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만난 노동전문가는

[1단 기사로 본 세상] 90년대 초 전투적 노조론 해체하고 노사 협조 주장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문재인 정부와 박근혜 정부 사이 간극이 좁혀졌다. 문재인 정부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이 7.7%로 이번 박근혜 정부의 7.4%와 비슷해졌다. MB 정부는 5.2%였다.

2017년 3월 모든 대선 후보가 말했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이렇게 무너져 내렸다.

박근혜 정부는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소득주도성장’론을 꺼내 들고, 최저임금 인상에 나름 역할을 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전제가 곧 최저임금 인상이니까.

최경환 전 부총리 외에도 박근혜 정부엔 KDI 연구원을 지낸 이혜훈 의원도 경제와 복지의 균형에 나름 역할을 했다. 고 노회찬 의원도 재정부의 집요한 반대에도 끈질기게 주장한 끝에 개정에 성공한 이혜훈 의원의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를 베스트 의정활동으로 꼽기도 했다.

[출처: 매경 2021년 4월13일 6면(왼쪽)과 조선일보 4월28일 5면]

대권 주자 주변엔 늘 이런저런 ‘가정교사’가 있다. 지금 대권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근 ‘대권 수업’을 받으려고 처음 만난 사람이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다.(매일경제 4월13일 6면)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지난 4월 11일 정 교수를 낮 12시부터 4시간가량 만났다. 정 교수는 매경 기자와 통화에서 “윤 전 총장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고 했다. 정 교수는 윤 전 총장에게 미리 노동시장 이중 구조에 대한 20쪽 가량의 자료를 미리 줬다. 만나보니 자료에 줄을 치거나 표시를 하는 등 공부를 열심히 해 왔단다. 윤 전 총장은 정 교수와 만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양극화 등에 의견을 구했다.

정 교수는 “윤 전 총장은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간 격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어떻게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가 결혼과 출산을 꿈꾸겠느냐’라고 하더라”고 했다.(조선일보 4월28일 5면)

보수 언론은 윤석열이 대권 수업을 위해 처음 만난 사람이 노동전문가라는 걸 신기해하며 여기저기서 기사를 쏟아냈다.

노동전문가 정승국 교수는 성균관대 법학과를 나와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노총 금속노련에서 정책담당자로,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연구조정실장으로 일했다. 90년대 초 성균관대 박사과정에 다니면서 한국사회연구소 노동연구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90년대 초 노동운동판엔 전노협 안팎에서 ‘전투적 노동운동’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했다. 한겨레신문은 1992년 3월3일자 5면에 “‘전투적 노조론’ 문제제기 확산”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여기저기서 전투적 노조론에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자본과 정권의 집중 탄압을 받던 전노협은 가장 가까운 노동전문 학계로부터도 이런 공격을 받았다.

[출처: 한겨레 1992년 3월3일 5면]

이 한겨레 기사는 ‘사회평론’ 92년 3월호에 실린 당시 정승국 성균관대 박사과정생의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자들의 현실인식 비판’이란 논문을 소개했다. 정 박사는 사회평론에 발표한 논문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 자본과 정권의 폭력 탄압 -> 노동대중의 전투성’이란 전투적 노조관의 ‘도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모든 도그마가 그렇듯 정 박사의 문제제기는 타당하다. 정 박사는 “자본과 정치권력의 공세 속에서 노동자들의 의식은 ‘후퇴와 퇴행의 과정’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당시 대공장 노조에서 민주파 집행부가 가까스로 당선되고, 어용 대의원이 점차 늘어났다. 정 박사는 “일률적 전투적 노조관은 노조역량을 훼손한다”며 “일정한 영역에 있어서 양심적 중소기업가와 ‘협조’하고 독점재벌에 반대하는 노동운동의 조직과 투쟁의 방침이 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문을 발표하고 3년 뒤 정 박사는 대우경제연구소에 입사했다. ‘유연적 생산을 향한 기술과 조직의 변화 : 현대자동차에 관한 사례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였다. 김우중 회장이 대우경제연구소에 운동권 출신을 대거 채용하던 시기였다.

[출처: 한겨레 1995년11월26일 13면]

이후 정 박사는 케인지언의 시선으로 노사 협조주의를 줄곧 설파해왔다. 1997년 2월엔 매일경제와 노동부 산하 노동연구원이 공동주최하고 자동자협회가 후원하는 자동차산업 노사관계 혁신 포럼에 나와 ‘참여 노사관계 확립’에 노력했다. 자본과 권력의 집중 탄압에 노조원이 보수화되는 원인을 분석한 결과, 노사 협조주의와 참여형 노사관계가 필요하다는 이상한 해결책을 펼치면서.

윤석열은 제 몸에 딱 맞는 가정교사를 구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지는 말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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