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편집자주] <문화사회>에서는 일본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과 반미운동/반기지운동과 환경운동의 결합으로서의 평화운동에 관한 정유진(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교육위원장)씨의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4회에 걸쳐 연재할 생각입니다. 6개월간 오키나와 평화운동가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작성한 이번 글의 연재가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을 살펴보는 것을 넘어 반미/반기지운동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당대비평>에 실렸던 글입니다.
1. '누치도 타카라'(命こそ ) - 생명이야말로 보물!
2. 오키나와에는 왜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
3. 연대
4. 오키나와와 한국의 '전쟁과 평화'
5. 인간의 안전보장과 일상의 저항
6. 군사 기지 건설로 경제 진흥?
7. 소녀와 매춘여성의 인권
8. 고통에 대한 감수성
9.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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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대
연대는 타인의 존재를 아무런 의심없이, 차별적 시선없이,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대란 인간애를 키워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파멸시키는 군사주의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는 오키나와 평화운동은 연대를 확산할 수 있는 커다란 자원을 갖고 있다. 새로운 기지 건설 예정지로 지목된 나고(名護)시에서는 '나고시장에게 평화의 선물 보내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매일 매일 평화를 상징하는 물건, 예를 들면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주민의 편지와 카드, 평화를 기원하는 종이학, 평화라는 글자를 수놓은 방석 등을 가지고 나고시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나고시장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기지 건설 문제를 고민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지역 활동가들은 말한다. 나는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존중하고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오키나와 운동가들의 인내와 여유에 놀랐다. 기지 건설 반대라는 주민 투표의 결과를 존중하지 않는 나고시장에게 주민들의 안전을 지켜달라고 눈물로써 호소하고 설득하는 모습에서도 감동을 받았다. 끊임없이 더불어 산다는 의식을 견지하는 것은 평화 운동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키나와와 한국의 연대가 왜 중요한가 가끔 자문해 보곤 한다. 두 지역의 연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차별없이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제기하는 것이다. 피해자 증언이 귀중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반세기 넘는 긴 시간동안 미군 기지로 인하여 고통받아온 오키나와와 한국의 민중이 연대한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인권과 평화를 실천하는 소중한 과정이라고 믿는다. 또한 그것은 국가나 군대의 안전보장이 아니라 살아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보장의 의미를 자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군대가 '모든' 인간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 군사기지는 국가 권력과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연대는 세계 민중들에게 더욱 구체적인 설득력을 갖게 된다. 설득력은 평화의 마음을 확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다.
4. 오키나와와 한국의 '전쟁과 평화'
다음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평화를 생각하게 된 계기와 자신의 언어로 평화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 두 가지 질문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화 의식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일년 내내 꽃이 피고 녹음이 가득한 곳에서 누치도 타카라라는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란 무엇일까... 나의 유학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그것을 배워가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했던 오키나와 평화운동가들 중 20대를 제외하고는,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써 오키나와 전투와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경험을 말하였다. 9만 5천명의 군인과 9만 4천명의 민간인 그리고 군부(軍夫) 혹은 종군 '위안부'로서 강제 연행된 한국인 1만명이 희생된 오키나와 전투는 군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민간인이 죽음을 당한 전쟁이었다. 이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군대는 결코 인간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확실히 죽여야만 했던 집단 '자결' 사건을 통해 전쟁의 참혹성을 배웠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은 미국과 영국을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동물' 이라는 의미로 귀축미영(鬼畜米英)이라 불렀고 이를 국민들에게 교육했다. "미군 포로가 되면 여자들은 능욕 당하고 남자들은 사지가 찢겨 죽음을 당한다"고 철저히 주입시켰다. 또한 군인들에게 "살아서 포로가 되어 굴욕을 받지 말라"는 지시를 반복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1945년 4월, 미군에게 포위된 오키나와현 요미탄(讀谷) 촌(村) 치비치리 가마(동굴)에 숨어 있던 주민들 사이에서는 칼과 낫, 끈 등으로 가족끼리 주민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집단 '자결' 사건이 일어났다. 이곳에서만 82명이 희생되었다. 집단 '자결' 사건은 미군이 상륙했던 게라마(慶良間) 제도(諸島)에서도 일어났다. 내가 인터뷰했던 여성 운동가 미나모토 히로미(源 啓美)씨는 당시 게라마 제도에 살았던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들은 전쟁 체험을 말해주었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 '어쩔 수 없이' 살게 되었는데 죽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이 더욱 두려웠던 그 때에는 먼저 죽은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한다.
