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안 mulu@kdlpnews.org
"공화국의 가치가 위기에 처해있다"(시라크), "프랑스 민주주의의 고통스러운 신호"(조스팽), "프랑스 극우파의 승리가 주는 충격"(영국BBC).
지난 21일 실시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Front National, FN) 후보의 부상은 프랑스는 물론 서유럽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국민의 50%가 잠정적 좌파 지지성향을 보인다는 프랑스에서 극우파가 대통령직을 놓고 결선투표에서 양자대결을 벌이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
현재 프랑스에서는 좌-우파 정당을 막론하고 르펜의 결선 득표를 줄이기 위한 저지선 구축을 결의한 가운데, 선거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르펜 반대를 외쳤던 프랑스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손영우 씨는 "이건 현실이 아니라는 할머니, 얼굴에 수치스럽다는 말을 써놓고 거리에서 울고 있는 여학생 등 '르펜이 당선되면 프랑스를 떠나겠다'며 분개하는 시민들이 주변에 널려있다'고 전했다.
사형제 부활, 불법 이민자 즉시 추방, 프랑화 복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 르펜의 부상은 지난해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당선으로 시작돼 덴마크와 포르투칼 총선으로 이어진 서유럽의 우파돌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자국의 이익 보호를 위한 국수주의적 경향이 더욱 거세진 가운데, 유럽에서는 단일통화인 유로 도입과 유럽통합 추진에 대한 고민과 반발, 외국인 이민자 문제 등이 이번 프랑스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잇따른 범죄사건으로 인한 프랑스 국민들의 불안 심리가 국내 치안을 우선 공약으로 내세운 르펜에게 틈새를 열어줬다는 지적.
또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차별성 없는 시라크와 조스팽의 정책, 이에 따른 유권자의 낮은 투표율도 르펜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르펜에 대한 지지가 낙후지역일수록, 저소득층과 교육수준이 낮은 유권자일수록 강세를 보여 "계층 갈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르 피가로)"는 것이다. 정병기 서울대 강사는 "80년대 중후반 세계화 바람이 일면서 반신자유주의와 민족주의 경향이 나타났는데 세계화가 진척될수록 민족주의적 경향이 우려되는 현실이 됐다"며 "실업자이면서도 민족주의적 성향을 갖는 노동자들이 르펜 쪽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는 프랑스 좌파, 특히 사회당의 우경화를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르펜의 부상이 실제 프랑스 국민들의 '극우화' 경향을 제대로 반영한 것일까. 아니면, 우경화된 좌파에 대한 경고 차원일까. 프랑스 좌파는 과연 몰락의 길에 접어든 것일까.
프랑스 정치를 연구하는 이민우씨는 "공산당도 10년이면 우경화 되는 법"이라며 "좌파답지 않은 좌파, 특히 사회당에 대한 경고 차원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번 1차 투표에서 르펜이 얻은 지지율은 지난 88년과 95년의 대선 1차 투표에서 획득한 14.4%, 15%에 비해 2% 높아졌을 뿐 큰 폭의 지지율 상승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좌파후보의 난립으로 사회당 후보가 69년 이후 33년만에 처음으로 결선 투표에 진출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긴 했지만, 조스팽 사회당 후보를 포함한 좌파 블럭, 즉 아를레트 라기예 노동자투쟁당 후보, 로베르 위 공산당 후보, 장 피에르 슈벤망 전 내무장관 등이 획득한 표를 모두 합산해 볼 때, 프랑스 좌파가 몰락했다는 판단은 섣부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르펜의 돌풍으로 프랑스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극우정책을 반영하게 될 것이며, 이를 극복하려는 좌파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85호] 4.29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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