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경/추진위 집행위원
편집자 주 : 해마다 7월에 있었던 산재추방의 달이 올해부터 4월로 옮겨지면서 노동자건강권 쟁취의 달로 바뀌게 됐다. '산재'는 물론이고 노동자 전체의 건강권을 쟁취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진보정치>는 4월 노동자건강권쟁취투쟁의달사업 공동추진위(추진위)와 함께 산재와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공동기획을 마련했다.
기업 : 우리 사회에서 '사장'이 되는 것 참 쉽다. 사무실을 차리고(기계 몇대 놓고 공장을 차리고), 노동자를 고용한다. 돈이 있으면 임금을 주고, 없으면 안 줄 때도 있다. 일을 하던 노동자가 다치거나, 병이 나면 노동자를 다치도록 한, 병나도록 한 원인이 무엇인지 작업장을 돌아보거나, 생산과정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살필 필요가 없다. 타인을 고용하여, 타인의 생계를 담보로 기업행위를 하면서도 그의 안전,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투자는 기업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낭비'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필요할 때까지 사용하다가 그 힘이 다하면 버려도 되는 '노예'이거나 '기계'이니까.
정부 : '산업안전', '산업보건'이라는 전문적 용어를 써가며 전문가들을 따로 관리하고, 기업의 이익에 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만, 기업의 눈에 나지 않을 만큼만 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해준다. 그런데 그 관리란 것도 노동자가 신체를 절단 당하거나, 병에 걸려 문제가 된 이후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업을 '지도'하는 것이다. 국가는 또한 적극적으로 노동자건강에 관련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노동자와 기업에 유포하는데 이른바 '무재해운동'이란 것이다. 숱하게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 건설현장에 가보라. 무재해 간판을 크게 걸고, 무재해 몇백일째를 날마다 갱신한다. 무재해 깃발이 휘날리고, 노동자들은 무재해 조끼를 입고 벽돌을 나른다.
그런데 이 건설현장에서만 해마다 6백명이 넘는 노동자가 죽는다. 그것도 일을 시작한지 6개월 안에. 일을 하다 죽는 전체노동자의 1/4은 항상 건설노동자로 채워진다. 무재해운동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자면 한마다로 노동자들이 정신을 못 차려서 그런다.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교육을 강화해서 '무재해를 달성'하면 건설회사는 다음 공사수주를 받을 수 있어 좋고, 정부는 정책을 만들 필요가 없으니 편하다.
노동자 : 여전한 장시간노동에 저임금구조에 경쟁과 효율을 신앙 삼아 생존을 위해 버둥대다보면, 건강권이며 인권이 다 무슨 사치란 말인가. 정 힘이 들면 보약 한 첩 먹고, 화학약품에 어지러운 것 같으면 삽겹살에 소주로 씻어내면 된다. 노동자가 사용하는 물질이 어떤 독성이 있는지 '알권리'가 있다든가, 기계를 돌리다 사고가 날 것 같으면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조합원의 노동환경이나, 건강에 신경 쓸 여력도, 능력도 없다. 임투준비도 해야 하고, 다음 위원장선거도 준비해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이 한심한 현실을 어디부터 뜯어고쳐야 할 지 암담해진다. 너무 비관적인가. 현실이 이보다 조금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가.
폐수를 방류한 기업에 대한 사회적 제재는 있어도, 노동자를 죽도록 한 기업주에 대한 압력은 없는 사회에서, 다세대주택이 무너져 '시민'이 죽으면 뉴스의 머릿기사가 되지만, 철도'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죽으면 일간지 사회면에도 안 나오는 현실에서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
노동자와 시민을 철저히 분리해 대접하는 사회와 국가와 언론의 견고한 벽을 깨는 것이 참으로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 벽은 노동자 내부에도 견고하게 버티고 있으니 이를 깨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83호] 4.15 ~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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