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 매뉴얼, 신종 노동탄압 비급서로 각광

기아차 타임오프 근태관리 매뉴얼, "노조활동, 경비실에 도장 받아라"

노동조합원이 중고등학생도 아닌데...

노동부가 제작 배포한 ‘타임오프한도 적용 매뉴얼’이 신종 노동탄압 비급서로 각광받고 있다. ‘근로시간 면제자’란 개념이 등장한 타임오프 매뉴얼 내용을 지침서로 받은 기아차 사쪽은 ‘근로시간면제 관련 근태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현장관리자들에게 배포했다. 기아차 근태관리 매뉴얼은 한마디로 노조말살 비급서 완결판 이었다.

  금속노조가 공개한 기아차 근로시간 면제 관련 근태관리 매뉴얼의 조합활동 (사전)신청서. 타임오프가 적용되면 노동조합활동을 하기 위해선 부서장 확인란에 경비실에서 도장까지 받아야 한다.

기아차 근태관리 매뉴얼은 노동조합원을 중고교생 학교생활 관리 수준으로 전락시킬 정도로 노조활동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미 단체협약에 보장을 받은 조합활동도 사전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신청서 양식엔 주임과 과장, 부서장 확인란이 있고 활동 일시와 활동신청 내역을 기재해야 한다. 또 이런 내용을 담아 반장이나 근태담당자에게 사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공장 밖으로 나갈 땐 공장 출입문 경비실을 통해 출문시간과 출문장소를 확인받아 도장을 받도록 했다. 강지현 금속노조 선전홍보실장은 “노조활동가가 중고등학생도 아닌데 조합 활동을 할 때 학생처럼 주임선생님과 교문 경비아저씨에게 도장을 받고 나가라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조합활동 증빙 서류로 회의록 제출 요구

기아차 근태관리 매뉴얼엔 근로시간 면제자란 단어가 등장한다. 근로시간 면제자는 노동부의 타임오프 매뉴얼에 최초 등장한 개념으로, 노동부는 근로시간면제한도 내에서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활동 등 노조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업무와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의 유지․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로 규정했다.

노동부는 근로시간 면제자라 하더라도 파업, 공직선거 출마 등 사업장 내 노사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업무와 무관한 활동은 근로시간면제 대상 업무로 볼 수 없으므로 이러한 활동에 대해서는 유급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문제는 근로시간 면제자 개념이 사실상 사용자 쪽에 노조 전면개입과 근태관리의 칼을 쥐어준 셈이 됐다. 기아차는 7월 1일부터 노사간 단협으로 체결한 조합원 교육시간에 참여한 조합원을 무급처리 한다고 ‘근태관리 매뉴얼’에 담았다. 또 대의원도 활동보고서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 하고 역시 무급처리 된다. 승인을 받지 않고 활동하면 무단이탈이 되고 무계결근이 된다. 그 다음은 징계로 이어진다.

  기아차 근로시간 면제 관련 근태관리 매뉴얼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은 “기아차는 대의원들이 회의 하러갈 때 노무관리부에 사전 승인을 받고 사후엔 회의결과로 회의록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을 근태관리 매뉴얼로 내놓고 있다”며 “노조를 회사 밑 노무부로 직속하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유기 위원장은 “이게 선진화된 노사관계면 그런 노사관계는 때려 치우겠다”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노동부가 뒤에서 조종하자 사업장 마다 편법 합의서가 나온다. 공개합의서와 비공개합의서, 비정상적으로 각종합의서가 있다”고 실태를 공개했다.

노동부 매뉴얼이 모든 노조활동을 지배개입 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 것이다. 유상철 노동인권을 위한 노무사 모임 사무국장은 “노조법엔 근로시간 면제자들의 업무 범위를 정하거나 면제자의 활동을 통보하는 절차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며 “노동부가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자 사용자가 노골적인 부당노동행위를 정당화 하고 있다. 노조활동에 자주성을 준다더니 오히려 노조를 지배하게 해 자주성을 침해 하는 자기모순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강지현 선전홍보실장도 “기아차 사쪽이 전임자 문제만 규정한 타임오프 한도를 가지고 단체협약에 의해 제공해오던 업무용차량과 컴퓨터 등 각종 집기 반납 까지 요구한 것은 이 기회에 노조를 무력화 시키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노동부 매뉴얼에 따르면 단협 해지 효과 볼 수 있어

