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와 총파업

[INTERNATIONAL2] 에보 모랄레스 이후 팬데믹 시대의 볼리비아 대중봉기

지난해 11월 10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한 지 9개월이 흘렀다. 그의 사임으로 시작된 볼리비아의 정치적 변화가 9개월째 진행 중이며, 9개월 전 사건에 대한 논평은 유보 중이다.

다른 한편 볼리비아에서도 코로나19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사건이 진행 중이다. 3월 10일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두 명이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은 후, 8월 20일 현재 확진자는 십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4천200명에 이른다. 전 세계 모든 지역과 마찬가지로 볼리비아에서도 5개월 동안 일상적 활동이 유보되고 있다.

그러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물러난 후 정치적 무대에 오른 막간극이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빙자해 다음 무대를 지연시키는 것도, 그것이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지 못해 삶을 멈추게 하는 것도, 볼리비아 민중들은 허락하지 않는다. 팬데믹 속에서 그들의 물리적 집합행동은 방역이라는 기준이 사회적 규범이자 정치적 논리로 전환될 때 무엇을 최우선시할 것인가라는 우리의 기준에 대해 자문하게 만든다.

  8월 14일 카빌도의 모습 [출처: https://www.la-razon.com/nacional/2020/08/14/cabildo-campesino-rechaza-levantar-bloqueos-y-pide-la-renuncia-de-anez/]

에보 모랄레스를 걷어낸 볼리비아 정치

에보 모랄레스는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2월 12일부터 아르헨티나에서 정치적 망명 생활 중이다. 모랄레스의 사임과 함께 ‘사회주의로의 운동’(MAS) 계열의 각료가 모두 물러났고, 사임 직후인 11월 12일 자닌 아녜스 차베스(Jeanine Áñez Chávez)가 임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당시 상원 두 번째 부의장이었던 자닌 아녜스는 대통령, 부통령, 상원의장, 하원의장이 줄줄이 사임하면서 대통령직 승계 서열 1위가 됐다. 대통령직 승계를 위해서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했으나 MAS가 다수를 차지하는 의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MAS는 투표를 거부하고 대통령으로서 자닌 아녜스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를 진행하기로 합의하면서 11월 20일 약 열흘간의 무정부 상황이 끝났고, 자닌 아녜스 임시 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수립됐다.

11월 20일 선거 진행과 관련된 아녜스 과도정부의 입법안을 토대로 여야는 11월 23일 일련의 정치적 합의에 이르렀다. 이제 야당이 된 MAS는 에보 모랄레스의 입후보 금지에 동의했고, 아녜스 정부는 시위 현장에서 공권력 철수, 구금자 석방, 친 모랄레스 인사들을 린치 행위에서 보호한다고 약속했다. 약 한 달 후인 12월 20일 최고선거재판소가 새롭게 구성됐고, 곧이어 대통령 선거일을 5월 4일로 발표했다. 올해 초까지 이어진 일련의 정치적 합의와 계획은 볼리비아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에보 모랄레스의 사임을 퇴진으로 규정할 것인지 쿠데타로 규정할 것인지 판단을 유보하는 사이, 볼리비아를 이분화하는 원주민계 농민 노동자와 유럽계 중상위 계급, 그리고 민족주의에 기반한 발전 프로젝트와 자유주의에 기반한 발전 프로젝트의 대입은 계속됐다. 에보 모랄레스라는 인물은 볼리비아 정치에서 중요한 입지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가 볼리비아 정치의 전부는 아니었다는 반증이었다. 흔히 라틴아메리카 정치는 인물중심의 포퓰리즘 정치라는 인상비평을 받아왔고, 에보 모랄레스가 그 대표적 사례로 회자됐다. 그러나 정작 그가 부재한 볼리비아에서 확인되는 것은 정치적 대립, 투쟁, 대화, 합의, 제도화라는 고유의 정치 메커니즘의 작동이었다.

[출처: https://maps.southfront.org/]

[출처: https://maps.southfront.org/]

코로나 확산이 가져온 과도기의 위기

5월 3일로 대선이 예정된 것이 지난 1월 3일이었다. 지난해 10월 선거에서 에보 모랄레스와 겨뤘던 카를로서 메사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와중에 1월 24일 임시 대통령 자닌 아녜스 역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외에도 에보 모랄레스와 MAS 세력을 밀어내고 권력을 잡은 여권이 대선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2월 3일 총 8명이 후보 등록을 완료했다.

그러나 3월 10일 볼리비아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됐고, 동시에 최고선거재판소는 대선을 2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4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확산한 코로나19로 대선 날짜는 9월 6일로 재차 연기됐고, 지난 7월 16일 다시 한번 10월 18일로 미뤄졌다. 5월부터 하루 확진자 수는 매일 백 명 단위로 증가했고, 6월 말부터는 하루 확진자 수가 천명 단위로 늘었다.

