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복판 빌딩 앞에 잘생긴 소나무들이 무리지어 자란다. 새로 만들어진 아파트 단지에도 미끈하게 뻗은 소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다. 멋들어진 소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은 이제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소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구불구불한 곡선은, 직선으로 뻗은 현대식 건물의 딱딱하고 날카로운 선들을 부드럽게 풀어 주는 듯했다. 운치 있는 소나무를 보노라면 막힌 속이 탁 트이기도 했다. 우람한 소나무를 옮겨 심는 기술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풍경이 언제부터인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조경용으로 쓰려고 심어서 기른 것 같지 않은 저 많은 소나무들은 대체 어디에서 가져다 심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부터이다. 그런데 "마을숲의 소나무가 조경용으로 파헤쳐진다"는 기사를 읽고 그 의문이 풀렸다.
도시의 조경은 대개 시골 마을을 지키는 마을숲을 파괴시켜 만들어진 것임을 알고부터 초현대식 건물과 가장 한국적인 소나무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조경은 한순간 ‘찬바람을 막아 주던 당당한 소나무들이 이제 수도권 아파트의 정원수가 되어 약물을 매달고 연명하는 가슴 아픈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이라는 문구로 포장된 도시의 조경은 값비싼 상품은 될지언정 환경이나 생태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런 조경은 대대로 가꾸어 온 숲을 파헤쳐 환경을 파괴해서 만든 것이다.
운치 있는 소나무 조경 속에 감추어진 폭력을 보게 되면 아파트 둘레에 볼품없이 심어진 어린 스트로브잣나무가 다시 보이게 된다. 이 어린 스트로브잣나무를 항상 불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낯섦 때문이었을까. 북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소나무라서 그랬을까. 어쩌면 그런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몇 년을 살았는데도 아파트 둘레에 심어 놓은 나무의 절반 이상이 스트로브잣나무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말이다.
스트로브잣나무라는 이름은 학명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다. 소나무 종류 가운데 바늘잎이 5개 뭉쳐난 것을 잣나무로 부른다. 스트로브잣나무는 잣나무보다 바늘잎이 더 가늘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가는잎소나무라 불린다. 스트로브잣나무 옆에서 자라는 섬잣나무나 눈잣나무는 잎의 길이가 스트로브잣나무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소나무나 곰솔은 잎이 2장씩 뭉쳐나고, 리기다소나무나 백송은 3장씩 뭉쳐나는데, 이것으로 잣나무 종류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스트로브잣나무는 미국 북동부 지방과 캐나다가 원산지이다. 처음 도입된 시기가 1920년경이라고 하지만 20년 넘는 스트로브잣나무를 찾기 어려운 것을 보면 조경용으로 많이 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나 보다. 스트로브잣나무는 잣나무처럼 어렸을 때는 그늘을 좋아하지만 크면서 양수로 바뀌어 높이 30미터 지름이 1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나무로 자란다. 자라는 속도는 잣나무보다 빠르고 옮겨 심은 뒤 뿌리내림도 좋다.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공해에도 강해서 도시의 숲을 만드는데 안성맞춤이다. 아파트 둘레의 저 어린 스트로브잣나무가 아파트 재개발 따위로 뽑혀 나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아파트 둘레에 멋진 스트로브잣나무 숲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스트로브잣나무를 찾아보고 그 나이를 알아보는 것은 재미있는 놀이다. 스트로브잣나무는 위로 곧게 뻗은 줄기에서 가지가 층층이 돌려나고, 한 층이 자라는 데 1년이 걸린다. 그것을 세면 나이를 알 수 있다. 아래쪽 줄기에는 가지가 떨어져 나가서 흔적만 남아 있으니까 잘 살펴서 세어야 한다. 거기다 묘목 시기 4년을 더하면 바로 스트로브잣나무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