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현재 진행 중인 임시국회에서 국민 기초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각종 공기업 민영화 법안이 통과될 예정이다. ‘서비스 질 개선, 기업 효율성 제고, 요금 인하’ 등 장밋빛 환상을 퍼뜨리며 공기업의 사기업화를 밀어붙이는 정부. 과연 ‘민영화’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까? 정부정책에 문제제기 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민영화 이후의 한국사회 현실을 가상으로 꾸며 보았다. <엮은이 글>

“전기요금 10만원, 수도요금 5만원, 난방비 40만원? 헉! 도합 55만원!” 2003년 1월분 각종 기초 생활 요금 영수증을 살펴보는 남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 턱없이 올라버린 각종 서비스 요금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쥐꼬리만한 월급의 반 이상이 전기, 상·하수도, 가스비로 나갈 판이다.

작년에 공기업이 민영화하면 서민 생활이 파탄날 거라며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총파업’을 외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는 ‘민영화되면 서비스도 좋아질 거고, 방만한 기업운영도 효율화되고 여러모로 좋아질 텐데 왜들 저러나, 너무 자기 밥통만 지키려는 거 아냐?’라며 눈을 흘겼는데, 민영화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간 지금, 우리 가족은 매달 말일만 되면 이렇게 밀려드는 고가의 영수증 더미에 신음하고 있다.

두 달 전에는 지역 난방 업체에서 가스요금 인상을 반대하면 곧 가스 공급이 끊기게 될 거라고 협박해 울화통이 터지게 하더니, 지난달에는 전력 공급회사에서 예고도 없이 일주일 동안이나 전기 공급을 중단해 온 가족을 암흑 속에서 떨게 했다.

이렇게 형편없는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하소연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회사측에서는 ‘억울하면 안 쓰면 되지 않느냐’며 배짱을 튕긴다. 그러고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요금을 올려대니, 1998년엔가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어쩔 수없이 단전을 ‘요청’ 해야하는 상황이 곧 닥칠지 모르겠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설 귀향 열차 예매를 위해 집을 나선다. 어제 종일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했던 열차사고 화면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민영화가 되면 철도분야의 각 기업들이 승객유치를 위해 서로 경쟁체제에 들어가 서비스도 대대적으로 개선되고 요금도 내릴 거라 더니 이것도 완전히 거짓말이었다.

요즘은 도로 교통사고보다 철도사고가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좀 안전한 열차를 타려니 너무 비싸고 그나마 요금이 싼 열차는 승무원 수가 적어 안전사고 비율도 높고, 승무원의 과로사 비율도 한번 탈 때마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잠 한번 편히 잘 수 없다.

예매현황 판을 열심히 뒤져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제일 싼 회사의 차표 가격이 5만원선. 그나마 조금 안전하다고 알려진 회사의 열차표는 매진된지 오래다. 남아 있는 표는 요금이 제일 비싼 회사의 것뿐이다. 명절에는 수요가 많아 요금이 더 높게 책정되는데 이번에는 10만원이 넘는다. 세 식구가 왕복하려면 열차비용만 60만원이 넘는데 도저히 여유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제일 싼 열차표를 편도만 예매하고, 한번에 300원씩 부과되는 114에 전화번호를 문의해 급한 일을 처리한 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전기 스위치를 올리니 전등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오늘도 낌새가 예사롭지 않다. 미리 사 둔 양초도 바닥났으니,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초부터 사둬야지. 혹시 가스도 끊길 지 모르니 이참에 이불도 몇 채 더 마련해 놓아야겠다.

이렇게 해서 이달 생활비는 기초 생활 요금, 명절 교통요금에 지출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적자다. 예전엔 ‘공기업’이라면 철밥통의 대명사, 돈 잡아먹는 공룡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아! 정말 전기료, 가스요금, 수도요금을 공공요금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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