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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지고 너무나 극적인 졸참나무

[강우근의 들꽃이야기](53) - 졸참나무

나뭇가지 끝마다 겨울 동안 싸여 있던 겉껍질을 벗고 새움이 트고 있다. 두툼한 털외투를 여러 겹 겹쳐 입은 것 같은 물푸레나무의 눈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얇은 껍질 한 장 걸치지 않고 겨울을 견뎌낸 작살나무의 작고 가는 눈이 그대로 조금씩 커져가는 걸 보면 슬그머니 마음이 놓이게 된다.


새싹들 색깔은 다 제각각이다. 귀룽나무처럼 처음부터 초록색을 드러내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나무도 있지만 대개는 갈색이나 붉은색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초록색으로 바뀌어간다. 갈색이나 붉은 색 새싹을 보고 ‘봄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봄 단풍 든 나무 가운데 졸참나무 새순은 어미 뱃속에서 나와 꼼실거리는 갓 난 새끼 강아지 같다. 발그레한 잎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이 조그만 새싹은 꽃보다 아름답다. 하지만 꽃보다 아름답던 이 새싹이 눈 깜짝 할 사이 자라나 어느새 초록색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비로소 진짜 졸참나무 꽃이 피어난다. 새싹이 자라나고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은 극적이다.


참나무 꽃은 '꽃이 핀다'는 표현이 어색하다. 참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서 따로 피는데 암꽃은 가지 끝 돌려난 잎들 가운데서 난다. 이걸 본 사람이 드문 것은 암꽃 크기가 너무 작아 눈을 크게 떠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점처럼 박힌 이 암꽃은 도토리가 자라서 모습을 드러낼 쯤에야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수꽃은 가지 끝에 돌려난 잎 아래로 길게 늘어진다. 꼬리처럼 길게 늘어져 달리는 연두색 수꽃은 흔히 알고 있는 꽃 모양이 아니라서 꽃으로 보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고 만다. 이맘 때 숲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꽃놀이를 할 때면 으레 초록색 꽃도 있다고 하면서 참나무 수꽃을 보여 주게 된다. 참나무 수꽃을 보고 아이들은 그걸 꽃으로 보기보다는 '벌레 같다', '지렁이 같다'고 한다.

졸참나무는 잎도 작고 도토리도 작아서 참나무 가운데 '졸병'이라고 '졸참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듯하다. 하지만 졸참나무는 잎이나 도토리는 작아도 나무 크기는 다른 참나무에 견주어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잎이 가장 커서 나무도 클 것 같은 떡갈나무가 나무 크기는 가장 작다. 졸참나무 잎은 낙엽 지는 참나무 가운데 가장 작지만 잎 둘레 톱니가 뾰족한 데다 예각으로 휘어져 있어 아주 야무져 보인다.

졸참나무 도토리를 시골에서는 ‘재롱이, 재로리’라 부르는데, '재롱이'는 낙엽 지는 참나무 열매 가운데 크기는 가장 작아도 껍질이 얇아 가루가 많이 난다. 또 묵으로 만들면 찰기가 많아 부드럽고 그 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물암’이라 불리는 신갈나무, 떡갈나무 도토리나 '상수리', '굴참'으로 불리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도토리는 크기는 커도 '묵을 만들 경우 색깔이 검고 찰기가 적어 부드러운 맛이 전혀 없다'고 한다. (<참나무와 우리 문화>가운데) ‘동갈’이라 불리는 갈참나무 도토리는 졸참나무만큼 크기가 작지만 녹말이 많이 나고 맛이 좋다고 하니 도토리는 작은 것일수록 맛이 좋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졸참나무는 소박하지만 야무지고, 큰나무지만 작은 듯 보여서 위압적이지 않은 나무이다.

진달래꽃이랑 산벚꽃이 진 숲은 또 며칠 사이 색깔이 바뀌었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맞추어 졸참나무 꽃이 피고 지고 숲은 울긋불긋 봄 단풍에서 점점 초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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