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운동의 전망①] 왜 오키나와에는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

[문화사회 편집자주] <문화사회>에서는 일본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과 반미운동/반기지운동과 환경운동의 결합으로서의 평화운동에 관한 정유진(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교육위원장)씨의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4회에 걸쳐 연재할 생각입니다. 6개월간 오키나와 평화운동가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작성한 이번 글의 연재가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을 살펴보는 것을 넘어 반미/반기지운동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당대비평>에 실렸던 글입니다.

1. '누치도 타카라'(命こそ ) - 생명이야말로 보물!
2. 오키나와에는 왜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

3. 연대
4. 오키나와와 한국의 '전쟁과 평화'
5. 인간의 안전보장과 일상의 저항
6. 군사 기지 건설로 경제 진흥?
7. 소녀와 매춘여성의 인권
8. 고통에 대한 감수성
9.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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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키나와에는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1)

폭력은 새로운 폭력을 승인함과 동시에 폭력의 흔적과 현재의 폭력의 존재를 부인한다. 따라서 평화를 만든다는 것은 수없이 중복된 부인의 구도를 하나하나 주의 깊고 신중히 문제화 해 나아가는 작업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폭력의 흔적은 다시금 편집되며 오늘의 폭력은 현재화될 것이다. 그리고 폭력에 의해 구성된 시간과 공간이 용해될 때, 이 세계는 또 다른 새로운 사회성을 틀림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평화라고 부르자.

- 1999년 여름 토미야마 이치로(富山一郞)2)

1. '누치도 타카라'(命こそ ) - 생명이야말로 보물!

나는 1997년 5월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동아시아·미국 여성 네트워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오키나와에 방문했다. 여기 저기 피어있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과 향기나는 풀들, 지칠 줄 모르는 푸르름, 그리고 그것을 소중하게 가꾸는 사람들의 모습은 에메랄드 빛 산호바다 보다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가슴 뭉클하게 했던 것은 누치도 타카라(생명이야말로 보물)라는 오키나와의 옛말이다. 국가와 민족, 조직과 집단을 유난히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나에게 생명이야말로 보물이라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나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구나... 그 때의 감동과 떨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슬픔과 기쁨이 어우러진 묘한 느낌, 그 충격은 내가 생명과 인권, 평화에 대하여 오랜 시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97년 이후 한국과 오키나와의 교류는 더욱 많아졌고 나는 생명이야말로 보물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는 오키나와 운동가의 평화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었다. 나는 일본과 미국의 패권주의에 고통받아온 그들의 삶과 투쟁을 배우기 위해 지난해 6개월 간 오키나와에 머물면서 그 곳의 평화운동가 28명을 인터뷰했다.3)

나는 그들에게 10개 정도의 질문을 했고 1시간에서 3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인터뷰 대상자의 직업과 경험에 따라 조금씩 다른 질문이 첨가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다. 오키나와에서 "양키 고 홈" 구호가 현재 사용되지 않는 이유와 그 슬로건에 대한 느낌, 1995년 미군의 소녀 성폭행 사건 이후 오키나와 평화운동의 내용의 변화, 소녀 사건을 두고 여성 인권의 문제로 제기하는 그룹에게 미일 안보의 문제를 개인의 인권 문제로 축소시킨다는 비난에 대한 의견, 평화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 자신의 언어로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오키나와 평화운동의 아쉬운 점, 젊은이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의견에 대한 견해와 이유, 평화와 민족주의/국가주의 관계에 대해서 등이 그것이다.

이중 내가 가장 흥미를 갖고 있던 질문은 "양키 고 홈" 슬로건에 대한 의견과 평화를 생각하게 된 계기, 자신의 언어로 평화를 설명하는 부분 등이었다.

