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전자에서 22살, 여성 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것

최은미 기륭전자 분회 조합원과의 인터뷰

반가웠다. 익히 보았던 얼굴이었다. “처음 농성 시작할 때는 이렇게 추석날까지 오게 될지 상상도 못했어요. 설령 내년 설날 때까지 가게 되더라도 끝까지 투쟁할거예요” 농성장에서 추석을 맞던 그녀가 카메라를 향해 다소곳이 두 손 모으고 수줍게 얘기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렇게 반가웠던 모양이다.

  지난 추석, 농성장에서 은미씨

구사대의 폭력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1명을 포함하여 현장에서 농성을 벌이던 16명의 기륭전자 조합원이 17일 새벽 전원 경찰에 연행되었다. 연행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비정규직 철폐하러, 동지여 정규직 되러 꼭 돌아오겠습니다”라며 투쟁을 외치던 그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그 자리는 여전히 정규직은 아니다.

“설령 설날까지 가게 되더라도 끝까지 투쟁하겠다”던 그녀가 ‘결국 내년 설날 역시 농성장에서 쇠게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겸연쩍은 생각을 애써 접으며 그녀를 만났다.

“스물 두 살이고 이름은 최은미입니다”

사회생활 어렵다고 들었지만..

‘22살을 꽃다운 나이라고 하던가!’, 스물둘을 지나쳐 이제 막 중반의 턱을 넘고 보니 불과 2,3년 전인 그 때가 ‘꽃다운 시절’이었나 가물가물했다. “아무리 사회생활이란 것이 힘들고 더러운 꼴 많이 본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어요. 저에게는 이곳이 첫 직장인데, 노동조합이 생긴 이후 담장도 바뀌었어요. 원래 저렇게 생기지 않았어요(손가락질 하며). 화단이었고 꼬챙이 몇 개만 여기저기 있었을 뿐이었는데 노조가 생긴 후 안에 들여다보지 말라고 틈틈이 용접질 해놓고 철조망도 쳐 놨어요”

그녀가 첫 직장에서 맛본 ‘그 더러운 꼴’에 대한 경험담을 듣다보니 ‘세상에 꽃다운 시절, 꽃다운 나이라는 것이 있는가’ 싶기도 했다. 그녀는 인터넷 구인광고를 통해 기륭전자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것이 ‘더러운 꼴 NO. 1’이다.

“인터넷에서 구인광고를 보고 기륭전자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기륭전자가 직접 구인광고를 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파견업체인 휴먼닷컴이 구인광고를 낸 것이었어요. 그리고 내가 가서 일할 곳을 알려주고 어디로 가라고 해서 왔어요”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한 때 흥얼거리던 김장훈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유행가, 그런데 그 노래가 희망적이었던가?

  18일 금속노조 결의대회에 참석한 김성만 문화활동가

싹싹하게 굴기

“기륭전자의 생산직 라인에는 90% 이상이 여성이에요. 그것도 4,50대의 여성조합원이고요. 남자들은 주로 수리사, 사무연구직에 있고 정규직이예요”

그 얘기를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얼핏 보기에도 그녀 또래의 여성조합원이 거의 없어보였다. 남성조합원도, 없었다. 작업복도 입지 않은 평상복 차림, 곱게 화장까지 한 그녀에게 “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하고 물었다.

“저보다도 아주머니들이 더 심했어요. 꼭 성희롱적인 것은 아니지만 인격적으로 무시했어요. 관리하는 사람들이 ‘나이도 많은 너희가 이곳 아니면 어딜 가느냐’는 식으로 대했지요. 저는 아직 어리다지만 아주머니들도 관리들에게 잘못 보여 해고될까봐 알아서 싹싹하게 대해야 했어요. 말대답도 못하고, 잡담도 조심하고, 커피도 타다 주고. 관리자들이 권력이 됐어요. 자기 마음에 안들면 문자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되니깐요”

참, 그놈의 커피는 꼭 먹고 살아야 하나!

귀신 잡는 해병대? 사람 잡는 기륭전자!

