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돌아오다.
지난 2000년 10월11일 대전 산업대학교에서는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의 임시대의원대회
가 열렸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조합 가입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약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3월2일 한국통신 노조가 규약상 조합 가입범위에 포함되어 있는 '비정규직' 가입을 거부한지 7개월만의 일이었다. 한통자본의 7000명 계약직 정리해고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길이라도 열어달라"는 계약직 노동자들의 요구에 한통 정규직 노동조합은 "노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조합원 가입 대상에서 제외'를 결의했다. 그 후 500일이 넘는 시간동안 노동운동 진영의 화두는 '비정규직'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전체 운동진영이 목도한 한국통신 노조 대대에서의 결정(=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가로놓인 너무나 높은 벽)이 보여줬던 노동조합운동의 현실은 얼마나 진전되었을까. 2002년 5월12일 대전 유성 유스호스텔 1층 강당. 이곳은 한통계약직 노조 마지막 총회가 열린 곳이자 3년 전 홍준표 위원장을 선출하고 한통계약직 노동조합이 건설된 곳이다. 이날 총회장소에서 만난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은 몇 달 사이 더욱 수척해진 얼굴들이 돼 있었다. 총회에서는 517일간의 파업투쟁으로 단 한번의 '노사합의'와 단 한 장의 '노사합의서'를 인준하는 문제와 노조 해산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총회에 앞서 남병준 한통공투위 집행위원장은 노사합의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보상금 개별공지, 도급전환시 3년 고용보장에 대한 애매한 표현, 특히 노조해산과 조직적 행위시 단협파기는 독소조항이다. 합의안은 생존권과 우리 투쟁의 명분조차 포기하라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며 공투위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총회에서 의장을 맡은 이춘하 직무대행은 "오늘 총회는 집행부가 동지들을 설득하는 자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우리는 기계를 멈출 힘이 없다. 현 정권에서 정부를 상대로 싸워서 이겼던 노조가 있었는가"라고 했다. 사실 이날 총회에서 이춘하 직대를 포함한 2선 집행부는 내내 조합원들을 설득시켰고, 발언한 조합원들은 합의안 파기, 지속적인 투쟁을 주장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침묵했다. 장정덕 조합원은 "수많은 시련과 눈물을 거두며 18개월의 긴 시간이 지났다. 벽은 높고 두텁다. 해도해도 안되는게 정부다. 하지만 동지들께 다시 제안한다. 앞으로 6개월 간
더 싸우자. 그리고 구속을 각오한 투쟁을 하자. 동지들과 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박수를 쳤지만 "투쟁"으로 화답하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투쟁발언, 노사합의안 비판과 이에 대한 집행부의 설득이 이어졌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생각을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오늘의 총회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나 하듯 모두들 끝도 없는 발언들을 묵묵히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발언이 끝나면 박수를 쳤다.
고철운 상황실장은 "굴욕적인 합의안이다. 동지들이 비판하는 것 다 맞다. 그러나 사측과 노조해산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합의할 수 없었다. 우리가 밀린 것이다. 인정한다. 이것에 대한 결정은 동지들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한통계약직 조합원들은 63% 찬성으로 노사합의서를 통과시켰다.
