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의당, 사민주의 논쟁 본격화...“사회변혁의 새 패러다임”

노회찬, “엔엘-피디 구도 극복, 사민주의 국가모델로”

25일 국회 의원회관 제1 세미나실에서 열린 ‘진보정의당 정체성 찾기 집담회’는 진보정의당의 당 정체성 확립 논의가 당 내부를 넘어 진보정치 전체에 본격적인 노선 논쟁을 예고하는 자리였다.

이미 2주 전부터 노회찬 공동대표가 당의 유효한 노선으로 사회민주주의를 거론하면서 당내 사민주의 논의 움직임은 가시화 됐지만, 사민주의 모델 선언 자체가 87년 이후 엔엘(NL, 민족해방)과 피디(PD, 민중민주주의) 노선을 기반으로 분별 정립해 온 진보진영과 강력한 역사적 단절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토론에 참가한 주요 토론자들도 87년 이후 노동운동과 진보정치 운동을 주도한 노선들과의 과감한 결별을 적극 주문했다.


노회찬, “2단계 창당, 몸집불리기 식은 안 된다”
“진보라는 단순 규정의 정체성만으로 차별화 불가능”


이날 발제를 맡은 노회찬 정의당 공동대표는 냉정하게 위기의 본질을 평가하고, 위기극복과 제2창당의 차원에서 엔엘-피디 같은 논쟁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며 사민주의 국가모델의 필요성을 적극 제기했다.

노회찬 대표는 “진보정당의 분열과 갈등, 지지율로 위기의 표면적 양상을 설명할 수 있지만, 진보정당이 왜 독자적으로 존재해야하고, 한국정치에서 무엇을 할지 강력한 근거 제시가 쉽지 않다. 계속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하고 나아가기가 어려워졌다”고 위기가 근원적인 데 있음을 제기했다.

노회찬 대표는 “진보정의당의 2단계 창당은 어떤 당을 만들고 누구와 함께 할지가 중요한 대목이지만 단순한 몸집불리기로 진행돼선 안 된다”며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통합한 통합진보당은 선거에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몸집을 불리는데 급급해 어떤 과정과 어떤 내용을 담지할지에 대해 면밀하게 점검이 부족했다. 2단계 창당이 또 다시 당의 위상을 높이고 몸집을 키우는 방식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보정당의 위기를 두고 정체성의 위기와 10년간 세력 갈등과 대립을 통한 통합적 리더쉽 구축이 불가능해 진 세력재편의 위기, 이런 종합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진보정당에 대한 신뢰저하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 세 가지 위기 중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정체성의 위기라고 밝혔다.

노회찬 대표는 “2012년 박근혜의 대선 공약이 2007년 민주당 정동영의 공약보다 진보적이며, 2012년 문재인의 공약이 2007년 민주노동당의 공약에 못지않고, 2010년 노회찬 서울시장후보의 무상보육공약보다 2012년 박근혜의 무상보육공약이 더 진보적인 내용으로 제시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은 진보라는 단순 규정의 정체성만으로 차별화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국가 모델로 사민주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 필요”

노회찬 대표는 “단순히 무상의료, 무상보육 같은 몇 개의 나열식 공약에만 머물러서는 진보정당의 지지기반을 구축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 했다”며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겠다고 하면서 그 사회의 국가모델이 어떤 것이고, 복지와 노동 관련한 총체적 프로그램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더 많은 복지 경쟁과 파편적 복지 정책을 계속 쏟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대학 무상교육을 얘기하면서 다른 무상교육 복지국가의 대학 진학률이 우리 절반 밖에 안 되는 그런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도 없이 반값등록금을 없앤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의문”이라며 “비정규직 관련해서는 완전 철폐만 주장할 것인지, 차별 없는 임금과 조건하에서 이뤄지는 비정규직은 인정될 수는 없는가에 대해서도 정교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하는 상황이 온 게 아닌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노회찬 대표는 이런 진단 속에서 진보정치의 오랜 노선과 정파 담합 구조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민주의 노선을 강조했다.

노회찬 대표는 “엔엘-피디라는 특정 시기 오랜 연고에 바탕을 둔 낡은 정파적 그룹의 담합에 따라 권력과 자본이 배분되는 방식이 오랫동안 우리를 잠식하며 정체성의 위기를 가속했고, 작년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런 배경에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새로운 사회변화와 시대의 진전에 따라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하고 정교한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을 미루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며 “그것이 2단계 창당의 주요한 과정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에 큰 기대는 없지만, 이미 우리사회 전체가 복지국가 진입의 길목에 들어섰다는 판단 아래 어느 때 보다 총체적 국가모델과 복지 프로그램 제출의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노회찬 대표는 이어 “진보정당의 정체성인 노동에 기반 한 대중정당은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한다”면서도 “과거 방식처럼 선언만하고, 실제로는 민주노총에 위임하는 방식이나, 민주노총은 당원이나 당비 부분을 뒷받침하는 대단히 형식적인 노동과 진보정당의 관계는 재평가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동과 진보정치가 만나는 새로운 방식과 다양한 소통구조를 새로 기획해야한다”고 밝혔다.

