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좌파 진영 전체 아우를 정책ㆍ전략 부재

프랑스 대선과 좌파 정치

▲ 사진설명 : 결선투표에 진출한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왼쪽)과 "르펜=수치"라는 피켓을 들고 반르펜 시위에 참가한 흑인여성(오른쪽).

조태린/파리 10대학 박사과정ㆍ사회언어학
지난 4월22일자 프랑스 주요 일간지들이 전날 이루어진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다루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지진"과 "충격"이었다.

2차 결선투표(5월5일 예정)를 공화국연합 소속 현직 대통령 자크 시라크와 사회당 소속 현직 총리 리오넬 조스팽의 한판 대결로 예상하고 있던 다수의 국민들에게 프랑스 극우파를 대표하는 국민전선 당수 장-마리 르펜의 결선 진출은 그야말로 "생각할 수 없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1965년부터 1995년까지 6차례의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좌우파간의 대결을 보는데 익숙해졌던 프랑스 국민들에게 우파와 극우파간의 결선 대결은 개개인의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매우 낯선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러한 이변이 2차 결선투표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1차 투표에서 16.95%를 얻은 르펜 당수가 결선을 위해 규합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또 다른 극우파 정당인 공화주의국민운동당의 브뤼노 메그레(득표율 2.35%)뿐인 반면에, 19.71%의 지지를 얻은 시라크 대통령은 기타 군소 우파 정당 및 후보들을 규합하면 35%가 넘는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반대 세력인 주요 좌파 정당들(사회당, 녹색당, 공산당 등)까지도 그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약 35%)에게 결선투표에서는 극우파에 대한 '바리케이트' 차원에서 시라크 대통령에게 투표할 것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스 대선은 시라크 대통령의 재선으로 끝날 것이 확실시되지만, 극우파의 결선 진출이 프랑스에 남긴 '상처'는 깊다. 대혁명 이후 유럽을 비롯하여 전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자부해온 프랑스의 공화주의 및 민주주의의 전통에 커다란 흠이 간 것은 물론이고, 유럽통합의 가속화와 동시에 확산된 유럽의 우경화 바람 속에서도 좌파 정치의 모범이자 선두를 자처했던 프랑스 좌파의 명예는 여지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결과의 원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 중, 조스팽 총리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언급한 것처럼, 치안 문제에 관한 우파의 대중선동과 좌파 진영의 분열·난립이 먼저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좌파의 분석은 우파 진영 역시 좌파에 못지 않은 후보 난립이 있었으며, 치안 불안은 대중선동과 무관한 객관적 현실이었다는 반박 앞에서 그 설득력을 잃고 만다.

오히려 문제의 본질은 프랑스 좌파 정치세력들의 정책과 전략에 대한 반성적 검토 속에서 제대로 파악될 수 있다. 사실 이번 1차 투표에서 좌파 진영 전체가 획득한 득표율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중 어느 후보도 좌파 진영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이 없었다는 점, 바로 이 점이 가장 큰 패인일 것이다.

조스팽(득표율 16.12%)의 사회당은 지난 5년 동안의 정권 운영 성과에 대한 과신과 정세 및 민심 오판, 그리고 온건 우파 성향 유권자들의 포섭을 노린 좌파색깔 완화라는 선거 전략상의 악수로 인해 기존 지지자들마저 이탈하게 만들면서 결선투표 진출 실패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감수해야 했고, 로베르 위의 공산당은 좌파 연정 참여를 통한 제도권 진입 전략에 대한 비판적 평가 속에서 역대 최저의 지지율(3.39%)을 얻으면서 그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노엘 마메르를 후보로 내세운 녹색당의 선전(5.25%)과 선거를 단지 선전·선동의 장으로만 생각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유래가 없는 약진(노동자투쟁당의 아를레트 라귀에와 혁명적공산주의연합의 올리비에 브장스노를 합치면, 10%가 넘는 득표율)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는 극우파의 결선 진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서 빛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민주주의, 그 중에서도 좌파 정치의 과거 역사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끼친 영향이 컸다면, 지금의 상처와 그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 영향이 어떤 것일지 주목된다.
[ 85호] 4.29 ~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