나는 오키나와에 유학하기 전에는 그 곳에서도 "양키 고 홈" 구호가 사용되는 줄 알았다. 물론 나도 14년 전 학생운동을 할 때는 "양키 고 홈" 구호를 외쳤지만 1993년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의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이 슬로건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게 되었다. 미군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은 미군이 주둔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전 국민이 직접적인 미군범죄의 피해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그들은 빈곤(class)과 성별(gender) 등의 문제로 인해 이미 고통받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만나면서 미군의 문제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모순 중의 '하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주한미군이 만악(萬惡)의 근원이며 미군만 철수하면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이 해결된다는 식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게 되었고, 그런 맥락에서 사용되는 "양키 고 홈" 구호를 말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미군 문제의 해결이 '제일' 중요하다는 식의 접근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문제 즉 장애인, 여성, 노인, 아동, 매춘 여성, 이주 노동자 등의 문제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는 소위 운동하는 사람들 마음대로 어떤 문제가 1번이고 어떤 문제는 2번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현재 다양한 모순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자기가 당하는 문제가 가장 큰 폭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군철수가 중요한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만이 모든 문제 중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해결되면 다른 문제도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인권은 다수냐 소수냐의 문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과 미국의 연이은 지배와 전쟁 체험, 장기간의 미군 주둔이라는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는 오키나와에 "양키 고 홈" 구호가 없다는 것은 나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2. 오키나와에는 왜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

그들이 말한 첫 번째 이유는 "양키 고 홈" 슬로건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국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군사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군대 자체를 없애는 운동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키나와에서도 1950, 60년대 토지를 빼앗겼을 때 그 구호를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생산과 생활의 터전인 토지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므로 개인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군대가 구조적 폭력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반기지 운동은 단지 기지를 없애기만 하면 되는 운동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바꾸는 운동이기 때문에 "양키 고 홈" 구호는 부적절 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 존중의 입장이다. 양키는 일본인을 가리켜 재프(Jap)라고 부르는 말과 같은 차별어, 타인을 비하시키는 표현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그 사람 나름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사람의 존재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을 준비하는 기지를 반대하는 것이지 미국 사람 개인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미국인과 더불어 사는 것도 좋다고 한다. 어떤 국가와 어떤 민족 이전에 한 사람, 하나의 생명으로 생각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양키라는 말로 집단화시키면 그 속에 있는 개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되므로 구체적 인간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인간의 생명과 영혼, 환경을 파괴하는 군사 기지는 나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지만 상대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상대가 불행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도 연대의 주체가 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상대가 동의할 수 없는 "양키 고 홈"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군대, 나쁜 군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군대 자체가 폭력을 양산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군대의 존재를 문제삼을 수 있는 슬로건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미국에도 훌륭한 문화가 있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미국인 전체를 부정하는 식의 표현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이러한 인식이 심화되면서 "양키 고 홈" 구호는 저절로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했던 평화운동가 니시오 이치로(西尾市郞, 목사)씨는 1999년 11월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 문제 때문에 미국 관리가 현청(縣廳)에 왔을 때, 급하게 집회를 조직하느라 미처 영어 구호를 준비하지 못해 "양키 고 홈"을 외친 적이 있는데 그 때 무척 부끄러웠다고 한다.