노동부 매뉴얼은 단순히 지침서를 넘어 사용자들에겐 든든한 힘이 됐다. 보건의료노조나 공공운수노조, 사무금융연맹 산하 사업장에도 7월 1일을 기점으로 단체협약의 내용을 전부 무력화하는 조치 들이 취해지고 있다. 사쪽에서 전임자 업무복귀 명령, 각종 노조활동 시설편의제공이나 기자재 제공 중단 등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종노동탄압 수법이라 불리는 단체협약 해지나 다름없는 조치들이다.

사무금융연맹의 한 사업장에선 사용자 쪽에서 전임자도 없애고, 집기나 노조 사무실까지 빼려고 하고 있다. 정용건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은 “노동부가 사용자에 타임오프라는 칼을 쥐어주고 노조 학살 권한을 줬다. 반드시 피를 부르게 된다”고 개탄했다.

공공기관은 더욱 심각하다. 애초 단협해지가 핵심 이슈였던 공공기관 노조들은 타임오프와 단협해지가 자연스레 어우러져 양날의 칼로 노조무력화 공격을 받고있다.

공공노조 가스공사지부나 사회연대연금지부는 단협을 체결했으나 사용자 쪽에서 단협체결을 번복했다. 타임오프 시행시기와 타임오프 한도를 담으라는 정부의 요구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단협을 체결하지 못하자 단협이 해지됐다.

사회연대연금지부는 3월 15일 단협해지 이후 60여개 조항에서 개악 안을 제시받았다. 조합원 활동시간까지 개악을 요구했다. 지부는 더 이상 노조활동을 못한다는 판단에 7월 1일 부터 전국에서 파업투쟁에 들어갔다.

가스공사지부도 단협이 해지되고나서 기아차 처럼 근로시간 면제 활동에 대한 사전 사후 보고를 시간단위로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준비위 부위원장은 “노조활동을 시간단위로 보고하라는 것은 노조활동 하지 말라는 것으로 노조활동에 개입하겠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국민연금공단은 근무 중 조합활동을 대폭축소하거나 삭제를 요구했다. 조합교육 시간 명시 삭제와 분기당 조합원 교육 삭제도 요구한 상태다. 타임오프한도를 계기로 조합원 교육시간도 모두 인정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매뉴얼이 정부와 사용자에 유리하게 단체교섭 지침서로 악용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전임자 관련 조항 하나로 기존 노조의 모든 권리를 뿌리 뽑겠다는 것을 노동부가 뒤에서 배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 노조의 한 사업장에선 노사 교섭자리에 노동부 직원이 와 있으면서 교섭이 어떻게 진행되고 병원 측이 뭐라 답하는지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매뉴얼대로 안하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유상철 노무사는 “근로감독관들이 각 노동지청에 인사노무 관리자들을 모아 타임오프 적용 매뉴얼 설명하고 특별감독을 나간다며 노사관계에 적극 개입한다”며 “노조법은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인데 타임오프 운영 매뉴얼이나 노동부의 행태는 노동3권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상철 노무사는 또 “노조법엔 노조전임자 임금 조항도 있지만 노조의 운영을 도모하기 위해 사무실을 제공하고 기자재를 제공하는 것은 노조법과 단협에 따라 이뤄진 것인데 이를 봉쇄한다는 것은 기존의 모든 노조 활동을 봉쇄하겠다는 것”이라고 봤다.

7월 1일부터 시행된 타임오프 제도는 결국 극심한 노사갈등과 혼란을 불러왔다. 법률 전문가들조차 매뉴얼을 통해 근로시간 면제 업무 범위를 정하는 것은 법정에서 3-4년간 논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 막 시행한 타임오프를 둘러싸고 노사 간 힘겨루기는 장기화 될 가능성이 크다. 현실에 맞지 않는 데다 곳곳에 암초가 있어 초기에 노와 사 중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가 관건이 되는 상황이다. 타임오프를 넘어선 합의를 해도 부당노동행위라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아 노동조합의 투쟁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