti) 출처: 현지 방송 화면 갈무리

가장 명확한 답은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인을 대표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자치정부는 오슬로 협정에 따라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관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5년 이후로는 파타(Fatah) 소속의 마흐무드 압바스(Mahmoud Abbas)가 이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2007, 파타와 하마스 간의 짧은 내전으로 인해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게 되었고, 이로써 두 정파와 팔레스타인 민중 사이에는 깊은 분열이 생겼다.

자치정부는 자신이 가자지구의 유일한 합법적 통치 기관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파타와 압바스는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없다. 팔레스타인정책조사연구센터(PCPSR)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의 단 6%만이 선거에서 압바스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현재 자치정부 지도부의 정통성이 약화되면서, 그들이 통치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부패, 민주주의 결여, 그리고 고령의 압바스는 팔레스타인인을 새로운 역사적 장으로 이끌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 한 이름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마르완 바르구티(Marwan Barghouti).

팔레스타인의 만델라

바르구티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정파를 통합하고 국가 수립을 실현할 핵심 인물로 여겨져 왔다. 그는 2009<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잡지에서 팔레스타인의 최선의 희망(Palestine’s best hope)”으로 묘사되었다. 보다 최근인 20247,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수감자(the world’s most important prisoner)”라고 불렀다.

2002년부터 이스라엘에 수감 중임에도 바르구티는 미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잠재적 지도자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해왔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팔레스타인의 넬슨 만델라라고 부르며, 그가 남아프리카 지도자처럼 정치범에서 분열된 민중을 통합할 지도자로 변모하길 희망하고 있다

1959년 요르단강 서안에서 태어난 마르완 바르구티(Marwan Barghouti)는 제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 봉기) 직전 시기 청년 지도자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1996년 팔레스타인 입법위원회(PLC)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제2차 인티파다가 한창이던 2002, 그는 이스라엘 보안기관에 의해 체포되었고, 2004년에는 5명의 살인에 가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바르구티는 이스라엘 법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재판에서 변호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5개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바르구티의 석방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들. 출처: 현지 방송 화면 갈무리 

바르구티의 매력은 그가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인, 그리고 국제 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는 능력에 있다. 그는 무장 저항과 투옥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하마스는 과거 포로 교환 협상 후보 명단에서 그를 최우선 순위로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그는 비무장 저항을 선호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민주적 팔레스타인 통치를 지향하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부패에 염증을 느낀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도 지지를 얻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평화운동가들에게는 폭력의 악순환을 끝낼 팔레스타인 해법으로 여겨진다. 베테랑 평화운동가 게르숀 바스킨(Gershon Baskin)20254<타임스 오브 이스라엘>(The Times of Israel)과의 인터뷰에서 바르구티는 여전히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에 헌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안보기관 내부의 목소리들 역시 바르구티가 팔레스타인 지도자로서 지닌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Shin Bet)의 전 국장 아미 아얄론(Ami Ayalon)20241, “이제는 바르구티를 석방하고, 팔레스타인 민중의 대중적 지도자로서 그와 협상을 시작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자들은 그가 자신들에게 정치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여, 이스라엘-하마스 포로 교환 협정안에 바르구티의 석방이 포함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다.

예상할 수 있듯, 다른 이유에서 네타냐후 또한 그의 석방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그는 2017, <뉴욕타임스>에 실린 바르구티의 기고문에 대한 반응으로 수감 중인 파타 지도자 마르완 바르구티를 팔레스타인 지도자이자 의원이라 부르는 것은,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를 소아과 의사라 부르는 것과 같다라고 비난했다.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향한 전개 중인 퍼즐의 빠진 조각이 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누가 팔레스타인인을 이끌어야 하는지는 팔레스타인 민중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팔레스타인의 만델라를 자유롭게 풀어주길 원하지 않는 자들이 그의 감방 열쇠를 쥐고 있는 듯하다.

[출처As Hamas considers a peace deal, the man most Palestinians want to lead them sits in an Israeli jail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레오니 플라이슈만(Leonie Fleischmann)은 런던대학교 시티 세인트조지스(City St George’s, University of London) 국제정치학 선임강사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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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전쟁 하마스 종전 가자지구 마르완 바르구티 만델라 팔레스타인자치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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