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선거에 파묻힌 노동자 투쟁 "그나마 선거 나와야 우리 얘기 할 수 있어"

한통계약직ㆍ시그네틱스 노조의 투쟁과 선거...노동자 문제 전사회적 이슈 만든다

이문영 moon@kdlpnews.org
6월 5일 오후 1시 30분경, 서울시 논현동에 위치한 영풍그룹 장형진 회장 자택 앞. 시그네틱스 노조 조합원들의 영풍 규탄(사진)은 이날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집회’가 아니었다. 엄연한 ‘선거유세’였다. 임영숙 부지회장(금속노조 한국시그네틱스지회)이 서울시의원 선거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3번으로 출마한 상태. 따라서 이날 조합원들은 이문옥 서울시장 후보 선거본부 운동원들인 셈이다. 영풍과의 싸움만으로도 버거울 이들에게 선거? 임은옥 교선부장의 말 속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지난 5월 8일, 영풍이 냈던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서울지방법원이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우리 요구사항을 알리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표현까지 금지됐다. 회사 앞에서는 유인물 배포나 부착, 피켓 게시뿐 아이라 집회라는 형식으로는 노동가요 방송조차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서는 회장 집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이게 선거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다.”

합법적인 투쟁의 길이 막힌 이들에게 선거는 또 다른 투쟁의 방법이다. 관할 경찰서인 강남서 정보과 형사 또한 “선거운동을 빙자한 노동운동인 줄 알지만, 선거는 우리 소관 업무가 아니라 뭐라 판단할 수 없다”며 분위기만 살피는 중이다. 그러나 투쟁의 길을 열었음에도 정작 임영숙 후보는 5월 29일 한강대교 고공농성으로 구속된 상태다.

한강대교 고공농성과 구속은 한국통신계약직노조 노동자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작년 1월과 올 4월 두 차례에 걸쳐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노조의 서울본부 조직국장이었던 윤연섭씨도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출마결심을 굳힌 5월초,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싸움은 막바지에 몰려 있었다.

“파업이 5백일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광화문을 비롯해, 집회가 금지된 곳은 여전히 접근이 어려웠다. 선거유세라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억울함을 알려야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은 같은 달 13일, 노조는 눈물을 흘리며 조건부 해산을 결정했다. 윤 후보는 그래도 출마를 포기하지 않았다. 노조가 해결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을 선거를 통해서라도 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상했지만 과정은 역시 힘들었다. 한국통신을 조금이라도 비방하면 노조 해산시 사측과 작성한 합의안이 파기된다는 조항 때문에, 비정규직의 폐해를 제대로 의제화할 수 없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그러나 끝까지 싸워나갈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선거는 투쟁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투쟁 중인 노동자들을 서울시 광역비례대표 의원 후보(2~4번. 1번은 공공연맹 심재옥 국장)로 ‘만드는 데’ 주요 역할을 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 배기남 사무차장은 “투쟁의 길이 막힌 상태에서 선거를 활용해 사회민주화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닌 전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91호] 6.10 ~ 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