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오요안나 씨의 어머니가 23일째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MBC에서 비정규직 기상캐스터로 일을 하던 고 오요안나 씨는 지난해 9월 15일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죽음 이후 1년, 유족과 시민사회는 고인의 죽음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를 차별하는 방송 현장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사회적 참사’라고 짚고, 이에 대한 ‘MBC의 진심어린 공식 사과와 함께 비정규직 기상캐스터의 정규직화 등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해왔으나, MBC 경영진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고인의 어머니 장연미 씨는 이달 8일부터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앞 천막에 자리한 고인의 분향소를 지키며 힘겹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고 오요안나님 문제 해결 촉구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시민사회단체들은 장연미 씨의 단식이 23일 차를 맞은 9월 30일 오전 11시, 고인의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는 고 오요안나 비정규직 캐스터의 죽음에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84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주최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의 진재연 집행위원장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고인의 죽음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에 함께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한 끝에, 고용노동부가 MBC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2025년 5월 19일 발표한 결과는 “직장 내 괴롭힘은 있었는데, 고 오요안나 씨는 MBC 노동자가 아니라는 모순”된 내용이었다.
이후 유가족은 서울고용노동청과 국정기획위원회 앞 등에서 특별근로감독의 결과를 규탄하고, 고인이 MBC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였음을 밝히는 한편, △ MBC의 공식적인 사과 △ 비정규직 기상캐스터의 정규직화 △ MBC 내 비정규직 전수조사 등을 요구해왔다.
이후 7월 30일과 8월 22일 MBC 안형준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두 차례 교섭이 있었으나, “기상캐스터 정규직화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그 어떤 요구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했고, 결국 8일 고인의 어머니 장연미 씨가 단식에 돌입하게 됐다.
왼쪽 부터,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총괄디렉터, 유태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 참세상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MBC 경영진이 “방송계를 떠받치고 있는 노동자들을 프리랜서라고” 일컬으며 그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와 같은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한 그 무덤 위에서 막대한 이윤을 거두고 있다”고 지적하며, “MBC는 본인들 앞마당에서 그 노동자의 어머니가 이렇게 쓰러져 가는 모습을 계속해서 외면하겠는가” 일갈했다.
이서영 기획국장은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면서도, 노동자는 아니라는 윤석열 정권 하 고용노동부의 판단을 이재명 정부도 유지할 것인가” 묻고는, 이재명 정부에게도 “MBC 사측이 교섭에 성실히 나설 것을 지시하고 더 이상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산재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설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의료인으로서 고 고요안나 어머니의 싸움이 모두의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지금도 저 방송국 건물 안에서, 그리고 방송 현장에서 사측의 프리랜서 취급 때문에 반복되고 있을 괴롭힘과 고통을 끝내자는 싸움인 것”이라며 “의료인들도 이 생명과 존엄을 위한 싸움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MBC와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대화에 나설 때까지 방송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쓰러지지 않는 그날까지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이후’ 총괄디렉터 정윤희 작가는 “불과 몇 달 전까지 언론과 문화예술 등에 대한 전방위적인 표현의 자유를 탄압해 온 입틀막 정권에 의해, 소위 ‘바이든 날리면’ 사건으로 시달렸던 MBC를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MBC의 묻는다”면서 “표현의 자유가 왜 중요한가? 사람이 생각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일하며 살아갈 권리를 누리는 것은 MBC 간부와 정규직에게만 있는가” 일갈했다.
그러면서 “소위 빛의 광장에서 시민들이 지지를 받아서 존립할 수 있었던 MBC가 이토록 (고 오요안나 님의 죽음에 대한) 문제 해결을 파행적이고도 지지부진하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뿐”이라며 “MBC 사측은 당장 다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사라지도록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하라” 소리 높였다.