노회찬 대표는 “정체성 문제를 다시 재정립함에 있어 사민주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엔엘-피디라는 구분법이 통용되는 데서 드러나다시피, 사민주의에 대한 특유의 경계심은 오래된 사민주의와 국가사회주의의 대립관념이 21세기에 와서도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철저히 민주주의에 기반 해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려하는 그것을 사민주의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인다면, 인류의 성과로서 확립된 시스템과 제도로서 사민주의를 활용할 수 있다”며 “그 속에서 한국적 현실에 맞는 새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있어 사민주의를 애써 부정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노회찬 대표는 “사민주의라는 용어와 이데올로기로 모든 것을 대체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종합적 사회변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우리가 지향할 국가모델을 만들어 나가야하는 출발점에서 볼 때 사민주의 문제를 더 적극적인 정치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2단계 창당이 우리의 노선과 사회변혁 프로그램, 우리가 지향할 국가모델, 한국형 사민주의 정립 과정으로 의미를 가질 때 국민의 이해와 신뢰를 모으는데 용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남신, “박원순의 비정규직 해결 방식이 사민주의 프로그램”
“엔엘-피디 논쟁 혁파해야 새로운 정치세력화 가능”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비정규직 노동현장의 사례를 근거로 제시하며 사민주의 깃발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남신 소장은 “학창 시절부터 엔엘-피디 논쟁구도가 가장 경멸했던 것은 사민주의였다”며 “사민주의는 기회주의, 수정주의, 합법주의, 개량주의, 반혁명주의로 정말 나쁜 것으로 인식됐다. 저도 최근 2-3년 전에야 사민주의를 새로 고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남신 소장은 “공당의 대표가 사민주의를 기치로 내세운 것은 의미가 크다”며 “이 집담회가 좁게는 낡은 의미의 진보진영과 넓게는 진보적 자유주의 포함해 합리적 보수까지 치열한 논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반향이 커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남신 소장은 “사민주의의 기본 방향은 진보정치와 민주노조운동이 가고자 했던 사회상을 가장 뚜렷하게 이념적 수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며 “사민주의가 치열한 논란이 있어도 강령수준으로 된다면 새로운 결집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집단은 운동단체처럼 연대수준에서 자위하고 물러나선 안 된다”며 “책임 있는 공당이라면 노동현장 문제들에 해법과 구체적 대안을 현실 정치 프로그램에서 관철 시키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을 해내는 모습이 진보정당에서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이남신 소장은 “더는 기존의 엔엘-피디라는 낡은 구도에 기대할게 없다”며 “엘엘-피디 논쟁구도를 혁파하지 않고선 희망버스에 참여했던 여러 시민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정치 세력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민주의의 여러 쟁점과 사회변화 프로그램을 치열하게 논쟁하고 민주적 방식으로 모아야 새로운 노동정치 지형과 새로운 주체 양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남신 소장은 “지금 비정규직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는 것은 박원순 시장”이라며 “7,500명의 정규직화와 1만 3천명의 민간위탁까지 정규직화 하기 위한 전수 실태조사를 한다. 이런 구체적 해결과제가 진보정치의 지향과 다른가. 이게 사민주의 프로그램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낡은 사회주의나 변혁주의 담론으로 보면 비정규직은 철폐돼야 한다. 비정규직은 개선 대상이 아닌 무조건 일거에 없애야하는 혁명적 수단으로만 가능하다”며 “정치적 해법을 가지고 간다면 대단히 유연하고 낮은 수위의 해법이 가장 절실한 게 비정규직 문제인데 노동에서 가장 철폐담론이 강한 게 비정규 문제다. 이게 진보정치가 사민주의 깃발을 들지 못했던 이유와 일맥상통 한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왜 진보정치가 무기력하게 낡은 질서에 붙잡히고, 왜 노동과 비정규직 문제가 이런 담론에 붙잡혀 있어야 하느냐”며 “사민주의 깃발로 진보정치에 실사구시 중심의 문제의식이 깃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정미, “노동계에 2단계 창당, 확장 세력 있는지 고민”

이정미 당 대변인은 “2단계 창당이 노동계를 중심으로 하기로 했지만 과연 확장시킬 노동세력이 존재하는지 심각한 질문에 빠졌다”며 “새로운 확장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창당을 사고한다면 우리 처지를 극복할 핵심방향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고 당 정체성 확립을 강조했다.

