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통계약직 투쟁]목동의 전사들은 우리에게 목적의식적 조직과 투쟁을 요구한다!

이제, 목동의 전사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교훈은 이것이다. 이제 더 이상 비정규직 투쟁을 자생적 투쟁으로 내버려두지 말자! 만약 노동운동진영이 제대로 비정규직 투쟁을 하고자 한다면 이제 목적의식적이고 정치적인 비정규직 투쟁을 준비하자!



김혜진(노동자의 힘 회원)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힘을 얻었고, 비정규직 투쟁의 정당성과 중요함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투쟁이 끝난 지금 모두가 고통스럽다. 무엇 때문일까? "역시 자본과 정권에 맞서서 이기는 것은 힘들다"는 교훈을 깨달았기 때문인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통신계약직 투쟁의 교훈을 잘못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구조조정 이후 삶의 고통에 못 이겨 투쟁에 나선 수많은 비정규직 동지들을 기억한다. 바로 그 투쟁의 정점에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생적으로 일어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극한의 투쟁을 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은 이 투쟁을 목적의식적 투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자생성의 한계 속에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는 점 때문이다. 투쟁의 헌신성과 극한성에 매몰되어 이 투쟁을 변화 발전시키지 못하고, 단지 그들에게 내맡겨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국통신계약직 노조 투쟁에서 나타난 오류의 근원이자 우리가 힘들게 평가해야 할 지점이다.

전체의 투쟁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개별의 투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는 이 투쟁이 처음부터 이렇게 처절하게 끝날 싸움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체의 의지가 충천하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운동진영의 관심이 지대했기 때문에 이 투쟁을 우리 운동 전체의 투쟁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면 비정규직 투쟁 승리의 교두보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2년 1월 "구조조정 분쇄와 한국통신계약직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공투위는 좀처럼 확장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시선은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의 투쟁으로만 쏠려있었고 민주노총도 자기 투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노총은 개별사업장의 투쟁에 결합하는 단위가 아니다. 그런 역할은 연맹이 하면 되지 왜 민주노총에 와서 개별 사업장을 지원하라고 하느냐"는 이야기까지 들어야했다. 그러면서 애초 이 투쟁을 전체의 투쟁을 만들어보려면 의지는 지속적으로 좌절되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전체 운동이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때이른 판단이었을지 모른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논의들이 거품에 불과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도 바로 이 때이다.

물론 최선을 다해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의 힘을 모아 보고자 하는 열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2001년 11월11일의 2차 점거투쟁으로 집중시키고자 했다. 한국통신계약직 노조의 투쟁에 함께 해왔던 모든 이들은 이 투쟁을 확장시키지 못한 부채의식이 있었고, "적어도 이번만은!"이라는 결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한국통신계약직 노조가 다른 이들의 무관심에 너무 지쳐서 이 투쟁이 확산되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점거투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투쟁으로 단련되었다 하더라도 자생적으로 일어선 이들에게 천문학적 손해배상과 구속과 가정의 파탄은 단지 분노만으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러기에 자본측이 내놓은 약간의 교섭안에도 흔들릴만한 여지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점거투쟁을 접은 순간부터 이 투쟁이 전체의 투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계기를 잃었다. 자본이 주도하는 교섭으로 들어선 순간, 이 투쟁은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과 한국통신만의 투쟁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그저 '연대단위'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투쟁의 주체는 자신들일 수밖에 없다"고.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것이 우리 운동 전체의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할 중요한 투쟁을 주체들만의 투쟁으로 축소시키는 발언이라면 이 말은 중대한 오류이자 반역행위이다. 이미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의 투쟁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의미부여되었다. 그래서 법원과 국회와 정부와 공권력이 한통속이 되어 한통계약직을 패배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결과적으로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의 전투성과 헌신성에만 기대서 그들의 투쟁을 엄호하지 못했다. 개별의 투쟁은 아무리 전투적이더라도 자본의 집중포화를 감당할 수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앞서 나선 자 이렇게 각개격파 당하고, 뒤에 선 자들은 숨죽이게 해서는 안된다.

