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번째 동지의 주검 앞에서 더 이상은 파업을 늦출 수 없다는 철도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와 철도청은 철도노동자들의 투쟁 열기로 철도민영화 법안을 2월로 연기한다는 내용을 제도언론에 유포하고 있는 가운데 현장 철도 노동자들은 파업투쟁의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다. 잇따른 철도노동자의 산재사망과 청량리지부 김철규 기관사 긴급체포 등으로 현장 노동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 민주당 한광옥 대표가 철도 민영화와 관련 내년 2월에 결정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장도 14일 내년 1월 최종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혀 철도 민영화 법안의 국회처리가 내년으로 넘어가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민영화 법안이 완전히 철회 될 때 까지는 투쟁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생각이다. 이는 지난 98년 12월 26일 정리해고, 변형근로제 등을 포함한 인련의 법률이 날치기 통과됐고, 지난 2000년 12월 한전 민영화 법안 날치기 통과가 철도노동자들에게 '살아있는 교훈'으로 남아 있기 때문.
철도노조는 우선 민영화저지 투쟁의 수위를 낮추지 않으면서, 지난 13일부터 시작한 단체교섭에서 민영화반대·공공철도건설, 근로조건 개선, 해고자 복직 등 3대 요구안 관철에 총력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근로조건 개선과 산재사망 책임규명 만으로도 파업 강행해야" 주장도 제기
지난 50여 년간 철도노동자의 대부분이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해왔다. 특수공익사업
장 즉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법정근로시간인 8시간 근무 등의 근로기준법이 완전히 무시돼온 것이다. 한 철도 노동자는 "야근수당, 시간외 수당도 없이 한 달에 230-250시간 일해왔다. 우리는 밖의 사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다"고 말한다. 24시간 맞교대에 시달려야 하는 철도 노동자들은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서울 기관차 승무지부의 한 노동자는 "이번 철도 투쟁이 '민영화 저지'를 가장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근로조건 개선, 해고자 복직 등의 주요 요구들이 차후 문제로 밀려나는 듯 싶다"며 근로조건 개선 등의 현안을 민영화 저지와 같은 선에 놓고 투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균 한 달에 두 세명씩 죽어나가는 사업장
지난 14일에 이어 16일 광주 토목주사보 백종성씨가 기관사와 무선 교선 중 회차에서
궤간 안쪽으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만 무려 30명 째 동료들의 주검 앞에 철도노동자들은 할 말을 잃고 있다. 평균 한 달에 두 세명씩 죽어나가는 사업장. 이 것이 바로 한국 철도의 다른 이름이다. 이렇게 산재 사고가 속출하는 것은 무엇보다 철도청이 지난 5년간 7천 3백여명이나 인원을 감축해 업무량에 비해 현장인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현재 철도 기관사는 1인 만이 승무하고 있고, 화물열차와 분당선에는 차장도 없는 형편이다. 철도청은 산재사고에 가장 심하게 노출돼 있는 보선원을 대규모 인원 감축한데 이어 대부분 일용직으로 대체하고 있으며, 안전 검수원을 검수 주기 조정 등을 통해 인원감축, 외주화, 일용직화 하고 있다.
서울차량의 검수부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씨(33)는 "지난 96년에 입사한 후 해고되신 분들의 부고장이 매일 같이 날아왔다. 올해만 28명이 산업재해 등으로 돌아가셨지만 보상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수색지구의 한 철도 노동자는 "나도 철로에서 죽는 개죽음을 언제 당할 지 모른다. 철도청에서는 안전을 위한 어떤 조치도 없다. 페인트칠하는 환경미화 수준이 그들이 하는 것의 전부다"며 철도청의 안전불감증을 비판한다.
청량리지부의 한 노동자도 "일반 사기업체였다면 1년에 30명이나 죽어나가는데 고용주가 쇠고랑을 찼어도 몇 번은 찼을 것이다"며 정부와 철도청의 책임부재를 꼬집었다.
직종간 차이 허문 투쟁 열기 모아 총파업 전선으로
"이번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관사, 검수원, 보선원 등 각 직종
조합원과 일반직 직원까지 하나로 뭉쳐 투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의 철도는 청록색 쟁의복을 입은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250여 조합원들은 서울역에 모여 철도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을 상징하는 '거북이 마라톤 대회'를 개최됐다.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서울역을 출발해 공덕동을 지나 여의도공원 앞까지 걸어가며 유인물을 나눠주며 투쟁결의를 다졌다.
각 지역 지구는 거점별로 지구 농성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대전지구에서는 지난 13일부터 70-80여명이 모여 거점농성을 벌였고, 지난 16일에는 대전역 광장에서 1백여명이 모여 시민 선전전을 펼쳤다.
경부선 매표소의 김모씨. 철도생활 처음으로 쟁의복을 입고 매표작업을 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조합원과 일반직 직원들이 쟁의복을 입기 시작했다. 철도 기관사뿐만 아니라 전 조합원이 쟁의복을 입고 파업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파업의 명분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고 백종성씨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철도노조 게시판에는 총파업을 촉구하는 현장노동자
들의 글들이 속속 게재되고 있다. 한 철도 노동자는 게시판에서 "지도부여러분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얼마나 더 많은 동지들의 죽음을 보아야 합니까? 파업의 명분은 이것으로 충분합니다."라며 총파업을 요구했다.수색지구 한 철도노동자도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는 더 어려워진다. 민영화 저지뿐만 아니라 근로조건 개선, 해고자 복직, 산재 사망 사고만으로도 파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14일 찾아간 수색지구에서 파업을 앞두고 있는 심경을 묻는 질문에 한 노동자는 "파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민영화가 강행된다면 우리는 '파업을 강제 당하는 상황'이다"고 말한다.
철도는 정부의 주장대로 특수 공익사업장이다. 대중교통수단 인 철도가 파업을 하게되면 국민들에게 큰 불편이 따른다. 그러나 연일 터지는 산재 사망과 24시간 맞교대 등 최악의 근로조건은 한 철도노동자의 말대로 '파업을 강제' 하고 있다.
청량리 승무지부 조합원 박모씨는 "정부가 철도노동자의 파업을 필수공익사업장에서의 파업이라며 불법 운운하는데 필수 공익사업장이라면서 지금까지 노동자들에게 살인적인 감원, 24시간 맞교대, 노동강도 강화 등 왜 이렿게 대해왔는가?"라고 비판하고 "현장에서는 투쟁의 정당성을 다시 한번 각인하고, 앞으로의 파업전술을 치밀하게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진숙기자 kokor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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