이정미 대변인은 “이제는 어떤 이념과 노선으로 당을 운영할지 답을 만들어 가야한다”며 “당내 사민주의 노선 제기는 타당한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이정미 대변인은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고수한다고 해도 진보정당이 무력혁명으로 국가를 집권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없다”며 “대중적 진보정당은 더 이상 급진적인 이념을 내놓기 어려우며, 지난시기 진보의 가치와 개념이 퇴색하고 대중에게 외면을 받는 조건에서 우리 색깔을 드러내고 새로운 검증을 받는 것도 사민주의의 타당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사민주의 노선 채택에서 고려할 지점으로 “사민당 선택이 반드시 성공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전략수립이 필요하다”며 “운동권 내부의 합의는 중요하게 보지 않지만, 노동세력을 포함해 지지 뒷받침할 핵심 세력을 어떻게 구축 할 것인지 고민해야한다. 기존 민주노총 정파 질서를 어떻게 극복하고, 당이 직접 노동자 조직화에 뛰어들고 세력화하는 방안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은 분단체제에서 이념정당의 발전이 어려운 조건”이라며 “사민주의를 확고히 하려면 10-20년 내다보는 결의와 내적 통일성을 위한 당 내부의 충분한 토론과 내부합의, 이를 이끌 신뢰할 리더쉽이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기빈, “맑스-레닌주의에 기반한 일체의 활동방식 전환해야”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사민주의를 하자는 것은 진보진영 내부적으로는 맑스-레닌주의 변혁전략의 변종인 엔엘-피디를 그만하자는 것”이라며 “세상을 바꾸고 개선하기 위해 맑스-레닌주의에 기반한 일체의 사상과 단절하자는 것이다. 또한 여기엔 고질적인 문제인 정파를 어떻게 극복할거냐의 문제가 강하게 연결돼 있다”고 한국 내 사민주의 노선 전면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홍기빈 소장은 “3년여 전부터 사민주의는 스웨덴 같은 의미로 연결된다”며 “텔레비전에서 스웨덴 관련 프로가 나오면 사람들이 스웨덴에 눈을 떼지 못한다. 스웨덴 모델이 실제 가능한지 폭발적 상상력을 낳고 있다. 국민적 차원에서 스웨덴 담론이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홍기빈 소장은 사민주의 성공가능성을 낙관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양의 사민당 매뉴얼은 별게 없을 것”이라며 “지난 2년간 유럽 사민당의 논쟁은 지리멸렬하고, 제3의 길이 안 된다는 분위기에 올드 좌파들이 또다시 나와 국유화가 답이라고 주장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대혼란 상태에 있다. 우리나라도 똑같이 이 문제에 갇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 사민주의를 해도 경천동지할 새로운 건 아니”라며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지난 10년간 열린우리당(구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극복할지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홍 소장은 또 “무엇보다 활동방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맑스-레닌주의는 단순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념이나 일상 활동, 다른 정치세력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움직이지 못 할 정도의 강력한 영향을 남겼다”며 “사민주의 전환은 깃발만이 아니라 주체 자체가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기빈 소장은 “계급의 적이니 하는 80년대식 사고를 버리고 박근혜도 국민의 한사람이며 동포라는 생각으로 동등하게 가르치고 배울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이렇게 환골탈태를 하려면 지도부와 당 전체가 의사결정 방식을 좀먹는 정파문제 풀어가야 한다. 굉장히 고통스러운 철학이 있어야하지만, 이 방향으로 가는 게 옳고 전 세계적인 방향에서 사실상 유일 출구”라고 밝혔다

박원석 원내대변인은 “민노당 시절 엔엘-피디 노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당내 사민주의 혁신의 깃발은 어렵다”며 “노동중심성도 조직노동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가치로서의 중심성을 더 넓혀야 한다. 세력으로서의 노동중심성 착오가 내부에 심각하게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박원석 원내대변인은 “우리내부엔 오랜 신념과 익숙한 방식, 수많은 인간관계 때문에 이런 것(사민주의)를 선언하고 한 발 내딛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다”며 “그 두려움을 과감히 떨칠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회찬 대표는 토론 마무리 발언을 통해 “이렇게 애매한 상태와 실추된 신뢰 상태에서 더 잘하자는 식으로만 가서는 결과가 뻔하다”며 “그렇게 가면 2016년 직전에 다시 통합진보당과 통합 문제를 또 논의해야 한다. 2017년까지 새누리당이 여당인 상태에서 개혁과 진보진영은 여러 개 당으로 쪼개져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태인데 존재 근거와 지향이 확실하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원심력이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회찬 대표는 “이제는 진보라는 말에 가려 애매하게 존재한 단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며 “조선일보조차도 금융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사설을 쓰고, 복지도 쇼핑이 가능하다시피 마구잡이로 얘기하는 상항에서 진전된 비전을 얘기할 상황이 됐다. 내부적으로는 엔엘-피디를 벗어나야하는데 그냥 벗어나지지 않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어야 벗어날 수 있다”고 사민주의의 길을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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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주의 ,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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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당신들이 사민주의자인걸 알고 있었는데, 당신들 자신만 몰랐나.. ㅋㅋㅋ

  • 보스코프스키

    오타지적

    내부적으로는 다음의 맑스-레진주의 ---> 맑스-레닌주의

    그리고 이런 언어희롱 계속의 이유는 과학이 소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물론 저들이 입에 담은 주의를 한 적도 없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