구조조정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한국통신계약직 노조 투쟁의 본질은 구조조정 투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당연한 진리를 투쟁 속에서 실현하지 못했다. 자본은 한국통신의 구조조정을 위해 비정규직 7,000명을 대량해고했다. 약한 곳부터 순차적으로 치는 자본 고유의 수법이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부터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자본에게 내주는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량해고의 대상이 단지 비정규직이었다는 이유로 이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으로 축소되었다.

노동운동 진영도 정작 이것이 한국통신 구조조정, 더 나아가 공기업 사유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가능성을 어떻게 열어갈 것인지에 주목하지 못했다. 한국통신 노동조합은 애초부터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사고하고 있었으니 논외로 치자. 그런데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던 한국통신 정규직 활동가들은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국통신계약직 노조의 517일 투쟁 과정에서 이 투쟁을 구조조정 투쟁으로 확대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114 전화번호 안내국 분사투쟁 때였다. 약한고리부터 치는 자본의 전술은 계약직 다음에 여성 노동자들을 노렸다. 그런데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은 114에 남아있는 현장계약직 조직화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거나 '정규직과의 연대투쟁' 정도로 상정했을 뿐, 이 문제를 한국통신 사유화 저지투쟁을 위한 적극적 계기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한국통신 노조 활동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연대단위들의 노력으로 2001년 6월 13일 역사적인 정규직과 계약직의 첫 집회 "114 분사 철회를 위한 한통노동자 총단결 총투쟁 결의대회"가 열려서 이후 발전의 가능성을 예고했으나, 이 역시 정규직 노동조합의 배신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두 번째 계기는 올해 발전노조를 비롯한 공공3사가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 연대파업을 할 때였다. 그러나 단지 정세적으로 좋은 계기였을 뿐 주체의 상태는 그렇지 못했다.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은 이미 교섭국면으로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발전동지들을 서울대로 인도하고, 파업에 사수대로 결합하는 정도로만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은 '구조조정 투쟁'으로서 자신의 투쟁 의미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았다. 정규직과의 공동투쟁에 대한 기대도 버렸다. 다만 "현재 투쟁하고 있는 211명 조합원의 생존"으로 투쟁의 위상을 축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에게 최후의 승부처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노동조합 깃발을 사수하고 마지막 힘을 다해 정규직 활동가들과 운동진영의 힘을 모아서 한국통신 사유화, 특히 선로분사 투쟁에서 최후의 승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전망을 제출해야 함에도 그럴 수 없었다. 517일의 고통 속에서 지치고, 정규직에게 배반당한 상처가 큰 한국통신계약직 노조에게 그런 전망을 제출하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확신을 주기에는 우리 운동이 지나치게 나태했다. 그러나 아직도 구조조정 투쟁의 전망은 남아있고, 한국통신계약직 노조의 투쟁이 끝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명분과 실리에 대한 왜곡된 관점으로 투쟁은 축소되었다.

정규직화에서, 노동조합 사수로, 그리고 얼마나 많은 보상금을 받는가로 축소된 노조의 요구를 생각해볼 때 이번 결과는 최악이다. 최소한의 보상도 되지 않았고, 노조도 깨졌다. 물론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독한 가뭄에도 씨감자는 먹지 않는 법인데,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는 그 소중한 깃발을 접었다.

