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컨리프(Philip Cunliffe)의 세계화 이후 국제정치 분석은 토니 블레어 같은 정치 지도자들의 허울뿐인 수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그 결과, 그는 글로벌리즘(globalism)이 실제로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대체할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필립 컨리프(Philip Cunliffe)는 세계화가 ‘국민국가의 정치적 기반’을 말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각국이 자국의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지정학 전략을 추구해 온 현대 유럽 정치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 출처: Prime Minister of Canada
필립 컨리프는 런던대학 유니버시티칼리지(UCL)의 국제관계학 부교수이자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학자이며, 보수 성향의 논평 사이트 UnHerd의 주요 기고자다.
그의 신간 『국익: 세계화 이후의 정치』(The National Interest: Politics After Globalization)에서 그는 글로벌리즘이 국민국가를 텅 빈 껍데기로 만들었고, 주권적 제도들로부터 국내 정당성을 박탈했으며, 서구 민주주의 내에 치명적인 균열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균열은 초국가적 엘리트와 지역 기반 유권자 간의 대립에서 비롯됐다.
컨리프는 이 대표성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정치 지도자들이 '탈세계화(post-global)' 시대를 적극 수용해 '국익(national interest)'을 21세기 민주주의의 통합적 기준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말하는 '국익'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점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그것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지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블레어를 곧이곧대로 믿다
컨리프는 구체적인 개념을 제시하지 않고 모호한 표현만 나열한다. 그는 '국익'을 “어떤 실체가 아니라 정치 행위의 방식이며”, “책임성을 담보하는 수사”이며, “보통 시민들이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정치적 행위성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 말들이 무슨 의미이며, 독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명료성은 컨리프의 강점이 아니다. 그런데도 상황은 여기서 더 복잡해진다. 그는 글로벌리즘을 어디에나,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도 본다.
그는 분리주의 운동이 중앙정부의 권한을 약화하므로 세계화라고 주장하고, 기후변화를 “인류 생존”의 문제로 보는 환경주의 역시 글로벌리즘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좌파 반세계화 운동들조차 “경제 성장을 통한 더 큰 통합”을 주장했기에 글로벌리즘이라고 말한다.
그의 반세계화 집착은 9/11 이후 서방의 전쟁에 대한 해석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을 “민주주의 확산”과 “인권 수호”라는 “이타적(altruistic)” 동기로 추진했다고 믿는 듯하다. 그는 미국 패권이 절정이던 시기에 “전쟁은 인도주의적 미덕의 표시가 되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랬을까? 2016년 칠콧 보고서(Chilcot Inquiry)에 대한 응답에서 토니 블레어는 9/11을 이라크 전쟁 지지의 정당화 근거로 삼았다. 그는 사담 후세인이 화학무기를 보유했고, 유엔 제재를 반복적으로 위반했으며, “공격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재앙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블레어는 당시 이렇게 썼다. “총리로서 내 입장이 되어 보라. 9/11이 일어난 지 불과 1년이 지났다.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첩보가 쌓여 가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격렬한 테러리즘이 대량의 인명 피해를 일으킨 상황이다. 총리로서 나의 일차적 책임은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이라크 인권 실현에 헌신한 지도자의 논리인가? 아니면 후세인을 제거하는 것이 영국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맹신한 지도자의 논리인가? 답은 명확하다. 그러나 외교 정책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컨리프는 서방 지도자들의 인도주의적 수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주권과 국정 운영
컨리프의 주요 비판 대상은 유럽연합(EU)이다. 그는 EU를 단순히 각국의 정치적 자율성을 제한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 단위의 일상 민주정치 자체를 무력화하는 준제국적 조직이라고 본다.
그는 브렉시트를 “국익을 위한 대담한 우선순위의 선언”이라며 칭송한다. 이는 자유주의 기술관료 통치에 대한 반란이었고, 정체성, 주권, 소속이라는 질문을 “영국 정치의 중심부로 다시 불러낸 사건”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질문은 결코 영국 정치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다. 톰 맥태그(Tom McTague)는 『파도 사이에서』(Between the Waves)에서, 1970년대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배경은 철저히 실용적인 계산에 기초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가입을 지지한 정치인 중 프랑스-독일식 연방 유럽에 매료된 낭만주의자는 테드 히스(Ted Heath) 한 명뿐이었다. 해롤드 윌슨(Harold Wilson)과 마거릿 대처 등 나머지는 더 냉정했다.
대처는 EEC가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며, 반소비에트 “자유국가들의 동맹”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후에도 영국 정부는 유럽 통합에 일정 거리를 유지해 왔다. 1980년대 말 대처는 유럽의 “사회주의적 관료주의”에 통합되는 것을 경계했고, 1990년대 후반 고든 브라운은 유로존 가입 조건으로 5가지 경제 시험을 제시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전, 데이비드 캐머런은 EU 입법으로부터 영국만의 예외 조항을 확보하려고 시도했다.
