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대한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규약 위원회'(UN CESCR, 이하 '사회권위원회')의 제5차 심의를 앞두고 한국 시민사회가 유엔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128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유엔 사회권규약 심의 대응을 위한 한국시민사회모임'은 6월 30일, 의견서 제출 사실을 밝히면서 "윤석열 정부 이후 한국의 사회권 상황이 전반적으로 악화했다."고 평가했다.
대한민국은 1990년 7월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비준했다. 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은 해당 규약의 조항들을 국내법과 같이 준수하고 이행할 의무를 갖게 된다. 사회권위원회는 당사국들의 규약 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기구로, 대한민국은 규약에 가입한 후 지금까지 4차례 위원회의 심의를 받았고, 올해 지난 2017년에 이어 8년 만에 5차 심의 절차를 밟고 있다.
사회권위원회는 오는 9월 8일부터 10월 3일까지 진행되는 제78차 회기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2023년 12월 제출한 국가보고서와 한국 시민사회가 제출한 의견서를 검토해 사전 심의를 진행하고 '쟁점 목록'을 채택해 당사국에 송부한다. 이후에는 쟁점 목록에 대한 당사국의 추가 답변서와 시민사회 보고서 제출이 이어지고 본 심의 전 시민사회 의견 청취를 거쳐 위원회의 본 심의가 이루어진다.
이에 단체들은 사회권위원회가 '쟁점 목록'에 반영해 한국 정부에 질의하기를 바라는 60개의 핵심 의제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입장과 질문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다.
UN CESCR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의견서는 "지난 4차 심의에서 사회권위원회가 제시한 권고사항의 상당수가 충분히 이행되지 않았으며, 윤석열 정부 이후 한국의 사회권 상황은 전반적으로 악화했고, 이는 비상계엄 선포라는 전례 없는 사태로 정점에 달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행위들이 사회권규약 제4조상 '권리 제한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전까지 "안티페미니즘, 외국인 혐오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불관용의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사회권규약이 보장하는 권리의 실질적 향유를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도 평가했다. 또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수립 과정에서의 시민사회 배제 △부자감세와 긴축재정으로 인한 복지예산 축소와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국제인권기준을 부인하는 인권위원의 임명으로 인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 훼손 문제도 짚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아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부재한 상황"이라는 점도 강조됐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지난 2009년부터 수차례 한국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의견서는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 해소되지 않았으며, 이주민, 장애인, 홈리스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가 사회권 침해로 이어지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성평등 의제로는 △여성가족부 무력화 △비동의 강간죄 도입 철회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인한 여성 노동자 차별 △OECD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격차(29.3%) 등의 문제를 꼽았다.
노동권에 대해서는 △장애인 공공일자리 폐지 △비정규직 고용불안 △특수고용 노동자 권리 보호 부재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근로기준법 적용 사각지대 △최저임금 차별 적용 △OECD 1위 산재사망률 △파업권과 노조할 권리 제약 등을 지적했다.
기후재난으로 인한 취약계층의 인권 문제와 함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환 과정에서 발전 노동자들의 겪게 될 고용불안에 대한 정부의 책임도 환기됐다.
단체들은 이외에도 '사회보장', '가족과 아동', '주거권'과 '건강권', '교육권'과 '문화권'에 관련한 의제들을 포함해 "제4차 심의 이후 악화한 (한국사회의) 사회권 상황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함께, 각 조항별 이행 방안을 제시했다"면서 "사회권위원회가 제78차 회의에서 이 핵심 쟁점들을 쟁점목록에 포함해 한국 정부의 규약 이행 상황을 면밀하고 체계적으로 검토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한 "위원회의 엄정한 심의와 권고가 한국 정부로 하여금 사회권규약 당사국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도록 견인하고, 모든 사람의 존엄성과 기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실효적이고 구속력 있는 조치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의견서의 전문은 이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지난 6월 17일에는 시민단체 '손잡고'와 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가 유엔 사회권위원회에 제출한 국가보고서가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고 기재하는 등, "노조법 2・3조 개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노동권을 탄압해 온 윤석열 정부 시기 한국사회의 현실을 은폐하는 거짓"된 내용을 담고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 윤 정부가 제출한 국가보고서에 대한 노동계의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전달하고, 국회와 이재명 정부가 이를 전면 재검토해 유엔에 수정된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