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유럽연합은 무역, 방위, 국경 문제를 아우르는 역사적이고 광범위한 새로운 협정을 발표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코로나19와 각종 분쟁이 세계 경제 지형을 극적으로 바꾸어놓았고, 소비자들은 그 영향을 매일 체감해 왔다. 따라서 지금은 영국과 최대 교역 상대국인 유럽연합 사이 관계를 “재설정”할 적기로 보일 수 있다.
무역을 넘어, 양측은 청년 이동성 제도에 대한 추가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영국 여권 소지자들이 일부 유럽 국가에서 전자출입국심사(e-gates)를 이용해 긴 대기줄을 피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 협정은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야당들이 영국-EU 관계 강화라는 민감한 문제를 정치적 기회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발표에 대해 전문가 패널에게 분석을 요청했다.
지난 25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영국과 EU가 맺은 새로운 협정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 키어 스타머 페이스북
마침내 소비자에게 희소식이 되다
카므란 마루프(Kamran Mahroof) 브래드퍼드대학교 공급망 분석 부교수
영국-EU 재설정 협정은 브렉시트 이후 양측 관계에 있어 실용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소비자에게는 작지만 실질적인 개선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혜택은 슈퍼마켓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동식물성 식품의 수입과 관련된 검역 절차와 행정 절차가 줄어들면서 공급망이 보다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된다. 이론적으로 이는 지연 감소, 제품 가용성 증가, 결국은 생필품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브렉시트 이후 식료품 가격 상승의 영향을 체감해 온 소비자에게 이는 반가운 소식이다.
육류 생산업체 같은 기업에게는 영국산 햄버거와 소시지가 다시 유럽연합 매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영국 식품 생산업체에게 큰 성과다. 수년간의 관료적 규제와 제한 이후, 더 많은 수출과 고용 창출, 산업에 대한 새로운 신뢰 회복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여전히 일부 서류 작업과 규칙이 특히 중소기업에게는 부담이 되겠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무역 관계가 다시 온기를 되찾고 있다는 신호다. 이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다.
그럼에도 이번 협정에는 한계가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누리던 단일 시장 접근권과 소비자 보호 수준이 전면 복원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업권은 도시 소비자에게는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해안 지역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여파는 결국 더 넓게 확산될 수 있다.
어업 협정, '관계 재설정'의 길을 열다
마리아 가르시아(Maria Garcia), 배스대학교 국제관계학 수석 강사
이번 협정은 그동안 많이 언급되어 온 노동당의 영국-EU “관계 재설정”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이번 발표에는 안보, 에너지, 어업을 포괄하는 협정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번 발표는 영국 측의 주요 재설정 목표에 있어 핵심 사항들을 충족하지는 못했다. 그 핵심에는 여전히 영국의 최대 무역 상대이자 시장인 유럽연합과의 무역을 촉진할 일련의 조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2024년 기준, 유럽연합은 영국 상품 수출의 48%, 서비스 수출의 36%, 상품 수입의 51%를 차지했다.
어업은 영국 농림수산물 수출의 약 5%를,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0.03%를 차지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은 비중일 수 있다. 그러나 어업 산업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해당 지역 사회에는 생명줄과도 같은 중요성을 지닌다. 유럽연합 국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어업은 2021년 영국-EU 무역 및 협력 협정(TCA)을 위한 협상에서 다루기 어려운 쟁점이었다. TCA에 따라, 유럽연합은 영국 해역에서 자국 어획량의 25%를 점진적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또한, 어획 할당량 대상 어종에 대한 어업 허가에 관한 상호 이해도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양측의 선단이 서로의 해역에서 조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은 2026년 6월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어업에 대한 합의 없이는 재설정의 다른 분야들도 수용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북해 연안 국가들도 어업 협상 요구에 동참했다. 이는 야당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 정부에게 쉽지 않은 요구였다.
이번 협정은 향후 12년간의 어업 접근 문제를 해결했다. 절대적인 경제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으나, 그 정치적 중요성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스타머 정부가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신호이며, 복잡해진 글로벌 무역 관계 속에서 특히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타 제안된 조치에는 안전 신고서 제출 요건 면제, 위생 및 식물위생(SPS) 조치에 관한 합의, 그리고 농업 무역을 촉진하기 위한 수의학 협정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내용은 영국과 유럽연합이 SPS 조치에 대한 합의 추진을 약속한 새로 발표된 메모에 담겼다. 다만, 이 합의가 언제 마무리될지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업 합의는 관계 재설정 경로에서 중요한 장애물을 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영국 최대 식품 수출 산업에 큰 호재
마우삼 부다쵸키(Mausam Budhathoki), 스털링대학교 양식학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이번 영국-EU 협정은 스코틀랜드 연어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연어 산업은 스코틀랜드 경제의 핵심 부문이다. 2024년 연어 수출은 8억 4,400만 파운드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 가운데 55%가 프랑스로 수출되었다. 연어는 영국의 최대 식품 수출품으로, 이번 협정에서 제시된 통관 검사 및 서류 간소화 조치는 EU 시장 접근성을 크게 개선할 전망이다.