노동조합이 투쟁의 주도권을 잃은 순간 자본은 철저하게 항복을 요구했다. 자본이 투쟁을 끝내도록 요구한 매개는 '돈'이었다. 517일간의 투쟁에서 지치고, 가정이 파탄나고, 엄청난 벌금과 손해배상에 시달리는 동지들에게 투쟁의 마무리에서 최소한의 것은 '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본은 집요하게 노동조합 해산을 요구하면서 이 전제 위에서만 나머지 위로금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여기에서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이미 투쟁 과정에서 예비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지만 투쟁을 위한 교섭전술을 만드는 데는 능하지 못했다. 도저히 열리지 않는 벽처럼 단단하던 자본은 노조가 투쟁을 접은 순간 가느다란 실처럼 교섭의 창구를 열었다. 교섭을 깨지도 않고 계속 연기해서 노동조합의 힘을 빼놓고 지치게 만들었다. 그 때부터 노동조합은 자본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실을 놓치지 않고 작은 성과라도 만들기 위해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반응을 보일 때 우리는 한걸음 물러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투쟁대오를 정비해야 하며, 우리의 원칙에 맞게 교섭을 준비해야 하는데, 노조는 그냥 매달려버렸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국회의사당 투쟁, 한강대교 고공농성 등 크고작은 선도투쟁과 대중투쟁이 배치되었지만 그 투쟁은 명백하게 교섭을 위한 압력이었다. 그 때부터 교섭주체와 투쟁주체는 분리되었다. 조합원들은 총회에서 "우린 열심히 투쟁할 테니, 교섭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이야기하지 말라"면서 공동의 토론으로 교섭과 투쟁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을 방기했다. 지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성과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교섭하는 길을 버리고, 말 그대로 사측과의 대면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 투쟁의 사회적 의미와 노동조합의 실제 요구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은 그것을 '명분과 실리'의 대립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대립을 통해 잘못된 교섭의 정당성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정세의 주도권을 다시 잡지 않으면 완전히 밀린 채 조합원들이 나가 떨어지겠다고 생각한 동지들이 '투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으나, 그것은 '명분이냐 실리냐'라는 왜곡된 논점 속에서 현실을 모르는 과격한 사람들의 주장으로 치부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변화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 투쟁을 곁에서 지켜본 누구도 노동조합 깃발을 내렸다고 해서 욕하지 못할 만큼 이 동지들의 투쟁은 눈물겨웠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아무런 대답도 없는 막막한 자본과 정권의 벽과 같은 두께 앞에서 모두들 절망했다. 우리는 이 고통에 동화되어버렸다. 그래서 이후 운동을 위해서, 또는 이 동지들의 작은 실리를 위해서라도 '정세의 주도권을 다시 세우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언하지 못했다. 왜곡된 논점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비판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투쟁의 귀결은 무엇이었나? '투쟁해도 어쩔 수 없다'는 자괴감, 깃발을 잃어버린 채 현장에서 무기력하게 탄압당해야 하는 조합원들, 그리고 떨쳐 일어서려고 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의 발목을 잡은 것. 패배하더라도 떳떳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서 떳떳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한국통신 계약직 동지들은 노동자 민주주의로 단련되었는가?

우리의 뇌리에는 목동 전사들이 강하게 남아있다. 적들의 미행을 따돌리고 일사불란하게 목동전화국에 모여 바리케이트를 쌓고 투쟁하던 전사들 말이다. 단련된 어떤 활동가보다도 더 체계있고, 분노와 투쟁의지가 드높던 전사들 말이다. 이 전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역시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고 입모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전사들에 대한 기억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술로 울분을 달래며 관성적으로 투쟁하러 나섰던 동지들의 모습이다.

투쟁이 끝난 이후 평가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고 지쳐서 쓰러져 가는 동지들의 모습이다. 무엇이 이 동지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2000년 12월 13일 1차 상경투쟁을 했을 때 노숙을 하느라 눈썹과 코밑에 허옇게 서리가 내린 동지들을 보고 간부들은 '조합원들이 당장 짐 싸서 내려가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오히려 동지들은 당당했다.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토론하고, 그 토론의 결과를 모아 투쟁에 나섰다. 목동전화국 점거농성 진압 이후 변호사들까지도 혀를 내둘렀던 놀라운 전원 묵비전술은 그러한 단련과 동지들에 대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2차 투쟁을 준비하던 무렵부터 조합 내부의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한국통신계약직 간부들만큼 희생정신이 강한 동지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들은 조합원들의 희생을 우려하고 자신들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래서 조합원들과 상의하지 않은 채 2차 점거투쟁은 자신들만 들어가려고 했다. 그순간 조합원들은 간부들이 희생을 베푸는 대상이 되었다. 함께 투쟁하던 동지들이 간부와 조합원으로 나뉘었다.