또한 “이재명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면서 “청년 노동자에게 미래를 꿈꾸라고 하면서 산업 구조적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을 양산하는 문제를 방치하고 어떻게 K컬처 300조 시대를 연단 말인가” 짚고는, “정부와 국회는 이 사건을 제대로 진상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하도록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태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은 “고인과 같은 기상캐스터들은 MBC의 정규직 근로자들과 함께 매일 같이 뉴스를 만들어내는 MBC 근로자들의 동료들이었다”면서 “고인은 방송 3시간 전까지 고정적으로 출근했고, 연휴에도 회사가 정해놓은 휴일과 근무일을 따르면서 근무했으며, 고인이 직접 작성한 원고는 MBC의 정규직 직원들의 확인을 받아야 했고 MBC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서 수정되었다”고 환기하고는, “고 오요안나나 기상캐스터는 MBC의 근로자였다”고 짚었다.
유태영 변호사는 “법원도 방송 제작이 독립 위탁이 가능한 업무가 아니라 공동으로 수행한 결과라 보고, MBC의 프리랜서 PD, 프리랜서 아나운서, 프리랜서 방송 작가가 MBC의 근로자라고 이미 판단했다”면서 “그럼에도 MBC를 비롯한 방송국들은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를 비롯한 많은 방송 노동자들을 프리랜서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법적인 책임을 회피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소위 프리랜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산재를 당해도 해고를 당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방송국들은 이제라도 무늬만 프리랜서인 문제를 바로잡고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활동가 이용관 씨. 참세상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이자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용관 씨는 “제 아들 이한빛 PD가 CJ ENM, tvN 방송국에서 조연출로 일하면서, 자신은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9년이 되었다”면서 “그러나 이한빛 PD가 그렇게 개선을 요구하고 싸웠던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은 조금도 변화가 없다”고 참담한 마음을 전했다. 이용관 씨는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이한빛 PD가 죽었을 때와 똑같이 방송과 언론들은 우리가 이렇게 기자회견을 해도 나오지도 않고 보도도 하지 않는다”면서 “자기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카르텔 형성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나 이용관 씨는 “오늘 분노와 규탄보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MBC 경영진에게 호소드리려고 나왔다”면서 “우선 오요안나 어머님을 살려야 한다”, “사회적 참사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살아 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라, 오로지 죽은 자식의 명예 회복과 다시는 일터에서 자식과 같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저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빛의 혁명 때 MBC가 공정방송의 모범을 보여주었듯, 가장 가까이에 있는 MBC의 노동자가 존중받고 차별 없는 안정적인 일터를 만들어 새로운 노동문화의 모범이 되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면서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유가족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MBC 경영진이 유가족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했다.
왼쪽 부터, 교회개혁실천연대 박득훈 목사,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원경스님, 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JPIC분과 위원장 여호수아 수녀. 참세상
종교계에서도 연대에 나섰다.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활동하는 박득훈 목사는 “기득권층과 자본 편에 선 고용노동부와 MBC가 악과 불의를 행하고 있다고 믿는다”면서 고 오요안나 씨를 “존중해야 할 소중한 인간으로도 노동자로도” 여기지 않고,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 그리고 경제적 이익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취급하고 있는 고용노동부과 MBC 경영진을 규탄했다. 박득훈 목사는 “그러고도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고용노동부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고도 한국 사회 공익과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하는 공영방송이나 주장할 수 있는가” 일갈하고는, “아직 늦지 않았다”며 “고 오요안나 님이 MBC 노동자였음을,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단식으로 슬프게 부르짖고 있는 그의 어머님께 그리고 유족에게 사과”하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일에 나서라”라고 촉구했다.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원경스님은 “소위 정론직필을 생명처럼 여기겠다는 MBC”에서 이렇게 고 오요안나 어머님이 단식을 이어가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면서 “ 정론직필은 구성원 노동자의 생명을 하늘처럼 여길 때 빛이 나는 법”이라고 이야기했다. 원경스님은 그러면서 “MBC 사장님, 한 줄기 아지랑이보다 못한 사장 자리에 연연치 말고 오요안나 노동자의 명예를 지켜주시길 바란다”면서 “어머님의 고통과 슬픔에 진심 어린 사죄를 하시고 내부의 야만적인 기상캐스터,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문제를 제발 해결해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한다”고 당부했다.