브렉시트 이후, 이 산업은 수출 지연과 비용 상승, 새로운 규제 장벽으로 인해 8,000만~1억 파운드 규모의 EU 시장 손실을 겪었다. 영국 정부는 이번 협정이 2040년까지 영국 경제에 90억 파운드를 추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연어 양식업 같은 농식품 분야가 있다. 그러나 이번 협정은 유럽연합의 영국 해역 내 어업권을 2038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연어 양식에 필수적인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연어는 바다 우리에서 양식되지만, 깨끗하고 안정적인 해양 환경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조업 증가로 인해 위협받을 수 있다. 이번 협정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향후 영국-EU 간 분쟁이나 정책 변화는 협정의 수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 계획과 투자에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협정이 분명한 무역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은 성장 기회를 환경적·정치적 리스크와 함께 신중히 조율해야 한다.
방위 협정은 안보뿐 아니라 영국 경제에도 활력을 줄 수 있다
코너 오케인(Conor O'Kane), 본머스대학교 경제학 수석 강사
이번 협정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과의 단절을 이어온 영국의 흐름을 되돌리는 첫 걸음으로서, 영국과 유럽연합 간 경제 관계가 더 밀접해질 수 있는 경로의 시작처럼 보인다.
최근 몇 년간 영국 경제는 부진한 성장을 보여왔고, 수출업체들은 미국의 최근 무역 정책으로 인해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영국 기업이 유럽연합 시장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요소로 봐야 한다.
더 빠른 경제 성장은 영국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Rachel Reeves)가 설정한 “재정 규칙”(국가 부채를 줄이고 투자 목적에 한해서만 차입을 허용)을 달성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는 정부 지출의 추가 삭감을 피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영국의 차입 규모는 불과 1년 전 예산책임청)이 전망했던 수준을 넘어선 상태다.
보안과 방위에 대한 이번 협정은 성장 측면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분야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이번 협정은 영국 기업들이 유럽의 재무장을 위한 1,500억 유로(1,260억 파운드) 규모의 공동 조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나토(NATO)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줄이려는 의지를 보이는 상황에서, 유럽연합은 안보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 방위 산업이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실질적인 가능성이 있다.
변화된 세계를 위한 안보 협정
필 톰린슨(Phil Tomlinson), 배스대학교 산업전략학 교수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의 2021년 영국-EU 무역 및 협력 협정에는 방위 분야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세계는 크게 바뀌었다. 미국은 더 이상 유럽의 안보를 보장하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 유럽연합-영국 방위 및 안보 협정은 현 지정학적 상황을 인식하고, 러시아와 기타 외부 위협을 줄이기 위해 유럽 방위 역량에 대규모로 투자하고자 한다.
이미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영국 방위 및 관련 기업들에게 이번 협정은 ‘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라는 1,500억 파운드 규모의 방위 기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냉전 이후 영국과 유럽의 방위 지출은 국내총생산 대비로 크게 감소해왔다.
이번 협정과 방위에 대한 강화된 초점은 영국 내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고 전국 곳곳에 성장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는 BAE 시스템즈, 밥콕과 같은 무기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국가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사이버보안 같은 관련 산업에도 해당된다.
이로 인해 방위 산업과 디지털 기술, 인공지능과 사이버 기술 사이의 시너지와 파급 효과가 여러 산업 전략 우선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렸다.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영국 정부의 새로운 산업 전략이 해당 분야의 기술 인력에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영국산 철강 수출이 유럽연합의 새로운 규정과 관세로부터 보호받게 되었다는 소식도 환영할 만하다. 영국 철강 산업은 순배출 제로(Net Zero)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도전과 포트 탤벗(Port Talbo, 영국 웨일스 남부에 위치한 공업 도시), 스컨소프(Scunthorpe, 영국 잉글랜드 링컨셔 주의 북부에 위치한 산업 도시)의 위기로 인해 불확실한 미래를 안고 있다. 그러나 철강은 영국 인프라와 방위 산업에 필수적인 원재료로서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출처] UK and EU sign new trade, fishing and defence deal – what do economists think?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스티븐 바스(Steven Vass)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언론인이자 편집자이며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의 스코틀랜드 및 경제 담당 편집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