2차 점거투쟁이 미뤄진 후 교섭주체와 투쟁주체가 분리되면서 이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교섭안은 공유되지 않았고, 억측이 나돌았다. 문제의식들은 '단결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묻혀졌다. 불만을 가진 조합원들은 그것을 조직적으로 제기하고, 조합의 민주성을 다시 세울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불만세력으로만 남았다. 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현장의 정서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맞다. 그들은 현장의 정서를 잘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자생성이라는 점을 잊었다. 투쟁을 통해 의지를 통해 상승시키고 확산시켜야 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을 잊었다. 그리고 때로는 조합원들에게 터놓고 상의하고 솔직한 것이 내부를 더 단결시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잊었다.

관료주의는 투쟁을 회피하는 자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합원에 대한 헌신성이 강한 간부들에게서도 발견된다. 객체로 전락한 조합원들은 생기를 잃는다. 그들은 아무 의미 없이 주어진 일정 속에서 간부들의 교섭 결과를 기다렸다. 창의적인 투쟁방법이나 전술은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철저하지 못했다. 조합의 민주성을 발현시키는 것의 핵심은 조합원들의 훈련이다. 단지 투쟁하고 분노를 조직하는 것만이 훈련이 아니다. 우리 운동의 전망, 이 투쟁의 의미, 이 투쟁이 갖는 사회적 가치, 그리고 왜 비정규직 투쟁이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정치적인 투쟁으로 발전해야 하는지를 공유하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을 조직적으로 나타내고, 그것이 힘이 될 때 우리는 민주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간부들의 헌신성에 기대고, 조합원들에 대한 조직적 훈련을 게을리했다. 분열주의자로 취급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조합원들에게 사태의 추이와 문제의식과 전망과 이후 활동의 전망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 투쟁의 헌신성 때문에, 그 처절함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들을 잊고 놓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은 초기의 전투적 민주성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는 자생성에 굴종하면서 관료성으로 마무리되었다. 조합원들은 단련되지 못했다.

비정규직 운동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

주체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 하나에 기대어 그 투쟁을 상승 발전시키고, 주체들을 목적의식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을 때, 정말로 영웅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의지를 점점 갉아먹는 방향으로 투쟁이 진행되고, 결국은 자본에 굴복하고 마는 상황을 우리는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을 통해 보았다.

그런데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은 오히려 자신감을 내비친다.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이야기하고, "우리에게 조직은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현장에 가서 충분히 다시 조직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노조는 언제라도 세울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만적인 자기 위로일 뿐이다.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을 세우는 것 자체가 너무나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었고, 그렇게 힘들게 세운 노동조합 아래서야 계약직 노동자들은 투쟁을 조직할 수 있었다. 그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쉽게 부인하는 자들이 쉽게 조직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조직의 깃발 아래 서있지 않은 자들이 혼자의 힘으로 현장을 조직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법이다.

또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지친 이들이 있다. 끝까지 노동조합을 사수하고 투쟁하고자 한 동지들일수록 패배감은 더욱 크다. 더해서는 이 투쟁에 함께 하고자했던 동지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이 투쟁을 자기 투쟁처럼 여겨왔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월 5만원의 상근비를 받으면서도 10만원짜리 채권을 기꺼이 사고 이 투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동지들 때문에 이 투쟁은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은 투쟁이 끝난 이후 이 동지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책임을 연대단위에게로 돌리려는 무책임함을 보이는 동지들도 있다.

우리는 이번의 굴복이 완전한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패배는 자명해진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수습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투쟁에 대해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하고, 교훈과 의미를 찾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야 현장투쟁을 조직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또한 지금까지의 투쟁을 정리하면서 자신들을 말 그대로 활동가로 단련시키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래야 517일 투쟁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 스스로의 투쟁을 자생성의 한계에 가두지 말고, 패배를 경험한 지금, 그 패배를 목적의식적 활동가와 민주적인 조직으로 거듭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목동의 전사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교훈은 이것이다. 이제 더 이상 비정규직 투쟁을 자생적 투쟁으로 내버려두지 말자! 만약 노동운동진영이 제대로 비정규직 투쟁을 하고자 한다면 이제 목적의식적이고 정치적인 비정규직 투쟁을 준비하자!

