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병원에 내건 파업 현수막, "아플 때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를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만들겠습니다". 참세상
“환자, 보호자 여러분, 아플 때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를,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만들겠습니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무기한 파업을 예고했다. 병원 곳곳에는 파업의 배경과 주된 요구들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병원을 오가는 시민들 중 여럿은 현수막 문장들 마디마디에 눈길을 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이하 ‘서울대병원분회’)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시계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병원이 공공병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제시한 요구들을 병원 측이 끝내 수용하지 않는다면 오는 24일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7일 1차 경고 파업에도 불구하고, 병원 측이 현장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에 대해 제대로 된 수용안을 제시하지 않고, 교섭에도 성실히 임하고 있지 않아 더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서울대병원분회와 병원 경영진은 지난 6월 25일부터 이날까지 16차례의 단체교섭과 49차례의 실무교섭을 진행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병원 현장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 사항은 △환자 안전과 직결된 필수 인력 충원 △72단계 호봉제 등 불합리한 임금체계 개편 △공공병원 역할 강화와 새로운 총괄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국립대병원 주무부처의 보건복지부 이관 동참 등이다.
서울대병원분회를 비롯한 의료연대본부 소속 국립대병원 4곳(강원대병원, 경북대병원, 서울대병원, 충북대병원)의 현장 노동자들은 이같은 사업장별 요구와 함께, 개별 병원의 인력 및 임금구조를 통제하고 있는 정부의 총인건비 제도 개선 등 대정부 요구를 걸고 지난 17일 1차 공동 파업에 나섰지만, 이후에도 각 병원들과 정부에서는 병원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해 이렇다 할 진전된 수용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의 경우 “노조의 교섭 요구에 대해 (파업 선포) 기자회견 중 공문을 보내 파업 후 만나자는 무책임한 답변을” 전하기도 했다.
이에 조합원 규모가 3,500여 명에 달하는 서울대병원분회가 24일부터 전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다고 먼저 선언했고, 의료연대본부 소속 타 국립대병원 현장 노동자들도 같은 날부터 2차 파업에 함께 돌입할 계획이다. 의료연대본부 소속 4개 국립대병원 노동조합의 조합원 규모는 8,600여 명에 이른다.
파업 취지를 설명하는 박나래 서울대병원분회장. 참세상
박나래 서울대병원분회장은 이날 무기한 파업 선포 기자회견에서 지난 2015년 “일방적·불법적 방법”으로 개악된 “72계단의 호봉테이블”은 “남을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승진 구조의 굴레에 빠지게 만들어, 노동자들의 사기와 노동조건을 저하시키고 그 결과 수많은 인력들이 유출되었다”면서 “서울대병원을 좋게 만들고 (환자들에게)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인력도 충원하고 경력 인력을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만드는” 노동조건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짚었다.
박 분회장은 또한 “우리는 이런 현장문제를 교섭을 통해 노동조합과 논의하라고 사측에 요구”했으나 김영태 병원장 등 병원 경영진은 “경영권, 인사권”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해태하고, “교섭을 요청했더니, 교섭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쟁의권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의 선전물을 제거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고 분노했다.
또한 의료 공공성을 담보하는 새로운 의료 총괄 체계 구축을 위해 국립대병원 주무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하자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듭 반대하고 있는 병원장의 입장을 지적하면서 “이 병원은 김영태 병원장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고, 공공의 것”이라 환기하고, “국가의 정책이 공공성을 지키고 의료 총괄 체계로 많은 시민들이, 국민들이 누구나 아프면 건강할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이것을 가로막는 서울대병원장은 필요 없다”, “말도 안되는 교수들의 논리에 눈치 보며 서울대병원의 공공성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우리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9월 24일, 2차 전면 무기한 파업을 통해 서울대병원을 지킬 것”이라고 힘 주어 이야기했다.
교섭 과정과 파업 배경을 설명하는 권지은 서울대병원분회 교섭단장. 참세상
권지은 서울대병원분회 교섭단장은 노조는 “지난 5월 말 병원에 교섭을 요청했고, 단체협약에 명시된 ‘5일 이내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신속교섭 의무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이를 지키지 않았으며, 조합원들이 투쟁으로 교섭을 촉구한 끝에 한 달이 지나서야 1차 교섭이 열렸다”고 환기했다. 이후 노동조합은 어렵게 병원 측과 “지난 3개월여 동안 16차례의 단체교섭과 49차례의 실무교섭을 이어왔으나, 교섭에 성실히 임하겠다던 병원은 파업 직전 마지막 실무교섭마저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권 교섭단장은 또한 “노동조합은 공공병원 지원, 중증도 연계 인력 충원, 임금체계 개편을 요구”하고 있으나 “병원은 이들 핵심 요구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특히 무너지는 공공병원을 바로 세우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국립대병원 주무부처의) 복지부 이관 정책에 대해서도 ‘주 의료진 반대’를 이유로 거부하고, “국가 중앙병원”이라는 간판은 놓치기 싫다면서, 어린이 환자 무상의료, 공공병상 187병상 원상회복 등 의료공공성 강화 요구에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서 “간호사 1명이 환자 10명 이상을 담당하고, 휴가와 휴식조차 보장되지 않으며, 위험·야간 업무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인력 부족 문제와, “장기근속자의 임금 수준이 국립대병원 중 최하위권으로 추락”했고 “결국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임금인상이 되는 구조로 만들어진 임금체계” 등 열악한 노동조건의 문제를 짚고는, 병원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어야 환자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권지은 단장은 “노동조합은 파업 전까지 끊임없이 교섭으로 해결하려 노력했으나, 병원의 불성실한 태도는 실망만 안겨주었다”면서 “결국 오늘 우리는 파업을 결단”해, “언제나 그랬듯,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내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서울대병원 전면 무기한 파업 선포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박경득 의료연대본부장은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서울대병원이 공공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복지부로 이관해 국립대병원이 지역과 공공의료의 총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어린이 환자가 돈 때문에 진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무상의료 시범사업을 요구하며, 안 그래도 입원과 수술이 어려운 이 서울대병원에서 187개나 병상을 축소한 문제를 지적하고 축소병상을 원상회복하는 한편, 중증도 상향에 따른 인력 충원으로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의료공공성 요구는 노동조합 설립 이후 처음부터 지금까지 38년간 이루어져 온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전통”이라고 환기했다.
박 본부장은 “72계단 호봉 체계”등 저임금 구조를 바꾸자는 노동자들의 요구도 “단순히 임금을 더 받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조기승진 등으로 호봉을 높이려면 “병원이 시키는 대로 목소리 내지 말고 쥐 죽어 살아라”는 병원의 억압에 저항하려는 것이라 짚고는, 노동자들이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필요한 사회적 실천에 나설 권리를 담보하기 위해서도 임금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경득 본부장은 마지막으로 이같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에 맞서 “이제 병원 노동자들이 파업권으로 모두의 건강권을 지키려 한다”, “국립대병원이 제 역할을 해야 공공의료가 살고, 공공의료가 살아야 서울대병원 노동조합과 의료연대본부의 투쟁이 승리해야 모두가 살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이날 기자회견 이후에도 “파업에 돌입하기 전까지 병원 측과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교섭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다. “그러나 김영태 병원장이 불통 행보를 이어가며 노동조합의 정당하고 절실한 요구를 계속 거부한다면 24일 전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울대병원 사측은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며, “정부 당국은 서울대병원 파업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어 누구나 어디서나 적절하고 안정적인 의료를 누릴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