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하기로 한 서울경인지역 인쇄노조 최영현 위원장이 약속장소에 먼저 와 있었다.
"그런데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5일 근무 얘기를 해 봤자 좋은 반응이 나오지는 않을 텐데…."
공무원, 대기업, 대공장부터 주5일 근무를 시행한다고 하는데 영세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반응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최위원장의 얘기는 달랐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 스스로가 주5일 근무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에요. 일주일에 6일을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데 5일을 일하면 어떻게 하냐는 거죠."
영세사업장들이 모여있는 서울 충무로 인현동 진양상가 앞에서 최위원장을 만난 날은 지난 10일, 토요일 오후였다. 토요일이라고 하지만 다수의 사업장이 오후 7시까지 일하기 때문에 인현동 일대의 '밥집'은 오후 늦게까지 성황일 듯하다.
'급매 인쇄소, 보증금 1천2백, 월 1백10만원', '급구 제본소 직원 구함, 미래제본', 좁은 골목길에 서있는 전봇대에 사원을 구하는 낡은 전단과 덕지덕지 붙은 광고전단이 보였다. 사람 한두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기계음으로 골목이 가득 찼다. 이 길목에 있는 인쇄업체들 대부분이 직원 1, 2명의 영세사업장이다.
최위원장과 함께 들어선 '토탈인쇄'도 사장인 이주영(41)씨와 직원 송일만(43)씨, 단 둘이 일 하고 있다. 이씨처럼 경영하는 사장이 아닌 일하는 사장은 영세사업장의 특징. 직원인 송씨는 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인쇄 업체에 취직을 했으니 벌써 25년 가까이 이 계통에서 일한 셈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까지 근무시간인데 사실 7시에 끝나는 날은 별로 없죠. 10시 까지 야근하거나 12시까지 철야를 하는 경우가 많죠."
송씨가 일하는 토탈인쇄는 종이 위에 색깔을 입히는 업체다. 제본하기 직전의 단계가 여기서 이뤄지고 있는 것.
대부분의 영세사업장의 임금체계는 전혀 없다고 보면 정확할 듯. 일년에 한번 몇만원씩 오르는 것이 관행이라고 하지만 그걸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중간에 관두고 다른 업체에 갈 때는 경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 열악하다.
"주5일 근무라는 얘긴 들어본 적이 있어요. 그래도 그게 아직 이르지 않나요. 토요일까지 빡빡하게 일해도 먹고살기 어려운데…일요일 하루말고 다른 날을 쉰다…글쎄요, 아직까지는 감이 오질 않는데요."
인쇄골목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었다. 토탈인쇄를 나와 다른 점포로 최위원장과 함께 떠났다. 박스케이스를 제작하는 '도무송'에도 사장인 오채원(40)씨와 4년째 이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아무개(46)씨, 2명만이 일하고 있었다.
스물셋, 열여덟 자식을 두고 있는 이씨는 주5일근무가 뭐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일주일에 5번 일한다는 뜻이라고 기자가 말하자 이씨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렇게 일하면 어떻게 살 수 있어요."
사장인 오씨는 예전에는 노동자였으나 나이를 감당하지 못해 밀려나다가 그간 모은 돈을 투자해 기계를 들여놓고 사업을 시작한 케이스. 오씨는 영세사업장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문제점을 짚었다. 인쇄골목의 경우 일단 4대 보험이나 산재보험을 하는 업체가 거의 없는데 그건 절차가 까다롭게 느껴지고 귀찮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런거 하면 한달에 한번은 정산하고 그래야 하는데 여기는 사장도 한달에 한번 시간을 낼 수 없어요. 가게를 비울 수 있어야 말이죠. 또 직원이 한명인데 그사람 보험 다 했는데 그만 두면 그만 뒀다고 신고하러 가야하죠, 이렇게 귀찮은 일이 많으니까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거죠."
정부에서 이런 부분을 지원해주면 어떻겠냐는 물음에 오씨는 "정부에서 그렇게 조그마한 사업장까지 신경을 써줄 여유가 있겠냐"며 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워낙 요란해 함께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기계를 끌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기자와 얘기를 나누느라 사장도 노동자도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졌나보다. 짧은 시간 휴식을 취했는가 싶었던 이씨의 몸돌림이 '윙'하며 귓전을 때리는 기계소리에 맞춰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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