목적의식적 투쟁은 어떻게 가능한가? 비정규직 운동에서 핵심적인 단위를 설정하고, 그곳에 많은 동지들이 들어가서 새로운 동지들을 만나고 투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투쟁을 승리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내부의 철저한 민주성으로 우리와 동지들을 훈련해야 하며, 투쟁과 교섭의 전술을 개발해야 하고, 승리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자생적 투쟁속에 침잠하여 범했던 오류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 투쟁을 우리 운동 전체의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비정규직 투쟁을 우리 운동 전체의 투쟁으로 확산시키고자 한다면 먼저 지금까지 구조조정에 대응해왔던 운동방식을 철저하게 비판해야 한다. 고용을 무기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를 대립시키는 자본 앞에서, 피해최소화론을 앞세워 정규직의 이해만을 철저하게 대변하면서 민주노조인양 해왔던 관행이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비정규직 운동은 전체의 운동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러하기에 목적의식적 투쟁이란 자본의 분리정책에 부응해왔던 노조운동을, 말 그대로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주'노조운동으로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피눈물나게 정규직과의 연대를 호소하고, 민주노총의 관심을 촉구했던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의 좌절과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신자유주의에서 비정규직 확산과 초과착취, 무권리 상태는 확장된다. 이에 맞서는 것은 노동조합 운동을 넘어 정치적으로 진군하는 데에 있다. 비정규직 투쟁을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으로 국한하지 말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정치운동과 결합시킬 때 우리는 비로소 비정규직 운동의 목적의식적 준비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비정규직투쟁의 진전으로 나아가는 길에 한국통신계약직 전사들이 서있다. 이제, 그 길을 밟고 더 전진하자. 승리하자.



□조합원 현황(2002. 5. 17 현재)

처음 결성 당시 조합원수: 1140명.(이중 100여명 것을 114에서 따로 가지고 있었는데 접수를 안시킴.) (2000년말~2001년초)
3·29 목동전화국 점거투쟁 당시 조합원 수: 260여명.매달 조합원들이 탈퇴
현재 전체 조합원: 211명
도급계약 희망 조합원: 160여명
주력 투쟁대오: 80여 명.

□파업일지

2000년

1. 22. 첫모임, 서울 4개 지국 계약직 동지들이 모여 임금 및 근로조건에 대해 논의
2. 29. 한국통신 계약직 협의회 창립
3. 02. 한국통신 노동조합 본조 방문·면담 : 노조가입 거부당함
3. 31.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 법외노조 설립
9. 23. 대전 한국통신 연수원 정규직 임시 대의원대회 참석
10. 4. 본사 정규직 노동조합 중앙 집행부 방문 및 조합가입원소 소용요구/거절
10. 11. 대전 산업대학교 임시 대회의장에 부결시 대비 전국 조합원 집결
한국통신 정규직노조 임시 대의원대회(계약직 노동자 조합가입조항 삭제)
10. 13.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 설립 노동부인가
10. 14. 노동조합 설립신고 필증 교부(합법노조 쟁취)
10. 28. 서울 114번호 안내국 집회
12. 12.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 포기(이유: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
12. 13. 총파업, 1차 상경투쟁. 홍준표위원장 삭발식
12. 18. 한통노조 연대파업(2차 상경투쟁)
12. 27. 한국통신 분당 본사집회(3차 상경투쟁), 이랜드 아울렛 중계점 연대투쟁
12. 30. 부사장 면담(결과 : 도급전화시 고용승계 해주겠다)