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JPIC분과 위원장인 여호수아 수녀는 “고 오요안나 님은 단지 개인적인 고통 때문에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구조적 차별과 직장 내 괴롭힘을 견뎌야 했던 불합리한 현실이 그의 생명을 앗아갔다”면서 고인의 죽음 이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과연 공영방송으로서 MBC가 보일 수 있는 태도인가” 지적했다.
여호수아 수녀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그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아야만 또 다른 오요안나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면서 MBC가 거부하고 있는 “기상캐스터의 정규직 전환 요구는 단순히 몇 명의 고용 문제를 넘어서 공영방송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라 짚고는, “오늘 이 자리에 선 저희 여성 수도자들은 유족 곁에 끝까지 함께 머물겠노라 약속 드린다”, “공영방송이 진정으로 공영의 이름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도록 더 많은 시민사회와 함께 연대할 것”이라 이야기했다.
왼쪽 부터, 이상현 녹색당 대표, 노서영 기본소득당 서울시당위원장, 권영국 정의당 대표. 참세상
진보정당들도 함께 MBC와 이재명 정부의 책임 이행을 촉구했다.
이상현 녹색당 대표는 “고인이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어, 기어코 어머니가 곡기를 끊고 단식에 나서야 한다는 이 사실에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면서 “더 미뤄서는 안 된다”, “MBC는 괴롭힘을 조장하고 방치한 것에 대해서 공식 사과하고, 고 요한나 님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전수 조사하고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현실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또한 “무엇보다 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이 방치될 수 있었던 것은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지위 때문이었다”고 지적하고, “비정규직 차별과 직장 내 괴롭힘을 막아내는 근본 대책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일 수밖에 없다”면서 “비정규직 백화점 MBC가 책임 있게 나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힘 주어 말했다.
노서영 기본소득당 서울시당위원장은 “고 오요안나 님이 겪었던 문제는 결코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라며 “아나운서나 기상캐스터로 일하는 여성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 구조 속에서 출산, 육아로 인한 배제, 외모 평가 등 불합리한 처우 시달리기 쉽고, 이러한 상황에서 각자의 입지를 지키기 위한 경쟁과 긴장이 일상화되어 있다보니 프리랜서 노동자들 사이에 건강하지 못한 관계가 형성되고 조직 내 괴롭힘에 더욱 취약한 상태가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고인의 “유족이 요구한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죽음을 멈추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이었다”면서 “이 죽음에 대한 MBC의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강력히 다시 한번 촉구한다”, “프리랜서를 소모품처럼 쓰는 구조, 을길이 싸우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하셨던 어머니 장현미 님의 말씀처럼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는 고통받지 않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권 하에서 MBC가 탄압을 받고 있을 때 함께 손잡고 싸워온 한 시민”으로서 이야기한다며 “우리가 MBC와 함께 싸워왔던 것은 이 사회의 어둠을 밝히고 진실을 추구하는 방송이기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환기했다. 그러면서 “MBC는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하는 오명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그 출발은 단식 23일 차를 맞고 있는 고 오요안나 어머니의 참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단식 투쟁을 마무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재명 정부에게 요구한다”며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MBC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평등을 위해서 정부가 함께 나설 것을 진심으로 촉구한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백화점 MBC는 착취를 멈춰라!". 참세상
이날 기자회견을 공동주최한 84개 시민사회단체는 회견문을 통해 “유족은 제2의 오요안나가 발생해서는 안되기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기상캐스터의 정규직화를 요구했다”면서 “그런데 사측은 정규직화 방식에 대해 논의하고 협상하려 하기보다 아예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며, 죽음의 원인마저 가리려 한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벌써 유족의 단식이 23일째”라며 “20일이 넘어가면 근육과 내장 장기 등이 약해진다”, “명절 전에 해결하려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는 MBC가 고인의 어머니까지 죽음으로 몰아가려는 것인가” 지적하고, “늦었지만 이제라고 MBC는 결자해지의 자세로 고 오요안나의 죽음에 대해 공식으로 사죄하고 고인의 명예 회복과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나서라”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