“광고에는 위성안테나와 관련된 곳이라고만 나와 있었어요. 지금 저는 기륭전자 2층에서 네비게이션 만드는 부서에 있는데 네비게이션 버전 업데이트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일은 어렵지 않은데 매주 해고자가 생겼지요. 특히 제가 들어온 시기가 유난히 심했어요”

올해 2월에 기륭전자에 입사한 그녀는 당시 엘지전자가 평택으로 이사를 가면서 취업을 하려는 이들이 많았을 때라고 회고했다. ‘해고를 위한 해고’라는 얘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듣기도 보기도 했으나 그녀의 이야기는 보다 구체적이었다.

“우리 회사는 정기적 물갈이를 해요. 일종의 긴장감 조성을 하기 위해 해고한다고 보시면 되요. 그것도 휴대폰 문자로 나오지 말라고 통보해요. 거의 매주 잘랐어요(막말로 목을). 월요일에 출근하면 2,3명 정도가 없어요. 그러면 해고된 거였지요. 단지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일종의 ‘군기’ 잡는다는 얘기였다. 아니 사람을 잡는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상투적이지만 ‘해고를 위한 해고’라는 말에 통감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궁금했다. “은미씨도 해고됐나요?”

“저는 아직 해고는 안됐어요. 노조 생기기 전에는 긴장감 조성을 위해 (휴대폰) 문자로 해고 통지하고 했는데 우리가 그것이 싫어 7월 5일 노조 설립했어요. 저는 7월 1일 날 문자로 해고 통지받았는데 7월 4일 날 해고 통지 인정 못 한다고 그냥 회사 나갔더니 운좋게 그날 노조 설립이 되는 시점과 맞물려서 해고 안 됐어요”

미안했는지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밝혔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오히려 질문이 어색해졌다. 그래도 나름대로 조심한다고 한 질문이었다고 자위하면서도 미안했다. 그리고 그녀는 7월 5일 노조가 설립된 이후 한동안 해고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자판기 커피도 150원에서 100원으로 내려주고 화장실도 넓혀 주고 탈의실에 에어컨까지 달아주었다고. 그렇게 7월 한 달은 무사히 지나가는 듯 했다고.

“7월에는 회유책으로 나가더니 7월 말부터 강경책으로 바뀌었어요. 7월 말, 8월 초에 휴먼닷컴 소속 4명의 파견직 노동자들을 ‘1년 계약기간만료’라며 있지도 않은 계약기간 운운하며 해고했어요”

그 이후 “경비아저씨 4명이 전부였는데 젊은이들로 20명 정도 늘리더니 하나엔터테인먼트라는 용역회사 용역반원 40명을 사측이 고용하기 시작”했다.

친절한 은미쒸~


2005년 10월 18일 싸늘한 저녁 공기 깊어지는 가을,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밝은 곳에서 사진 한 장 찍자고 제안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시각보다 많이 어두워져 있었으므로 “이쁘게 찍어주겠다”고 하면서.

카메라 앞에 몇 번 서보았던 경험이 있었는지 제법 연출도 해주었다. 웃어도 주고 비장한 표정도 지어주었다. “너무 아무 말도 안하고 있으니까 사진이 경직됐다”고 그저 한마디 했을 뿐인데 “저희는 너무 억울해요!”라며 비장하게 외치는 그녀와 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아직 온기가 남겨진 그녀의 손을 잡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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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수빈

    지적해주신 부분은 수정했습니다.

  • 이슬이

    기사도 이미지도 참 좋네요. 오랫만에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세월이 하 수상한 가운데 얻은 희망같아 좋습니다. 은미동지, 투쟁!!

  • 참이슬이^^

    (결론부터 말하면) 바로 이런 기사 때문이죠.
    셀 수 없이 많은 기존 언론매체들을 봅니다. 모두 기만과 쓰레기로 도배를 하고들 있죠. 정말이지 지겹고 역겹습니다.
    (기존 언론매체와 구분된) 갈수록 새로와지는 참세상이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이런 류의 기사 부탁드립니다.

  • 동의

    기사의 문체도 너무 정론지 식으로 기사체로 말하지 말고, 색깔을 가지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이런식으로요. 조수빈기자만의 색이 점점 드러나는것 같아서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