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 이후의 삶, 공공 씨의 하루

[6.30공동행동 연속기고②]

※ 공공운수노조는 ‘동네방네 공공성, 구석구석 노동권’ 내용을 담은 10대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6.30. 공동행동>을 진행한다. 이번 공동행동은 전국 곳곳에서 선전전-선언-집회-플래시몹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공동행동이 향하는 공공성 강화-노동권 확대의 모습은 무엇일까. 공공성-노동권을 통해 바뀔 세상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고, 이를 위한 노동자들의 실천을 들여다본다.

① <6.30. 공동행동, 이렇게 준비되고 이렇게 열립니다>
② <6.30 이후의 삶 ① : 공공 씨의 하루>
③ <6.30 이후의 삶 ② : 노동 씨의 꿈>
④ <6.30. 공동행동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돌이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공공 씨가 지금의 재생에너지공사에서 일하게 된 것 말이다. 기후위기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2021년을 전후해, 공공 씨가 일하던 발전소도 폐쇄를 앞두고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재생에너지 바람이 일면서 태양열-풍력발전소가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대부분 재벌의 몫이었다.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공정성 담론’도 민영 재생발전소의 등장을 거들었다. 민간과 경쟁하지 않는 공공부문의 독점은 불공정하다는 논리였다.


부작용은 이내 나타났다. 초기 약속과 달리 전기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민간발전사의 담합이었다. 전기가격 제한을 풀어달라는 요구에 정부는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전력공급 중단을 무기로 내세운 자본의 고집 앞에 오래 버티지 못했다. 대규모 정전 사태도 이어졌다. 이윤을 앞세운 민간 발전소는 발전설비를 제한적으로 운영했다. 혹한기를 대비한 제빙장치를 생략하면서, 겨울철엔 종종 발전기가 작동을 멈췄다. 따지고 보면 예상 못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200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서 벌어졌던 사고다.

다시 공공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나뉘어 있는 발전공기업을 하나로 묶어 ‘재생에너지공사’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연구와 투자, 건설과 운영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인적-물적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우후죽순처럼 민영화됐던 민간 재생에너지 회사들은 하나둘씩 다시 공영화했다. 이 과정에서 차별적으로 이뤄지던 에너지 공급도 평등하게 바뀌었다. ‘에너지 기본권’의 실현이었다. 독일의 발전회사 재공영화 조치 등 유럽의 경험이 남긴 교훈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이때까지 생색내기용 정책으로 외면 받던 정부의 ‘재취업 교육’도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기존 석탄화력 공기업의 노동자들은 재생에너지 확대의 훌륭한 재원으로 거듭났다. 과거 ‘대량생산-대량설비’를 요구했던 석탄화력과 달리, 소규모-지역분권적으로 이뤄지는 재생에너지 발전은 그만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다. 이 과정에서 만연했던 발전소 비정규직 문제도 재생에너지공사 직접고용으로 이어졌다. 국가가 책임지는 기후 일자리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공공성이 주목을 받고 대안으로 부상하자, 변화는 우후죽순처럼 함께 일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교통-운수와 의료-돌봄, 그리고 사회보험이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종은 자연스레 대중교통 강화로 이어졌다. 고속철도와 간선-지선철도, 도시철도, 광역-간선-지선-마을버스로 이어지는 촘촘한 대중교통 체계가 승용차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편리하고 저렴한 대중교통은 환영받았다. 주차장-도로 등 승용차 인프라도 축소되며 이들 건설-유지 과정에 나타났던 탄소배출도 줄어들었다. 걷기 좋은 거리는 덤이었다. 공공성이 강화된 대중교통이 상식이 되며,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재정지원과 저소득-취약계층의 대중교통 이용을 보장하는 조치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대중교통망에 적합한 노선 조정을 위해 버스 완전공영화는 필수적이었고, 수익 위주의 민영 도시철도는 다시 공영화됐다.

코로나 19 대유행 이후 부상한 의료-돌봄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도 큰 변화였다. 촘촘하게 구축된 공공의료체계는 아플 때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이윤이 아닌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는 과잉진료도, 과소진료도 사라졌다. 빠르고 믿을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로, 어느 규모의 병원을 가야할지 환자가 고민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연결됐다.

돌봄을 비롯한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이 강화되며, 지역마다 세워진 사회서비스원에서 책임졌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돌봄서비스가 더욱 풍부해지고 안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당연했다. ‘공공성’의 영역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의료-돌봄 체계가 이뤄졌다.

‘죽어도 직장에 나와서 죽는 것이 미덕’이던 시절이 ‘아프면 쉴 권리’로 바뀐 것도 이 즈음이었다. 상병수당제도가 도입되며 생계를 걱정하기에 앞서 몸을 돌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외래진료와 입원을 따지지 않고, 기존 소득의 70% 이상이 보장됐다. 저소득층의 경우 정액 지급으로 제도의 허점이 생기지 않게 했다. 장애연금이 발생하는 18개월까지를 지급기간으로 정해, 촘촘한 사회보장의 전달체계에서 낙오되는 이들이 없도록 설계했다. 또 상병수당제도 시행과 함께 유급병가제도를 근로기준법에 담아 ‘월급 받으면서 아플래, 아니면 그만 두고 상병수당 받을래’라는 빗나간 이분법도 피할 수 있었다. 인력충원으로 아플 때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기초도 튼튼히 했다. 모든 노동자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도 50%까지 끌어올렸다. 사회보험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며 생겨난 변화다.

물론 이런 변화가 단숨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공공서비스를 책임지는 것이 당연했다. 즉 예산이 뒤따르는 문제다. 과거 기재부의 ‘경영효율 중심의 공공기관 운영 체제’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공공기관의 역할을 ‘수익’이 아닌 ‘보편적 공공서비스의 제공’으로 바로잡으며, 에너지와 교통, 의료, 돌봄서비스 전반의 혁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비용을 중심에 둔 공공기관의 ‘경영 평가’를 대신해 ‘공공성 평가’가 이뤄지며, 어느 공공기관이 사회공공성 실현에 적합한 운영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경쟁과 비용의 압박 속에 공공성을 희생해야했던 공공기관들은, 노조와 지역사회의 운영참가와 평가 속에 올바른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공공부문의 민주화나 공공성 강화, 정부의 재정정책이 대체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던 이들은, 이제 공공성 강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발전노동자 김공공 씨는 이제 출근길이 가볍다.

다시 2021년 오늘, ‘동네방네 공공성, 구석구석 노동권’을 위한 6.30. 공동행동에 나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그리는 사회공공성의 미래는 이러하다. 허황되고 먼 이야기일까. 투쟁이 켜켜이 쌓이고, 실천이 하나둘 일어나고, 연대가 곳곳에서 벌어질 때, 아주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다. 코로나 19 이후, 이미 공공성의 가치와 국가책임의 필요는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승철(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