오키나와 평화운동가들은 이러한 인식의 배경을 베트남전 반대 투쟁을 미군병사와 함께 했던 경험과 류큐왕국 때부터의 "외부로부터 오는 손님을 기꺼이 환영한다"는 칸카이몽(歡喜門)의 전통, 오키나와 비폭력 평화주의로 설명하였다. 한평반전지주회 회원인 토미야마 마사히로(豊見山 雅裕, 회사원)씨는 미군 중에서도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국제 연대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1995년 미군의 소녀 성폭행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었을 때, "양키 고 홈" 이라는 말과 함께 성조기를 불태우는 사진이 타임지 표지에 실린 적이 있는데 그것은 '오키나와의 마음' 이 아니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당시 오키나와 사람들이 외쳤던 슬로건은 노 모아 베이스, 노 모아 바이얼런스(No more base, No more violence)였는데 오오사카에서 온 사람이 성조기를 태우는 등의 투쟁을 했고 그것이 오키나와의 메시지처럼 보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식의 보도는 미국의 양심적인 사람들과 연대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자제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오키나와 평화운동가와의 인터뷰는 매 순간 나를 복잡한 상념 속에 빠지게 했다. 물론 한국에서는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도 만연해 있지만, 그 반대 급부로 좌우익을 막론하고 국수주의적 민족주의가 강력한 사회적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과 미국인, 미군사주의, 제국주의 개념이 혼재되어 미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심지어 여성학이나 평화학마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라며 배척하는 한국의 민족주의... 특히 "양키 고 홈" 이라는 차별어를 반미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더욱 강조해서 사용하는 한국의 반미 운동을 무거운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2000년 9월 매향리 미군 국제 폭격장 폐쇄를 위한 문화 한마당에 참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매향리 곳곳을 행진하면서 "양키 고 홈, 주한미군 철수"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물론 SOFA 개정, 사격장 폐쇄의 구호도 있었다) 나는 그 때 시위 대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주민들을 보았다.

매향리까지 와서 굳이 주민들도 공감하지 못하는 구호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50년 넘게 폭격 소음에 시달려온 주민들의 고통을 중심으로 생각했다면 아마도 다른 구호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군 철수만이 절대 진리로 각인된 현재의 반미 운동 내에서 주민들과 공감할 수 있는 구호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양키가 미국인 전반을 비하시키는 말인 줄 알지만 인권과 생명보다는 분노와 적개심이 중시되는 운동 문화 속에서는 "양키 고 홈" 깃발을 더욱 높이 치켜올리게 된다. 80년대 학생 운동하면서 자주 사용했던 말 중에 "... 끓어오르는 분노와 불타는 적개심으로" 표현이 있었다. 그 때는 아무런 생각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노로서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적개심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간과하는 함정과 생명을 경시하는 경향을 동반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적은 누구인가? 누구의 입장과 이해(利害)에서 적이 구성되는가? 어떠한 잣대로 적과 아는 구분되는가? 의문이 커진다.

매향리 문화 한마당은 오키나와, 푸에르토리코 등에서도 동시에 개최되는 국제행사였는데 그 날 매향리에서 배포된 순서지에는 "우리 행사에 연대하는 외국 단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지나치게 '우리'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타인(적)'과 '우리'의 가치를 각각 다르게 구성하는 한국 사회의 폭력성이, 50년 넘게 매향리를 폭음 때문에 새조차 날지 못하는 마을로 방치한 것은 아닐까? 북한을 이롭게(?)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한 인간을 30년, 40년씩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현상을 '적개심'만으로 해명할 수는 없다. 인간을 짓밟는 폭력에 눈감고 생명의 고귀함을 망각해온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분노 역시 누군가를 증오하는(타자화하는) 감정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참을 수 없음이어야 한다. "양키 고 홈" 이라는 말은 우리의 인식을 제한시키는 언어이다. 그 언어로는 평화를 구할 수가 없다.

미주>
1) 이 글은 2001년 1월 30, 31일 양일간 가톨릭 대학교 국제학부 주최(후원: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 네트워크, 피스 데포, 겐슈이킨)로 열린 "동북아 평화와 비핵지대를 위한 한일 공동회의"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2) 토미야마 이치로(富山一郞). "평화를 만든다는 것", 『당대비평』, 1999년 여름호, 144쪽
3) 나는 2000년 6월에서 12월까지 오키나와 평화운동가 28명을 인터뷰하였다. 인터뷰를 했던 분들은 20대 2명, 30대 2명, 40대 8명, 50대 10명, 60대 6명으로 여성과 남성 각각 14명이었다. 직업은 회사원, 공무원, 시의원, 목사, 건축가, 가수, 자유기고가, 자영업, 농업, 측량사, 주부, 연구소 직원, 학자 등이었고 직업만큼이나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단체 (여성, 환경, 지역운동 등)도 다양했다.

정유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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