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노동자의 힘 회원)
한국정치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요즈음의 답답한 심정을 이
렇게 표현하고 싶어 할 것이다. '흐르는 물은 결코 썩지 않는다는데, 부르주
아 계급정치와 소위 진보진영은 수 십 년 동안 고인 물처럼 조금씩 썩어가고
있구나.' 두 가지의 '허상'을 깨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이제는 제발 부르주아 국가권력의 가치중립성의 허상에서 깨어나자
여느 한국 부르주아 정권이 그랬듯이, 김대중 정권도 대통령의 임기 말을 맞
아 대통령 탈당으로 중립내각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 원인이야 부르주아 권
력의 부패와 내부 권력투쟁이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할 필요조차 없지만, 문제
는 과연 부르주아 국가권력의 수장이 집권 정당을 탈당했다고 해서 그 정권이
과연 중립내각이냐 라는 점이다.
이제까지 부르주아 세력은 여당과 야당이라는 대립구도를 형성하여, 부르주아
정치사회가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통속이 아닌 것처럼 노동자·
민중들을 속여 왔다. 부르주아 정당이라 할지라도, 어느 한 정당은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다른 정당들은 그러한 정당에 대해 비판하는 대항
세력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동자 계급이 종종 야당을 자신들의 이해
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부르주아 계급정당들은 부르주아 계급 내부의 다양한 세력들을
대변하는 것에 불과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계급이해가 위기상황에 빠질 경우에
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은 하나로 뭉친다. 1960년 4.19항쟁, 1987년 6월항
쟁, 1987년 7-9월 노동자항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자·민중들의 계급
적 저항이 거세어지면 항시 자신들만의 정치리그를 새롭게 조성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민중을 그들만의 정치리그에 합류하지 못하게 한
다.
역사적으로 행정·사법·입법으로 분리되는 과정은 노동자·민중이 앞장섰던
부르주아 시민혁명의 결과였지만, 부르주아 지배체제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이
러한 권력분립은 부르주아 세력의 계급이해가 각 영역에서 서로 다른 내용과
방식으로 보장되고, 위기상황에 대한 책임을 분산시키는 체계로 정착되었다.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공격의 대상이 분산되
어 있어서 계급투쟁의 집중력을 구축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는 오히려 행정부의 중립성을 내세워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우산속
으로 들어가서 노동자·민중들의 소나기를 잠시 피하려 하고 있다. 중립내각임
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부르주아 계급 내부에서 자신들이 대변하고자 했던 세
력의 이해를 대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
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사회가 각종의 부정부패 게
이트로 오염되고 있고, 관련 세력들의 힘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는 현상을 보
아라. 앞으로는 부르주아 계급 내부의 새로운 세력들이 준동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할 것이다.
중립내각이라는 것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부르주아 계급이 위기상
황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던 제도적·이데올로기적 허상에 불과하
다. 노동자 계급은 이 허상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이 '날
개가 꺾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부르주아 세력
내부의 중립성을 내세워 새로운 날개짓을 시작할 것이다. 부르주아 세력들에게
는 부르주아 계급의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돌파해 나가자는 총자본의 국가권력
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고, 노동자 계급에게는 중립적 주체인양 하면서
억압적 국가장치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동원하여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사회적으로 고립화시킬 것이다.
정계개편도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구태의연한 날개 짓에 불과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난 이후, 부르주아 세력들은 다양한 형태
의 세력간 합종연횡을 시도하고 있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신민주연합, 김종
필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는 중부권연합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계개편 기
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분점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
기 위한 손사래들에 불과하다. 1990년 3당합당,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
났던 정책연합, 그리고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출현한 DJP 연합이 그랬다.
그런데 소위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그 동안 각종의 선거가 있을 때마다 부르주
아 계급 내부의 균열이 자주 발생하는 권력재편기라고 하면서, 이러한 시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자는 주장들이 고개를 든다. 문제는 이러한 논지를 부르주
아 계급 내부의 통일성이 균열된 것으로 혹은 선거투쟁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균열을 추동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부
르주아 계급의 권력재편은 상호간의 경쟁을 통해 권력분점의 주체를 변화시킨
다는 의미이지, 부르주아 계급의 총체적인 균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이다.
노동자 계급은 각종의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을 두고 그것이 부르주아 계급의
균열지점을 치고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있을 지자체 선
거와 대통령 선거에 대한 대응방침을 놓고서 소위 진보세력들이나 민주노조운
동 진영이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고민해서 해답을 얻는다면, 너무나 바람직
한 일이다. 문제는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3-4년 전에 대통령선
거와 지자체선거에 소위 진보진영과 민주노조진영이 선거투쟁에 주력하여, 많
은 당선자들을 배출하였다. 그런데 지난 3-4년 동안 부르주아 계급의 균열현상
은 아예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민중진영의 깊은 한숨만이 한반도를
뒤엎었다.
이제는 진보의 허상도 깨버리자
민주노조운동은 아직도 대중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을 탄생시킨 정치
적 원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소위 진보적인 정치활동가들은 노사
모를 중심으로 한 신비판적 지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진보의 허
상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두 가지 현상이다.
민주노총은 대중조직답게 조합원들의 불균등한 정치의식을 인정해야 한다. 실
질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않고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조합원
들에 대해서 어떠한 제재조치도 하지 못하면서 대의원대회의 정치방침을 고수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조합원들의 다양한 정치의식을 인정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의원 중심의 결정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비판적 지지세력들은 현 단계 한국 사회의 진보를 이루어 내고 당선 가
능성이 최고로 높은 적임자가 바로 노무현이라는 주장한다. 맞는 말일 수 있
다. 전두환이나 노태우보다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진보적이었고, 이회창보다 김
대중이 진보적이었고, 이제는 이회창보다 노무현이 진보적이라는 것이다. 그렇
다면 진보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다.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진보의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소급해서 본다면, 파시
스트보다 준파시스트가 진보였을 것이고, 준파시스트보다 준준파시스트가 상대
적으로 진보적이었을 것이다. 상대적 진보성이야말로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
로 하는 점진적 변화에 안주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은 이제 부르주아 국가권력의 가치중립성과 상대적 진보성의 허상
에서 깨어나야 한다.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할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리그
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권력재편기에는 부르주아 계급의 총체적인 균열을 실
질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노동자 계급정치, 계급사회의 계급적 분화를 촉진시
키는 노동자 계급정치,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중심으로 계급적 통일단
결을 이루어 내는 노동자 계급정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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