스스로 택한 투쟁, 선택을 강요당한 해산
다음날로 이어진 총회는 '노조해산'에 대해 전날보다 더 지난한 발언들로 이어졌다. 끝없는 정회와 토론이 계속되었다. 노사합의서에 이미 노조해산건이 들어간 이상 해산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한통계약직 동지들에게는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다. 노동조합 깃발을 세우는 것조차 정부와 한통자본,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조와 '투쟁'을 했어야 했다. 그 깃발 하나 지키기 위해 사측의 끈질긴 회유와 교섭을 거부하며 517일 동안 싸워왔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해산건에 대한 논란은 '노사합의안' 보다 더 길고, 더 치열하고, 더 솔직하게 진행되었다. "깃발들고 도급가서 노조를 사수하자. 다음주에 깃발들고, 투쟁조끼입고, 강릉교도소에 가서 출소하는 홍준표 위원장 만나자"고 했을 때 "노조 깃발 내리지 않는 것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원하는 조합원들마저 도급으로 못넘어가면 어떻게 할꺼냐"는 '현실적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에 대한 답은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홍위원장이 나오는 며칠만이라도 노조깃발 아래 있고 싶
다"는 울먹임에 대해서도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과는 140명 조합원 중 105명이 노동조합 해산에 찬성했다. 35명만이 노동조합 사수를 선택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노조해산건에 대해....." 이춘하 직대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귀
가 먹먹해진 것처럼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렸다. 침묵을 깨고 한 여성조합원이 울음을 터트렸다. 모두 고개를 떨궜다.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입고있던 투쟁조끼를 벗어 찢어버리는 조합원도 있었다. "노조해산건에 대해..." 이춘하 직대가 애써 말을 이으려다 흐느끼고야 만다. 총회는 늘 불렀던 '파업가'도 "죽여 밟어 묻어 씨발 개새끼야"로 끝나는 구호도 없이 끝났다. 굴욕적이기까지 한 노사합의서와 노동조합 해산을 결정한 것은 분명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당한 선택이었다.
7000명의 계약직 노동자가 정리해고로 내몰렸을 때 그들은 맞서 싸울 것을 선택했다. 영하 20도의 추위속에서도 "생존권 사수"를 외치며 침낭하나에 의존한 채 목숨을 건 노숙투쟁을 선택했다. "비정규직 완전 철폐"를 위해 전화국 점거도 감행했었다. 2000년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의 파업 때도 집회 참여조차 거부당했지만 114 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싸우자고 했다. 그들이 투쟁의 주체였고, 그들이 선택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517일이 지난 지금 이들 앞에 높인 것은 정권과 한통자본에 의해 강요된 '자진 해산'의 길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얼음벽은 그 선택을 종용했거나 최소한 묵인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한통계약직 투쟁의 끝은 끝나지 않은 듯하다. 이미 기다렸다는 듯이 "거 봐라. 되도 않는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자신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반증하려 할 것이며, 한편에서는 "백날 투쟁해봤자 피해보는 건 노동자"라는 푸념들이 늘어질 것이고, 결정적으로 "패배한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투쟁의 성과는 있쟎은가"라며 자족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517일간의 길고도 짧은 한통계약직 파업투쟁의 진정한 성과를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패배를 노동운동진영 모두가 승인해야 한다. 그리고 '운동의 위기는 어디서부터 오는가'에 대한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답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한통계약직 투쟁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그것이 가지고 있었던 승리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 <노사합의서> KT(舊 한국통신. 이하 "회사")와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이하 "조합")은 현안사항의 종국적 해결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 회사는 조합원 211명의 생활안정을 지원하기 위하여 별도로 정하는 바에 의하여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업무를 수행케 하고 이에 대하여 보상한다. 다만, 그 기간은 2002. 11. 31까지로 한다. 2. 회사는 조합원중 희망자에 한하여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도급업체에 취업을 알선하되, 늦어도 2002는 상반기 중에는 이를 마무리 한다. 이 경우 본인의 희망지를 적극 반영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3년 동안 고용이 보장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3. 회사와 조합(원)은 상호 신뢰회복을 위하여 법원과 수사기관에 계류중인 회사와 조합(원)간의 모든 사건에 대하여 이를 쌍방 취하하고, 향후 동일 또는 유사한 내용의 민사소송 및 고소, 고발의 제기 등 일체의 법률상 분쟁을 야기하지 아니한다. 4. 조합(원)은 본 합의서 체결 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법적 절차에 따라 조합을 자진해산하며, 조합(원)이 이를 이행하지 아니 하거나 본합의서 체결 후 현안사항이 종국적 해결을 방해 또는 재연하는 조직적 행위를 할 경우에는 본 합의서는 그 때부터 효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본다. 2002년 5월 4일 회사를 대리하여 노사협력팀장 송원중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 이춘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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