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이었다는 것이 죄입니까?"

[인터뷰]국가인권위 집단진정인 김학식씨

21년간 주물공장을 운영하다 IMF때 부도를 맞고 막노동을 시작했다는 김학식씨는 공사 도중에 떨어져 다리를 다쳤고 결국 일도 할 수 없게 되어 노숙인이 되어 영등포 일대를 전전했다.

김학식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1종 의료 보험(무기여 의료보험)을 발급 받았지만, 보험증을 들고 찾아간 시립병원에서는 단순한 찜질 치료 처치만 할뿐이었다. 영등포 일대 대부분의 정형외과를 찾아다녔지만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노숙인이 그런 처지입니다. 그러다 최악의 상태가 되면 시립병원에 입원이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이방 저 방을 옮겨다니다 3~4일이면 퇴원 조치를 당합니다. 그럴 거면 왜 1종 보험증을 발급하는 겁니까? 차라리 그냥 길바닥에서 죽으라는 게 더 솔직하지 않나요?"

"노숙인들이 술이나 먹으며 팔자 좋게 일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노숙인들 중에 몸이 성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찬바람 불고 냉기가 서려오면 노숙인들이 견딜 수 있는 방법은 소주 한 잔 먹고 통증을 잊는 것 밖에 없다.

새벽 3~4시에 철도 공안들에게 끌려갔다가 잠 한 숨 못 자고 인력사무소에 가서 어쩌다 일을 얻어도, 밥 한끼 못 먹고 제대로 잠도 못 잔 병든 몸은 금방 표가 나기 마련이어서 몇 시간 후면 쫓겨나기 십상이다.

"노숙인이 자랑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날 때부터 노숙인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도대체 노숙인이 무슨 해를 끼친다는 것입니까? 견디지 못해 술을 먹고 웅크려 있는 것? 일하고자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결국 거리를 헤매는 것? 밥 한끼를 먹기 위해 아침엔 용산을, 점심엔 종로를 저녁엔 영등포를 전전하는 것? 그것이 노숙인이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입니까?"

김씨는 현재 노숙인이 아니다. 노실사(노숙인인권과복지를실천하는사람들)에서 마련해준 공간에 7명의 동료들과 거주하며 무엇이라도 일감을 찾아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노숙인이었다는 딱지는 컴퓨터 기록으로 남아 번번히 "곤란하다"는 답변만 듣고 있다. "그게 너무나 원통합니다" 김씨는 이제 일을 하며 살 준비를 하고 있지만 한때 노숙인 이었다는 과거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노숙인 이었다는 것이 죄입니까? 도대체 무슨 근거로 개인신상정보를 모아놓고 그것도 제대로 된 관리도 없이 누구나 심지어 경비실에서도 컴퓨터 한번 치면 모두 볼 수 있게 방치하는 겁니까? 왜 내가 노숙인 이었다는 이유로 일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까?"

연대하러 온 활동가들과 노점상 진정인 외에 대부분이 몸에 어떤 형식으로든 장애를 가진 수급권자, 노숙인, 산재노동자들이 뙤약볕 아래 집단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시청 앞 광장에서는 마침 잔디에 물 주기가 한창이었다. 그 물줄기를 피해가며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삶에 대한 배려 한줄기를,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일원으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권리'에 대한 인정 한 모금을 그렇게 절실히 요구하고 있었다.

그 한켠에 다리 통증으로 1인시위를 할 수 없어 일행을 바라보고 앉아 한없이 자신의 기구함을 토하던 김씨는 "그나마 빈곤사회연대 분들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거리에서 죽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일행을 따라 '노실사'로 향했다.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은 '온정'이 아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일자리'와 '남겨진 노숙인 동료들이 거리에서 죽지 않을 권리'의 현실화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