볼리비아 사회는 에보 모랄레스를 몰아낸 지난해 사건에 대한 평가를 대선으로 대체하기로 합의했고,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이행기를 조직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코로나19의 확산은 약해진 정치적 고리를 파고들었다. 에보 모랄레스와 오랜 동맹 관계였지만 작년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편에 섰던 볼리비아노동조합 총연맹(COB)은 선전포고와 같은 방식으로 최고선거재판소에 72시간 내에 9월 6일 대선 일정을 재확인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다시 투표일을 연기한다면 8월 3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9월 6일로 연기할 때와 달리, 10월 18일로의 대선 연기 결정이 정당 간에 협의 없이 발표된 탓이 컸다. 전통적으로 대선일 결정은 의회 몫이었으나, 최고선거재판소는 여전히 MAS가 다수당인 의회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를 결정했다. 이로써 합의에 기반해 인정된 과도정부의 정당성이 다시 논란거리가 됐다. 더구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MAS 측 후보이자 모랄레스 집권 당시 경제부 장관이었던 루이스 아르세(Luis Arce)가 카를로스 메사와 아녜스를 제치고 지지율 1위를 보이고 있었다. 2위와 3위인 카를로스 메사와 자닌 아녜스 후보 간에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득표율 1위와 2위 후보 간 득표 차이가 벌어지 1차 투표에서 루이스 아르세의 당선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부의 일방적인 대선 연기는 코로나19 확산을 빌미로 후보 단일화를 위한 시간벌기용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처와 경제위기가 합쳐지면서 정치적 과도기에 대한 볼리비아 사회의 인내와 신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팬데믹 시대의 총파업

하루 확진자수가 연일 천명 이상을 기록하던 7월 28일, 볼리비아노동조합총연맹과 원주민 농민 단체들의 연합조직(Pacto Unidad)은 집회를 조직했다. 엘알토(EL Alto)에서는 카빌도(cabildo)라고 불리는 주요 사회단체들의 협의체가 총파업과 고속도로 봉쇄를 결정하며 9월 6일 대선 시행을 요구했다. 전국 여러 곳에서 수천 명이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협의체의 결정대로 코차밤바, 라파스, 오루로, 포토시, 산타크루스, 베니 등 전국 각지에서 8월 3일 총파업이 벌어졌다. 정부는 에보 모랄레스가 배후에서 MAS를 조정해 공중보건을 위기에 빠트렸으며, 고속도로를 봉쇄해 의료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져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볼리비아광산노동조합연맹(Federación Sinical de Trabajadores Mineros de Bolivia)까지 가세할 만큼 파업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에보 모랄레스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2003-2005년 대중봉기에서 광업노동자들의 역할을 결정적이었다. 때문에 광산노동자들의 시위참여는 과도정부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대선 연기 반대를 주장하며 시작됐던 총파업은 점차 반정부시위로 요구수준이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 까닭은 대화와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가 존중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행정부 장관인 아르투요 무리요(Arturo Murillo)는 8월 10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총알을 퍼붓는 게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막말로 시위진압을 언급해 분노를 샀다. 8월 1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라파스 사회단체대협의회에서는 자닌 아녜스 임시 대통령의 퇴진과, 대통령직 수행과정에 대한 정보공개가 이루어질 때까지 망명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며 뚜렷한 대립각을 세웠다. 에보 모랄레스의 연임에 대해 볼리비아 사회가 품었던 의구심은 이제 대선을 연기하는 자닌 아녜스 임시 대통령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다.

볼리비아노동조합총연맹 이외에도 사회단체협의회인 카빌도 역시 그러한 의구심을 표출하며 집단행동을 조직해내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는 볼리비아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카빌도는 수백 년 전 식민지 시대 이전 원주민 사회조직과 스페인 전통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2007년 이백만 명의 주민이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대중 집회를 통해 탄생했으며, 엘알토 지역에서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과도기 정당이 그 대표성을 지니기 어려울 때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장이 된다.

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

지난해 11월부터 현재 총파업까지의 일련의 사태는 친 모랄레스 세력과 반 모랄레스 세력 간의 대립을 나타낸다. 그러나 최근 9개월 간의 과도기를 관찰해보면 그 대립의 근원에는 모랄레스라는 인물이 아닌 민주주의의 원리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가 존재한다. 에보 모랄레스는 다수의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한 정치적 무대를 만들어냈으나, 선거라는 제도에 의지하면서 자신이 만들어낸 정치적 무대를 배신했다. 그리고 다수의 직접민주주의를 희망하는 볼리비아 민중들은 이런 모랄레스를 외면했다. 자닌 아녜스 임시 대통령이 용인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선거를 통해 다수의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차단되고 있음을 감지했을 때 볼리비아 사회는 다시 휘몰아쳤다.

볼리비아는 정당정치로 움직이는 국가가 아니다. 이곳의 정치적 동학을 보여주는 장면은 길거리에 운집한 개인과 단체들의 협의체, 카빌도에 있다. 지금 볼리비아의 정치를 포퓰리즘이라고 묘사한다면 그것은 민중의 요구가 투영됐기 때문이지 민중의 의지가 개인에게 투사돼서가 아니다. 그러나 팬데믹 시대 볼리비아의 이러한 정치적 동학은 충분히 작동하기 어렵다. 볼리비아도시교육노동자연맹(CTEUB)과 제조업노동자연맹(CTF)은 방역을 우선시해야 한다면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실제로 물리적인 접촉이 이루어지는 대규모 집회는 바이러스를 확산시킨다. 현재까지 인구 1천만 명의 볼리비아에서 확진자가 십만 명이 발생했으며, 4천 명이 사망했다. 이제 코로나19의 확산 속에서 방역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규범이 민주주의의 원리와 결합할 방식을 찾고 있다. 지금 볼리비아의 총파업은 공중보건의 위기, 정치적 위기, 경제적 위기를 동시에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다. 우리 모두가 곧 마주하게 될 하나의 질문, 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해 볼리비아는 한발 먼저 분투하고 있다.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