2001년

1. 2. 4차 상경투쟁, 한국통신 본사 앞 노숙투쟁 전개
1. 11. 이랜드노조와 투쟁문화제 개최(한국통신 본사 앞)
1. 15. 한통본사 앞 집회(충남본부 이동구 동지 반신마비로 쓰러짐)
1. 16. 한강대교 고공농성/'한통계약직 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하루주점
1. 17. 이상철 사장과의 면담(총파업 36일차)
1. 24. 본사 앞 광정에서 '설 합동차례'
1. 30. 서울, 경기, 부산경남 본부 한통본사 앞 5차 무기한 상경투쟁 돌입(노숙투쟁 전개)
2. 1. 대전충남, 대구경북, 포항구미 5차 상경투쟁 발대식
2. 3. 한통본사 도로 앞 출근저지 투쟁
2. 5. 동대문전화국 출근저지 투쟁
2. 6. 이상철 사장 상여투쟁
2. 8. 10개 광역전화국 분산 타격투쟁
2. 16. 비정규직 노동자 전국집회
2. 19. 화곡, 영등포 전화국 타격투쟁(26명 연행, 7명 불구속)
2. 21. 대우자동차 연대투쟁(2명 연행)
2. 24. 대우자동차 연대투쟁(2명 부상)
3. 1. 김대중정권 규탄집회(2명 연행)
3. 3. 임시대의원대회(공공연맹에 교섭권 위임)
3. 8. 비정규직 연대 전국 순회투쟁
3. 14. 본사 앞 농성장 침탈(5명 부상)
본사 앞 집중연대집회(20여명 부상, 조합원 28명 고소고발)
3. 22. 파업100일 결의마당
3. 29. 목동전화국 점거투쟁(새벽 3시5분)
오전8시30분 폭력진압 198명 전원연행(9명 구속, 52명 불구속, 138명 즉심)
4. 30. 데이콤 용산지부앞 광케이블 고공시위(2명 연행)
5. 8. 한통노조에 114분사회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 제안
5. 11. 서울, 경기 114, 계약직 출근저지 투쟁
5. 16. 3차 교섭, 경총측의 불참으로 무산
서울본부 소속 한승훈 동지 장파열로 사망
6. 1. '114분사화 철회'투쟁 중인 정규직 동지들과 공동집회(한통본사 앞)
6. 2. 한통본사앞 농성장에 공권력 침탈, 다수조합원 폭행
6. 9. 한통노조 이동걸위원장 114 분사화 직권조인
6. 13. 114분사 철회를 위한 한통노동자 총단결 총투쟁결의대회(정규직과의 첫 공동집회)
6. 30. 총파업 200일 연대의 밤 개최
7. 13. 대전충남본부 조합원 4명 구속수사
7. 25. 4차 본교섭, 노조측에서 결렬선언
8. 28. 국회의원회관 옥상 기습농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국회 진입시도중 10여명 연행
비정규직 투쟁승리 공대위, 영등포 항의집회 도중 71명 연행
10. 8. 비정규직 철폐·정규직화 쟁취·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파업 300일차 결의대회
10. 31. 국회 본회의장 3명 진입 시위(3명 연행)
11. 3. 비정규직 철폐·정규직화 쟁취·한통계약직 투쟁승리를 위한 결사항전 집회
11. 7. 실무교섭 재개
11. 13. 조합원 임시총회(종업원지주제에 관한 교섭안 가결)
11. 23. 조합원 임시총회(종업원지주제 교섭안 폐기)
12. 6. 실무교섭

2002년

1. 7. 공공연맹 산하 단위노조 순회방문 투쟁
1. 16. 비정규직 철폐 한통계약직노조 승리를 위한 공공연맹 3차 결의대회
2. 15. 전국 동시다발 한국통신 집중규탄집회
2. 20. 1인시위 돌입(서울 주요 5개 거점 동시 진행)
3. 24. 거점인 연세대 공권력 침탈(6명 연행)
4. 5. 한통계약직노조 투쟁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선포식
4. 6. 2차 한강대교 고공농성(3명 연행)
결사항전을 위한 전조합원 잠수
4. 17. 장애인 이동권연대 연대투쟁(1명 연행)
5. 2. 상경조합원 귀경
5. 4. KT와 한통계약직노조 잠정합의
5. 12. 조합원 임시총회, 노사합의안 가결, 노조해산 결정
5. 18. 홍준표위원장 출소
5. 27. 홍준표위원장 지역본부 순회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