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호] 만도노동조합의 역사(5)

만도노동조합의 역사(5)

91년 5월의 함성, "창수를 살려내라,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
91단체협약 투쟁으로 체결권은 사수했으나 김희준, 황성근, 김창한 3명의 동지는 감옥에 갇혀야만했다. 91년 3월 15일 단체협약이 마무리된 후 3월 27일 임투 소위원회가 소집되어 곧바로 임금인상 투쟁을 준비한다. 한편 사측은 임금인상 투쟁을 준비하는 노동조합과 현장을 교란할 목적으로 소자보 투쟁을 주도한 정도채 동지와 구속된 동지들에 대한 징계를 추진 임투 마무리까지 끌고 간다.
91년 5월은 열사의 달이었다. 구속중이던 한진중공업 박창수위원장의 의문사로 시신이 안치된 안양은 매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가두투쟁의 열기로 가득했다.
오후 5시반 퇴근 후 가두투쟁, 전날 최루탄을 뒤집어쓴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면 여기저기서 '애취~ 애취~' 재채기와 콧물 범벅이 되곤 했다.
이러한 가두투쟁의 열기는 고스란히 공장으로 옮겨져 '노동운동 탄압 분쇄와 생존권 확보를 위한 출정식'으로 나타난다. 사내 집회에서는 노동자 생존권을 압살하는 임금가이드라인 철폐를 외칠뿐만 아니라 "살인정권, 폭력정권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를 주요 구호로 외치게 된다.
'낮에는 임금인상투쟁, 밤에는 열사를 살려내라'는 노동자들의 분노는 박창수열사 장례가 치러질 때까지 한달 넘게 이어진다.

좌절된 전 공장 집결투쟁, 분신과 부결로 나타나고 91 임금인상투쟁에서 조합원들의 투쟁 열기는 높았다. 이런 투쟁 열기는 평택, 문막, 경주지부가 안양공장으로 집결하는 총회 투쟁 준비로 한층 더 고조된다.
7월 1일 노동조합은 7월 16일 08시 30분 조합원 총회 소집공고를 내며 장소를 안양공장 결정하며 집결투쟁 준비에 들어가며 투쟁 수위를 높여간다.
집결투쟁 준비를 위한 분임토의, 고품질 투쟁, 정시퇴근 투쟁, 4개지부장 삭발식등이 전개되며 7월 16일 역사적인 4개지부 집결과 파업투쟁을 목전에 두고 7월 14일 잠정합의가 이루어지고 7월 15일 찬반투표에 부쳐진다.
'기본급 64,500원', '일시금 5만원', '구속동지 및 정도채동지 징계건은 실무협의', '휴가 1일' 의 잠정합의안은 부결된다. 한편 문막지부에서는 찬반투표 실시전엔 오전 8시 20분경 주물공장 2층 탈의실에서 '원직복직 쟁취 않고 잠정합의 웬말이냐'를 외치며 이용수 동지가 분신한다. 다시 잔업거부 투쟁이 전개되고 7월 18일 기본급 64,500원, 일시금 10만원, 휴가 2일의 잠정합의안은 가결된다.
91년 임투는 마무리 되었지만 노동조합은 총회 투쟁을 결단하지 못한 후유증으로 조합원에 대한 지도력을 서서히 상실해 갔다. 한편 구속동지와 정도채동지는 결국 정직이라는 사측의 탄압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또 경주지부 여인수 지부장은 총회 투쟁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
91 단협 투쟁에서 위력을 발휘한 소자보 투쟁은 91 임투에서 전공장으로 확산된다. 한편 정도채 동지 징계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스스로 대책회의를 하는 등 자발적인 참여와 동지애로 현장의 민주성을 획득해간다.
문막공장에서 분신한 이용수 동지는 다행히 생명은 건졌고 얼마 후 퇴사하였다.

사진1)석방후 조합원 앞에 당당히 인사하는 황성근 동지
사진2)박창수 열사 발인식 날 보위대로 참여한 만도 동지들
사진3)임투 승리를 위한 출정식
사진4)부당징계에 분노한 조합원들 현장에서 대책회의를 하다.
사진5)내가 참여할 때 승리한다는 각오로 소자보 투쟁에 임하는 조합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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