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에 자신의 목숨을 끊지 못해 살아남은 사람들 중 일부는 지금도 가족을 '죽인' 것이 아니라 내가 가족을 '지켜주었다' 고 생각한다. 반면 그 때의 경험이 상처와 죄의식으로 남아 전쟁에 관해서는 줄곧 침묵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가족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된 것으로 현재 르완다, 동티모르, 코소보 등지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또한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오키나와에서 출격한 미전투기가 베트남 민중을 학살하는 현실을 묵인한다면 결국 오키나와가 그들에게 가해자가 된다는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들은 현재의 기지 반대 운동이 오키나와에서 출동한 미군들이 일으킨 한국전, 베트남전, 걸프전의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비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역으로 나에게 한국인에게 베트남전쟁은 무엇이었나 하는 질문을 던졌고 그것은 오랫동안 나를 우울하게 했다. 월남파병을 "성전만리"라고 말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베트남이 통일되었을 때, 북한도 반드시 그 해 안에 침입한다며 "모든 국민은 군인입니다. 본인도 서울 시민과 함께 죽음을 무릅쓰고 서울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결의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전국적으로 "반공이 아니라 멸공"이라는 이데올로기와 함께 공산권에 대한 적대의식이 강화되었다.4)
오키나와 전투와 베트남 전쟁, 한국 전쟁이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평화를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되었지만 한국은 분단과 외국군의 장기 주둔, 미국에 의지한 군사정권의 지배 등으로 생명과 평화에 대해 생각해볼 인식 전환의 기회를 잃었다. 하나의 적을 상정하고 그 적을 일상 생활의 중심으로, 교육의 중심으로 삼은 것은 왜곡된 민족주의와 집단주의, 전체주의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오키나와에서는 1960년대 이미 사라져버린 "양키 고 홈" 구호가 한국에서는 198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 분신하는' 등의 대가를 치르고서야 제기되었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위의 역사적 맥락과 연관이 깊다. 이 부분은 한국의 평화운동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전쟁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증오와 이분법 등 좋지 않은 것만을 잔재로 남겼을 뿐이다. 전쟁의 경험을 생명을 귀히 여기는 평화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점이다.
내가 인터뷰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오키나와 운동가들이 자신의 언어로 평화를 얘기할 때였다. 이들이 생각하는 평화의 상상력에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인간이 무언가를 스스로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언어에 대한 실천의 가능성과 창조력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의 끈, 사랑과 창조력이 충만한 상태, 마음으로부터 친구가 되는 것, 신과 인간의 조화, 인간에 대한 배려,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생명을 유지하는 것), 타인의 삶의 양식에 대한 인정, 각 개인이 '그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 인정, 자연과 인간의 조화,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을 수 있는 사회 관계 등이었다. 미군에게 성폭행 당한 소녀의 마음이 치유되어 아무런 억압없이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평화라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동아시아 평화, 인권, 환경을 생각하는 보름달 축제 실행위원회 대표인 타카에스 아야노(高江洲 あやの)씨는 평화는 단지 전쟁과 불행이 없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생동감있게 기쁨으로 살 수 있는 축제와 같은 상태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소위 '진보' 운동 집단 내에서는 평화는 힘이 약한 언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투쟁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키나와 운동가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살아 움직이는 과정으로서의 평화, 역동적인 운동으로서의 평화였다.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표현한 이들도 많았다. 문화와 환경, 생명과 인권을 더불어 생각하는 오키나와의 운동은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구호가 사용되는 한국의 운동과 다른 점이 많다. 또한 자연과의 공존을 강조하는 평화 의식, 전쟁은 가장 큰 환경 파괴이며 기지는 만성적 오염원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도 환경 문제를 부차적인 혹은 비정치적인 것으로 여기는 한국의 평화 운동과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미주>
4) "...그리고 공산 침략을 받고 있는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국군을 파병하기도 하였다.", 1999년 3월 1일 발행, 중학교『국사』(하편, 178쪽)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