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색깔정치 언론정치]재벌 시장 숭배 공통 나머지 말의 성찬뿐

이재영/편집위원
'정책으로 본 대선 주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너무 난감한 주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정책 구상을 설명하기보다 립서비스 수준의 '말'을 앞세우기 때문이고, 그나마의 '말'이라는 것도 때와 곳에 따라 바뀌기 십상이니, 도대체 어떤 '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지 헛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대략적인 경향 추정에 그칠 수밖에 없다. 대선 주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정체를 모르는 데,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그들의 말이 무슨 원칙에 입각해 내뱉어 지는 것이 아니라, 득표를 최대화하기 위한 나름의 적당한 조합이라는 지점에까지 이르면 '이념'을 논하기 낯부끄러울 지경이다.

예컨대 보수정당 후보들은 하나 같이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사회정책과 '효율성 우선'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햇볕정책에 대한 약간의 가감일 뿐인 대북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대북정책이야 자본 진출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으니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충돌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정반대되는 정책 수혜층을 겨냥하고 있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어떻게 융화될 수 있을 지는 불가사의하다.

<진보정치>가 지난 두 차례의 특집에서 규명한 바와 같이 양당의 대선 주자들은 모두, 자본의 사유권을 수호하는 '강력한 시장주의자'이다. 재벌 편을 드는 데도 한통속이다.

대기업집단(재벌)의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제도에 대해 노무현은 '한시적 유지', 이인제는 '궁극적 폐지', 이회창은 '단계적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즉, 말하는 관점과 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폐지를 요구하는 전경련의 입장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 사유화에 대해서도 다른 뉘앙스의 말을 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현행 사유화법을 입법한 주역이라는 사실은 애써 잊으려 하는 것 같다.

양당 대선 주자들의 이념이나 정책은 재벌과 우익언론들에 의해 충분히 '검증'된 것이다. 그런데도 재벌언론들은 무슨 대단한 이념 차이라도 있는 양 호들갑을 떠는데, 이것은 대선 주자들이 의도적으로 '오해'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과 정책이 사라진 마당에 빛바랜 이미지만이도 휘둘러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는 푸른색에 노란색을 더한 녹색이라 주장하고, 또 다른 누구는 노란색에 푸른색을 더한 녹색이라 표방하는 것이다.
[83호] 4.15 ~ 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