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포항 사태 모든 수단 강구' 강경진압 시사

철폐연대,"죽음의 굿판 벌일 것인가"

"포항지역 건설노조의 포스코 건물 불법점거 농성에 대한 오늘 아침 상황점검회의 논의 결과를 말씀드리겠다" 청와대 정태호 대변인의 말이다. '불법점거'라는 말 한마디로도 정부의 입장을 가늠 할 수 있으나, 이어지는 내용에 비하면 이는 약과다.

정태호 대변인은 20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오전에 있었던 상항점검회의 결과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견해를 전했다.

그에 따르면, 오늘 오전에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포항문제와 관련해 △포스코는 노사협상의 직접당사자가 아님 △포항지역 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 건물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점거 △이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 사회질서와 기업경영을 해치는 중대한 일 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당청 손발척척, "단호하게 대처, 모든 수단 강구해야"

이에, "정부는 이번 불법점거 사태에 대하여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며 "특히 폭력행사 및 배후 주동자는 물론 폭력 행위 가담자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고 강도 높은 조치 의지를 밝혔다.

또한 "불법농성을 조기에 해산하기 위해 농성장에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를 제외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까지 언급하는 등 진압수위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청와대는 "불법 농성을 부추기고 장기화시키는 노동 단체의 행위는 더 이상 정당한 노동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또한 "불법행위를 지원하는 어떠한 정당 활동도 책임 있는 정치라고 볼 수 없으므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 현재까지 현장을 방문한 유일한 정당인 민주노동당을 겨냥하듯 발언했다.

같은 날 오전에 있었던 열린우리당 원내대표회의를 생각할 때, 당청 간의 의견일치가 이처럼 잘 이루어지는 사안도 드물다. 그들이 언급한 말들을 보면, △점거 상황이라는 현상에만 주목 △사태의 실질적인 원인제공자인 원청으로서의 포스코 배제 △'불법' 운운 △경찰폭력 백안시하고 노동자의 자위적 폭력만 언급 △사회 질서,국가 경쟁력 등의 추상적 개념 동원 등의 면에서 정확하게 일치한다.

청와대가 더 나간 것이 있다면, 여기에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는 지침과 노동 단체와 정당에 대한 우회적인 탄압까지 더하고 있는 것이다.

철폐연대, "노사관계에 대한 천박한 인식 보여주는 것"

이에 대해 최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철폐연대) 정책부장은 "한마디로 노사관계에 대한 천박한 인식의 총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최하은 정책부장은 "이 투쟁의 의미는 지난 10여 년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며 의미를 설명하고, "임금을 올리라는 것도 아니고 주 5일제로 인해 삭감되는 임금을 보존하라는 소박한 요구인데 그것조차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또한 "더 큰 문제는 현장에서 만연되고 있는 불법적 다단계 하도급으로, 그 구조의 허점을 이용해서 노동자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포스코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 처럼 대응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왜 그래야 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방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 운운, 강제진압은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것

최하은 정책부장은 이에 더해 "정부가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사태를 몰아가고, '폭력성'에 대해 부각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자위적인 수단으로서 일정 정도 이루어지는 노동자들의 폭력만을 언급하고 경찰의 직접적인 폭력에 의해 뇌사상태에 처한 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언급도 않고 있다"며 이는 "의식적으로 이 사실을 배제함으로서 힘의 균형을 그쪽(폭력)으로 쏟아 노조의 투쟁을 무마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가 말하는 해결 방식이 '자진해산' 아니면 '강제진압'을 하겠다는 것인데, 현재 노동자들은 사측에 대한 오랜 분노에 더해 이번 경찰의 진압으로 그것이 크게 촉발된 상태이며, 투쟁의 성과도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자진해산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결국 강제진압을 하겠다는 정부의 해결방식은 죽음의 굿판을 벌이겠다는 얘기밖에 안된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악랄하다"

최하은 정책부장은 특히 '노동운동의 성격이 달라졌다', '노사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현 정권의 주장에 대해 "실제로 만명이 넘는 경찰병력을 투입하고 경찰청장이 직접 진두지위를 하는 현실을 볼 때, 과거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하은 정책부장은 "오히려 과거 정부보다 훨씬 더 악랄하다. 과거 정부는 폭력만을 행사했는데, 이 정부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이데올로기를 조작하는 등 현장을 왜곡시키는 수법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에 "사회적인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이 비정규 노동자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자처했는데, 지금은 실제 이들의 투쟁에 대해서 과거의 어느 정권보다도 폭압적인 방법으로 싹을 자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동당도 관련하여 성명을 내고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 ‘수수방관’ 혹은 ‘무력진압’ 두 가지 방법밖에는 할 줄 모르는 한계와 무능한 정권임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최근 정부의 공권력 투입설을 전해 들었다며 "지난번 농민 사망사건 당시와는 달리 이번에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사실상 강경진압을 지시한 대통령의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밝히고 "경찰청장 옷 벗기듯, 청와대에서 고향 김해로 당장 이사할 각오쯤은 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노당, "대통령 거울보고 반성해라"

민주노동당은 특히, 청와대에서 언급한 '정당'내용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노동운동 현장에서 했다는 연설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응을 대신했다.

1988년 12월 26일 현대중공업 파업현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 여러분의 이번 파업은 법률상 위법이다. 그러나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 있고 돈 많은 몇 사람만을 위한 법은 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울러 “파업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며, 이를 금지한 악법은 따르지 않는 것이 국민의 의무다. 궁극적으로는 노동자 여러분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세우고, 그 정당이 정권을 잡도록 해야 한다”고 1989년 7월 6일 현대중공업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이에 민노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거울 보고, 자신의 일기장 들춰보고, 자신이 지금 얼마나 부끄럽고 참담한 일을 하고 있는지, 반성하시길 바란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