이처럼 영국은 반세기 넘게 컨리프가 말하는 바로 그 ‘신중한 국가 전략’을 실천해 왔다. 그러나 그는 이런 역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생각하기
컨리프는 세계화가 절정이던 시기에도 소국·중견국들이 초국가적 제도를 통해 주권을 행사해 왔다는 사실도 무시한다.
그의 논지는, 세계화가 국가 정체성의 정치적 기반을 말살했고, 그 자리를 “세계 무역, 세계 권리, 세계 [모든 것]”으로 구성된 초국가적 시스템이 대체했다는 데 있다. 정치 엘리트들은 유권자 대중 위에 군림하려 했고, 결국 국민국가의 주권은 “그저 사라졌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소련 붕괴 이후, 유럽 각국은 자국의 정치·지정학적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을 선택했다. 오늘날 노르웨이는 NATO 회원국이지만 EU에는 가입하지 않았고, 아일랜드는 EU 회원이지만 NATO에는 속하지 않는다. 포르투갈은 두 조직 모두에 가입했고, 스위스는 둘 다에 속하지 않는다. 노르웨이와 스위스는 독자 통화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은 유로화를 사용한다.
이런 다양성은 세계화가 컨리프가 주장하듯 절대적인 수준으로 진행됐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권을 일종의 ‘유무’로만 본다. 있거나, 없거나.
그의 세계화 분석은 다른 이들의 저작에서 거의 그대로 빌려온 듯하다. 존 그레이(John Gray)는 1997년 『가짜 여명』(False Dawn)에서 자유주의 이상이 사회를 해친다고 경고했고,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2003년 『세계화와 그 불만』을 출간했다.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2007년 『쇼크 독트린』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공공영역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조목조목 보여줬다.
이 책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 사이의 세계 자본주의 황금기에, 세계화가 얼마나 반민주적인지 경고했다. 이들의 주장은 이후 상식이 되었다.
잉글랜드, 그의 잉글랜드
『국익』에서 컨리프는 반세계화 진영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며, 겨우 밀레니얼 정체성 정치와 리버럴 도덕 과시에 대한 불쾌한 비난을 늘어놓을 뿐이다. 그는 공정무역이나 캠퍼스에서의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포함한 모든 초국가적 연대 표현을 ‘글로벌 워크 바이러스’의 증상으로 간주한다.
그의 주된 주장인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민국가 단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조차도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의 2004년 팸플릿에서 비롯됐다. 스크루턴은 국민국가 바깥으로 관할권이 확장될수록 책임성이 사라진다고 주장했고, EU, UN, 국제인권법을 비판했다.
그가 쓴 문장에서 “국가 정체성”을 “국익”으로 바꾸면, 그대로 컨리프의 논리가 된다. 차이는 스크루턴은 자신이 옹호하는 국가가 ‘잉글랜드’임을 숨기지 않았지만, 컨리프는 그것을 공화주의 정치 이론과 뒤틀린 국제정치 수사로 감추려 한다는 점이다.
그는 영국 내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의 민족주의 성장에는 침묵하거나, 이를 글로벌리즘의 꼭두각시쯤으로 묘사한다. 그는 큰 국가는 강하고, 작은 국가는 약하며, 글로벌 자본에 맞서거나 초국가적 관료의 압력에 저항할 수 없다고 본다.
피상함에 갇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서는 런던 정부가 그 “초국가적 관료”에 해당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영국 정부는 국유산업 매각과 금융화라는 이름으로 세계화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반면, 1999년에 설립된 스코틀랜드·웨일스 의회는 간헐적으로 웨스트민스터의 신자유주의 기조에 저항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중심지로 기능해 왔다.
컨리프가 만약 소국 민족주의를 세계화에 맞선 민주적 대안으로 수용했다면, 그의 주장은 더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브렉시트를 통해 탄생한, 더 강경하고 보수적인 ‘영국 국가’다. 브렉시트가 영국을 약화했고, 스코틀랜드가 EU에 재가입하려 하거나 아일랜드가 통일을 시도한다는 점은 그의 사고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책은 좌우 양 진영에서 호평받았다. 볼프강 스트레크는 이를 “국가 정치의 탁월한 복권”이라며, “신자유주의의 피상성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이민과 다문화주의를 비판해 온 데이비드 굿하트는 이 책이 “국가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중요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둘 다 핵심을 놓쳤다. 국가는 되살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컨리프는 민족주의가 보수주의자뿐 아니라 사회주의자에게도 잠재적인 급진성을 갖는다는 점은 옳게 보았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국익’은, 그것을 어떻게든 정리해 보려고 해도, 다음 두 질문 앞에서 무너진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이익이며, 누구의 이익인가?
[출처] Neoliberal Globalization Never Abolished the Nation-State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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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맥스웰(Jamie Maxwell)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바이스(Vic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해 온 스코틀랜드 출신 언론인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